‘노스볼트 파산.’ 놀라 찾아보니 올해 7월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노스볼트는 빠지지 않던 기업이었습니다.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스웨덴 국적의 기업, 노스볼트는 유럽의 자존심이었거든요.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던 2020~2021년, 노스볼트는 유럽 완성차 기업을 중심으로 배터리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면서 한국, 중국 기업의 경쟁자로 급부상합니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받았고, EU의 지지까지 받았던 기업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노스볼트의 파산과, 배터리 산업에 미칠 영향. 빠르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유럽의 맹주(였던) 노스볼트
노스볼트는 2016년 9월, 테슬라에서 일하던 두 명의 스웨덴인, 피터 칼슨과 파올로 세르루티가 설립한 기업입니다. 테슬라에서 공급망(구매)을 담당했던 두 사람은 향후 전기차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노스볼트를 설립합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대형 배터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일본의 파나소닉,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에 불과했어요. 원자재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었고요. 이 상태로 산업이 발전해 나간다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은 뒤처질 게 뻔했습니다.
칼슨은 이를 우려했습니다. 2017년 인터뷰에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유럽은 아시아 공급망에 완전히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은 에너지 독립을 위해 행동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됩니다.” 정말 멋진 말이죠. 그리고 그의 생각이 실제로 맞아떨어졌고요. 그렇게 노스볼트는 유럽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배터리 자체 생산에 도전합니다.
노스볼트의 목표는 2020년부터 배터리 생산을 본격화하고 2023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32GWh(기가와트시)로 확대하는 것이었어요. 단순 계산으로 이는 아이오닉5와 같은 전기차 30~4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배터리 생산능력이에요. CEO의 이력, 꿈, 이들의 예상. 모두 적중입니다. 문제는 '돈'이었죠.
당시 노스볼트는 32GWh의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돈이 약 40억 달러, 우리 돈 5조 59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한 바 있습니다. 단순히 공장을 짓는 데만 필요한 돈입니다. 연구시설은 물론 기술개발 등에 필요한 돈을 합하면 수 십 조원의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2016년 노스볼트는 스웨덴의 전력회사인 Vattenfall AB 등으로부터 1400만 달러, 우리 돈 약 200억 원을 투자받습니다. 적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스타트는 좋았어요. 이듬해부터 이들은 본격적인 투자 유치에 나섭니다. 투자는 힘을 받습니다. 2017년 진행된 시리즈A 라운드에서 스웨덴 정부 기관을 중심으로 133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2019년까지 유럽투자은행 등으로부터 4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아요. 온 유럽이 노스볼트를 돕기 시작합니다.
2019년 진행된 시리즈B에서 폭스바겐그룹과 골드만삭스 등이 대거 참여하면서 10억 2000만 달러, 우리 돈 1조 4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 조달에 성공합니다.
투자라운드는 이어집니다. 2020년 폭스바겐,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또다시 6억달러에 달하는 시리즈C 투자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2021년 27억 달러, 2022년 11억 달러, 2023년 12억 달러 등 총 150억 달러, 우리 돈 20조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습니다(이 금액에는 대출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게 노스볼트는 사람을 채용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2. 노스볼트의 파산 그리고 뒷이야기
2023년 3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노스볼트의 공장 르포 기사의 서두에 이런 표현을 합니다. “지금까지 노스볼트는 비판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공장은 가동 중이며 건설이 계속 진행되면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주식 시장 상장을 논의 중이며 아마 내년(2024년)에 그렇게 될 것이다.”
노스볼트는 나아갑니다. 2021년 스웨덴에 연구시설 ‘노스볼트랩’을 지었고 계획을 뛰어넘는 40GWh 규모의 공장도 건설합니다. 2021년부터 배터리 생산을 시작했으며 2022년부터는 고객, 즉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했어요. 노스볼트가 사전에 계약한 배터리 규모는 550억 달러, 우리 돈 76조 원 규모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하더라도, 공장이 잘 건설되고 생산만 원활히 이뤄졌다면 76조 원을 벌 수 있던 상황이었던 거죠.
2023년부터는 공장 증설에 나섭니다. 생산 규모를 40 GWh에서 60 GWh로 늘리고 독일에 두 번째 공장 건설 계획도 발표합니다. 2024년 1월, 유럽투자은행은 노스볼트가 아시아 외 지역에서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 생산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이유로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지원키로 합니다.
하지만 2024년 6월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작은 BMW의 계약 취소였어요. BMW는 노스볼트와 계약한 2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취소한다고 발표합니다. 이유는 ‘공급 지연’이었고요. 이와 함께 노스볼트의 수율이 상당히 나쁘다는 소문이 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이전부터 이런 소문은 퍼져 있었다고 해요). 이어 노스볼트는 독일, 캐나다 등에 공장을 지으려던 확장 계획을 취소하고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긴축 경영을 시작합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노스볼트의 파산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를 ‘북유럽 누아르 스릴러’라고 표현했는데요, 짧게 정리해 볼게요.
일단 수율입니다. 지난해 노스볼트가 생산한 배터리 양은 그들이 계획한 양의 불과 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2023년에는 1 GWh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터리를 생산했다고 해요. 전기차 수십만 대에 들어갈 배터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불과 1만 7000여 대에 넣을 수 있는 배터리만 생산했다고 합니다.
