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일 잘 나가는 분야를 꼽으라면, 많은 분이 단연 인공지능(AI)을 택하실 것 같아요. 반도체 산업도 AI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고, 이외에도 여러 산업 전반에 AI의 발전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죠.
이번에는 에너지 분야, 좀 더 정확히는 원자력발전 분야에서 AI 산업이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어요. 구글‧아마존이 얼마 전에 연이어 소형 원전을 운영하는 기업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이를 계기로 ‘소형모듈원전(SMR)’을 주목하는 투자자가 확 늘어난 거예요.
1. SMR이 뭐야?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존의 대형 원자력발전소(원전)에 비해 발전 용량이 작고, 구조가 ‘모듈형’으로 이뤄진 원자로를 뜻해요. 발전 용량은 300 메가와트(㎿e) 이하가 기준이에요. 모듈이라는 말이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쉽게 말하면 원래 각각 따로 존재하던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을 하나의 밀폐된 용기에 담아 만든 원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론적으로 SMR은 건설 비용이 대형 원전의 5분의 1 정도이고, 건설 시간도 짧다고 해요. 기존 원전과 구조가 달라 냉각수가 훨씬 덜 필요하다는 점, 기존 원전에 비해 설치 장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이래요. 사고가 났을 때도 기존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예요.
SMR은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어요. 여러 기업이 SMR의 강점에 주목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SMR이 5~10년 안에 상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SMR을 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죠.
이런 전망 덕에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로 불리는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앞다퉈 SMR 관련 기업에 미리 투자하거나 전력 공급 계약을 맺는 모양새예요.
2. 구글‧아마존이 어떤 계약을 한 건데?
구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소형원전 스타트업인 ‘카이로스 파워’와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어요. 구글이 SMR 관련 기업과 계약을 한 건 처음이에요. 구글은 향후 카이로스가 가동할 6~7개 원자로에서 총 500메가와트(㎿)의 전력을 구매하기로 했어요. 카이로스는 첫 SMR을 2030년까지 가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구글은 적어도 5~6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미리 계약한 거예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E-commerce) 기업인 아마존이 바로 뒤를 이었어요. 아마존은 지난 16일(현지시간)에 미국 소형원전 기업 세 곳과 SMR 관련 투자 계약을 했어요. 미국 버지니아주 에너지 기업인 도미니언과 함께 기존 원전 근처에서 SMR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고, 워싱턴주의 ‘에너지 노스웨스트’와는 SMR 4기 건설을 지원하는 계약을 맺었어요. 또한 에너지 노스웨스트가 건설하는 원전에 첨단 원자로와 연료를 공급하는 ‘엑스-에너지’라는 기업에도 투자하기로 했어요.
챗GPT 공개 이후 AI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인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SMR 스타트업인 ‘오클로’에 직접 투자하기도 했어요. 오클로는 구글이 투자한 카이로스보다 더 빠른 2027년 SMR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대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SMR 기업 ‘테라파워’는 올해 6월 미국에서 첫 SMR 건설에 착수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어요.
3. 전기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
수준 높은 AI를 개발하려면, 고품질의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서 AI를 학습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렇게 AI가 학습하고 계속 발전하는 과정은 정말 많은 연산을 포함하고 있어서, 보통 예전엔 ‘서버’로 많이 불리던 데이터센터가 하루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해요. 그리고 IT 기업들이 너도나도 AI 개발에 뛰어들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는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고요.
이렇게 AI 산업에 전기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앞으로는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전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예요. 시장조사 업체인 우드매켄지가 이번 달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에 기업들이 신규 데이터센터에 필요하다고 발표한 전력은 약 24 기가와트(GW)였어요. 작년 상반기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해요. AI 개발 경쟁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대 IT 기업들 입장에선 어떻게든 나중에 전기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준비하는 일이 정말 중요해진 거예요.
원자로인 SMR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중요해요. 앞으로는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각종 규제를 따르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이에요. 탄소 중립을 위해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해도, 워낙 발전량이 제한적이어서 충분한 전기를 공급받기는 어려우니까요. 원자력발전은 여러모로 전기가 엄청나게 필요한 거대 기업들에 매력적인 선택지인 셈이에요.
4. SMR 키우기 나선 국가들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SMR을 두고 기업만 경쟁을 벌이는 건 아니에요. 국가 차원에서도 먼저 상용화에 성공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기술적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지원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후에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인 거죠.
SMR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 SMR 관련 규제를 줄여주는 한편, 최대 9억 달러(약 1조 2400억원)를 SMR 도입에 쓰겠다고 밝혔어요. 내년 1월까지 SMR 자금 지원 신청을 받은 뒤 선정된 두 가지 기술에는 최대 8억 달러를 지원하고, 나머지 1억 달러로 기타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래요.
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많은 세계 주요국이 SMR을 개발 중이고, 높은 수준의 원자력발전 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달 20일 대통령실은 올해 연말에 발표될 전력수급계획에 SMR 4기 건설 계획이 반영될 예정이라고 밝혔어요.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한국은 SMR에 국한하면 세계 2~3위권”이라며 “한국형 SMR을 개발하며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등 적시에 SMR 인허가를 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다”라고 말했어요.
5. SMR 기업 주가는 폭등
거대 기업들의 투자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SMR의 잠재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커지면서, 원전 관련 회사의 주가는 치솟았어요. 영국 경제매체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기준 오클로, 뉴스케일파워, 카메코, 콘스텔레이션에너지 등 원전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지난 일주일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어요. 직접적으로 SMR을 개발하는 오클로와 뉴스케일 파워는 최근 상승 폭이 더 컸어요. 일주일간 각각 99%, 37%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어요. 이 정도면 ‘SMR 투자 열풍’이라고 부를 만하죠.
하지만 SMR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경제성‧안정성 측면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대가 과도하다는 평가도 존재해요. 향후 5~10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다는 목표가 실제로는 훨씬 늦어질 수 있는 데다,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아무리 기존 대형 원전보다 안전하다고 해도 원자로를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검증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경우 몇 년 전부터 기술과 경제성‧안전성의 한계를 근거로 “SMR이 기후 위기의 대안이자 사고 위험을 억제하는 방안이 될 거라는 기대는 허상”이라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어요. 과연 소형모듈원전은 탄소 중립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정말 어떤 이들의 말처럼 과도한 기대일 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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