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바로 주주예요. 주식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그 비율만큼 회사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경영진의 경영이 마음에 안 들 경우 주주들이 집단으로 모여 실력행사를 하기도 해요.
드라마 주주총회 장면에서 “의장, 이의 있습니다”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바로 이 같은 주주들의 행동을 묘사한 거예요. 경영진들은 주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셈이에요.
대규모 자금을 가진 집단이 한 회사의 주식을 왕창 사들이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해요. 회사의 주요 주주가 되어서 경영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예요. 이 집단은 자신들이 구상한 대로 경영이 이뤄질 경우 회사의 수익이 훨씬 나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주식을 사들여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회사 경영에 개입하죠. 회사가 우량해지고 주가도 훨씬 높아지면 주식을 팔고 나가요. 경영 개입으로 시세차익을 얻는 집단을 일컬어 ‘행동주의 펀드’라고 해요.
1. 행동주의 펀드, 뭐가 문제야?
우리나라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많아지는 추세예요. 재벌 가문이 창업한 지 어느덧 3~4세대로 접어들면서 상속세로 인해 지분율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우리나라 상속 주식 세율은 최대 65%). 지분이 낮은 상태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건 그만큼 외부 집단이나 다른 주주들의 간섭을 받기 쉬운 구조가 됐다는 뜻이에요. 행동주의 펀드들이 대기업 주식을 사들였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는 배경이죠.
소량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개미’들은 이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을 환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회사 주가가 올라가면 본인들도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가가 올라가는데 싫어하는 주주는 거의 없을 거예요. 쉽게 말해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는 같은 편인 셈이에요.
그런데 최근에 우리 주식시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한 회사의 소액주주들이 행동주의펀드를 고소했기 때문이에요. ‘한 배’를 탄 이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거예요. 반도체 회사 DB하이텍의 소액주주와 이 회사에 개입한 행동주의펀드 KCGI(강성부펀드) 얘기예요. 이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2. 소액주주들이 뿔났다
이야기는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가요. KCGI는 지난해 3월 DB하이텍 지분 약 313만 주(7.05%)를 사들였어요. 회사의 경영방식을 KCGI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면 더 좋은 회사가 될 거라는 이유였어요.
KCGI는 과거에도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그룹의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면서 주식을 사들이기도 했었어요. KCGI 개입에 DB하이텍의 많은 소액 주주들도 환영의 뜻을 보였어요. 회사가 더욱 건강한 방향으로 바뀌어 주가가 오르기를 원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어요. KCGI가 지분을 사들인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느닷없이 지분 대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DB하이텍 모회사인 DB아이앤씨에 매각한 거예요. 그것도 시장가격보다 10% 높게 말이에요.
‘블록딜’이란 주식 거래시간(평일 오전 9시~오후 4시) 외에 이뤄지는 큰손들의 대량 주식 거래를 말해요. 시장에 주식이 대량으로 나오면 주가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마감한 후에 거래가 진행되는 거예요. KCGI는 일반 소액주주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시간대에 주식을 팔고 나갔다는 의미예요.
KCGI가 사실상 DB하이텍에서 손을 떼게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음날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어요. 블록딜 가격과 비교하면 현재 약 40%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어요.
소액주주들은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죠. DB하이텍을 우량하게 만들겠다던 KCGI가 본인들은 수백억 원을 챙기고, 주주들의 주식 가격은 폭락하게 만든 셈이었으니까요. 소액주주들이 KCGI를 검찰에 고소하고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낸 배경이에요.
3. "미국선 일어날 수 없는 일"
소액주주들은 이번 사건이 미국과 같은 금융선진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연방세법’을 통해 행동주의 펀드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식 지분을 사들이더라도, 2년 이내 팔면 50%의 높은 과세로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펀드들이 단기 이익만을 노릴 경우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단물만 쏙 빼먹고 튀려는 자본들을 막겠다는 거죠.
이런 규정 덕분에 현재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단기 이익만 실현하는 행동주의펀드를 일컫는 ‘그린메일’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라고 해요. 그린메일이란 기업사냥꾼들이 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보낸 편지. 행동주의펀드 등이 경영권을 위협해 기업의 대주주에게 보유 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려는 행위다. 그 목적이 초록색 달러를 버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린메일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4. 행동주의 펀드 막을 방법 없다?
그러나 아직 금융시장이 미국만큼 발전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세밀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아요. KCGI가 9개월 만에 시세차익을 보고 나가더라도 이를 막을 규정이 없는 거예요.
소액주주들이 KCGI를 ‘배임죄’로 고소한 것 역시 마땅한 법 조항이 없어서예요. 배임죄란 쉽게 말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경영진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을 때 적용되는 법 조항이에요. KCGI에 적용하기엔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관련 규정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배임죄 카드를 꺼내든 걸로 보여요.
KCGI는 본인들의 지분 매각 행위가 정당하다는 입장이에요. 그들은 오히려 DB그룹 측이 KCGI가 가진 지분을 사주겠다고 요청해 와서 이를 수긍한 것뿐이라고 해요. KCGI가 처음에 목표로 했던 회사의 개선도 충분히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DB그룹 요청으로 주식을 판 거고, 원래 목적도 완성됐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인 거죠. 소액주주들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거예요.
소액주주들의 진정서를 접수한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태에서 부정거래 의혹이 있는지를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어요.
5. 전문가들도 규정 필요성 제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요.
강형구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에는 그린메일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일탈을 막을 규정이 없다”며 “행동주의펀드가 지배구조 선진화라는 좋은 취지를 내세운다고 해도,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라고 말했어요.
소액주주와 주식 시장의 눈은 검찰과 금융감독원으로 향하고 있어요. 그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혼란을 계기로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들의 감시자 역할을 하되,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자양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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