이에 계약한 물량 공급이 어려워지고, 이는 재정적인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습니다. 이미 올해 노스볼트의 인력은 7000명이 넘어선 만큼 인건비만 해도 상당했거든요.
배터리 건설과 관련된 장비 밸류 체인이 한국, 중국에 갖춰진 만큼 현장에는 한국과 중국인들이 많았다고 해요. 수율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노스볼트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과의 의사소통 문제도 컸다고 합니다.
제조 공장 건설 과정에서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노스볼트 공장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공장이 중단되면서 생산이 멈췄고, 이는 고객 공급 지연으로 이어졌고요. 올해 초 21억 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있던 노스볼트의 상황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이달 파산 신청 당시에는 3000만 달러만 있었다고 해요. 부채는 58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3. 중국 잘못이냐, 노스볼트 잘못이냐
공장 건설 과정에서 노스볼트의 부족한 경험도 드러납니다. 중국 장비 기업이 노스볼트와 이야기할 때 구글 번역기를 썼다는 이야기부터 배터리 셀 생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재활용은 물론 차세대 배터리 개발, 양극재, 음극재 생산 등 많은 것을 한 번에 해내려는 ‘오만’도 드러납니다(물론 실패했기에 오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요).
배터리 제조 공장이 ‘첨단’이긴 하지만 화학물질이 많이 사용됩니다. 스웨덴이 가진 높은 환경 기준에 이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어요.
올해에만 3명의 직원이 숨졌는데, 모두 퇴근 뒤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외에 공장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아 보여요. 스웨덴 공영방송에 따르면 화학물질 때문에 노스볼트 공장에서는 47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생산 지연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노스볼트는 배터리 공장 건설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일 거라고 생각지 못한 듯합니다. 칼슨은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지나치게 야심적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음모론’까지 등장합니다. 중국의 장비업체 ‘우리시드’가 배터리 제조 기계를 공급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서의 일부가 지워졌고, 시스템에 대한 정보는 전혀 공개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노스볼트를 망하게 한 뒤 중국이 파산한 공장을 매입, 이후 배터리를 생산할 것이라는 얘기죠.
너무 앞서나간 음모론 같긴 한데요, 노스볼트가 우리시드에 많은 것을 의존한 것은 맞는 듯해요. 배터리 제조를 해본 적이 없는 유럽의 기업이,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는 기업과 협업은 불가피했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우리시드가 첨단 장비가 아닌, 20년도 더 된 낡은 장비를 공급했다는 의혹도 있고요.
노스볼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스웨덴 욘쾨핑 국제경영대학의 크리스티안 샌드스트림 교수는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스볼트는 중국 우리시드에 너무 많은 의존을 해왔다. 몇 년 전 한국 기업을 거의 선택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중국 업체와 거래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웠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 교수는 노스볼트의 파산 한 달 전, 노스볼트는 실패했다면 그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는데 의미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발언을 짧게 정리해 볼게요.
“자본 조달의 상당 부분은 부채였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부채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쌓이면 채권자가 문을 두드리고 파산이 빠르게 올 수 있다.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정부는 녹색 거품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다. EU는 많은 돈을 제공하면서 위험이 크지 않은 환경을 만들었다. 아무도 비판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합의 문화가 생겨난다. 너무 늦었을 때까지 말이다.”
“이러한 모델이 터무니없지만 정치적 자본가에는 기회다. 그린 프로젝트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스웨덴 기업 중 일부는 마케팅과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한 성공전략(Playbook)을 만들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주목받지 않으려 한다. 노스볼트 CEO는 지난 9월 직원들에게 언론인과 대화하지 말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노스볼트는 총체적 난국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공장을 짓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요.
1972년, 엑손모빌에서 일하던 영국의 스탠리 휘팅엄 박사가 최초의 리튬 기반 이차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미국의 존 구디너프 박사가 한 단계 나아가 전압을 높인 이차전지를 개발합니다. 이어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 박사가 리튬이온을 활용, 배터리의 내구성, 안전성을 높여 이차전지 상용화에 성공합니다. 이 세 사람은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 화학상을 받습니다.
영국, 미국, 일본. 유럽과 미국, 아시아 과학자들이 사이좋게 이차전지를 개발한 셈이에요. 그런데 상용화 성공은 일본이 가져갑니다. 이후 일본은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을 석권합니다. 非중국 기준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을 살펴보면 중국(CATL, BYD, CAL, Farasis 등) 34%, 한국(LG엔솔, 삼성SDI, SK온) 46.4%, 일본(파나소닉, PPES) 12.5%에요.
이차전지 개발의 시작은 유럽, 미국에서 시작해 아시아로 넘어갔는데, 결국 아시아만 남은 이유가 뭘까요.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돌격 앞으로!' 문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고, 제조업 경험, 노하우도 있을 테고요.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유럽과 미국은 우리가 ‘전고체 전지’라 부르는 분야에 일찍이 초점을 맞추면서 뒤처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상용화하기에 어려운 분야에 너무 일직 투자했다는 거죠. 한국은 일본을 따라 리튬이온 전지에 뛰어들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고요.
현시점에서 보면 아시아 배터리 기업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유럽은 상용화도 실패하고, 노스볼트의 파산으로 생산도 실패합니다. 당분간, 아니 상당히 오랜 기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아시아 기업의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한중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요.
훗날 한국 기업이 이날을 회고하며 “선택이 옳았다”라고 말하려면, 우리 기업은 과연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배터리 직종에 계신 분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시기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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