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이 13일 ‘한진 스닉픽(Sneak Peek)’이란 이름의 스마트 물류 시연회를 개최했습니다. 한진 남서울종합물류센터에서 한진이 자체 제작한 드론과 투자 지원을 통해 개발한 스마트 글라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직접 보여준 건데요. 물류센터 안에서 드론이 날아다니는 모습도 구경하고, 스마트 글라스를 직접 써볼 기회도 있었는데요.
사실 멋들어진 첨단 기술이나 제가 작성한 물류 현장을 보고 들은 후기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정말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느냐일 텐데요. 커넥터스가 실제 다양한 규모의 물류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자들에게 이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정말 물류센터 현장에서 이 녀석들을 사용할 것 같은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쓸모 있는 것도 있지만, 영 안 쓸 것 같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기술도 있더군요.
1. 시연회 현장에서 만난 기술들
한진은 이번 시연회를 위해서 실제 가동되고 있는 남서울종합물류센터 공간 일부에 시연장을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드론과 함께 스마트 글라스 시연을 위한 이커머스용 재고, 송장을 부착한 택배 상자를 미리 가져다 놨고요. 시연 중에 각각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 카메라에 잡히는 화면을 별도로 마련한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하여 이해를 도왔습니다.
1) 배송 아니고, 재고 실사 드론입니다!
먼저 한진 드론은 물류센터 내 재고조사 자동화에 활용됩니다. 드론이 사람 대신 높은 보관 선반(Rack)과 선반 사이를 날아다니며 재고 현황을 파악하는 방식인데요. 팔렛트 단위로 쌓인 재고에는 저마다 재고 현황 데이터와 연동된 바코드가 부착돼 있고요. 이를 드론에 달린 카메라 센서로 스캔하여 현황을 업데이트합니다. 한진 드론은 물류센터에서 이용 중인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와도 연동돼 조사 결과를 자동으로 시스템에 반영한다고요.
한진 측은 드론을 재고 조사에 투입함으로써 크게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재고조사를 상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고요. 다른 하나는 뛰어난 정확성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다른 센터와 달리 남서울종합물류센터는 연식이 좀 있는 센터입니다. 그래서 첨단 설비를 도입하기엔 물리적 한계가 있는데요. 이때 드론은 특별한 추가 설비 투입 없이, 비교적 저렴하게 도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동화 요소 기술입니다.
특히 물류센터에서 재고조사란 반기마다 1회에 한정해 진행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수기에 의존하고 있었고요. 13m 높이의 랙을 사람이 일일이 오르내리며 조사하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그 시간만큼 안전문제 등으로 센터 운영을 멈춰야 하거든요. 비효율적인 데다 정확도도 떨어질 수 있죠. 한진은 이 업무에 드론을 투입하여 작업자 없이도 24시간 내내 재고관리를 가능하도록 준비했습니다” - 한진 DT팀 관계자
실제 드론이 날아다니며 재고를 파악하는 모습은 꽤 귀여웠습니다. 한진 드론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벌이 재빠르게 날아다니며 일하는 모습이라기보단, 호박벌이 느릿느릿 정해진 코스를 따라 떠 다니는 모습 같달까요. 관련해 한진 측은 “드론 스펙상 최대 20m 높이까지 비행할 수 있고, 비행 속도도 훨씬 빠르다”면서도 “안정적으로 재고 바코드를 스캔하기 위해 적절한 속도를 찾아냈으며, 이를 적용한 결과”라 설명했습니다.
2) 두 손을 자유롭게 할 스마트 글라스
다음으로 한진이 공개한 스마트 글라스를 살펴보면, 착용 시 우측 렌즈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반투명 디스플레이가 재생되는데요. 작업자는 이를 통해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스마트 글라스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작업자가 바라보는 곳의 바코드를 스캔하거나 촬영을 할 수 있고요. 내장된 마이크로 음성 명령을 내려 디스플레이 화면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요컨대 스마트 글라스는 물류 작업자의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 핸즈프리 업무를 지원하는 기술인 거죠
한진에 따르면 스마트 글라스는 상품의 피킹(Picking, 집품), 패킹(Packing, 포장) 작업부터 택배 출고, 배송까지 넓은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상품 피킹 및 패킹 지원인데요. 작업자는 본인 업무로 할당된 주문에 따라 어떤 상품을 몇 개나 피킹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요. 특히 스마트 글라스가 작업자의 피킹 동선까지 추천해 준다는 점에서 피킹 효율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한진 측 설명입니다. 이후 상품을 집고 스마트 글라스로 스캔하는 방식으로 피킹을 마무리하는데요. 이어지는 패킹 작업 역시 택배 상자 바코드를 스캔한 뒤 표시되는 상품 종류와 수량만큼 스캔 및 포장함으로써 마무리합니다.
한진은 스마트 글라스가 배송 현장 택배기사들의 업무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택배기사가 할당받은 물량을 본인 차량에 상차할 때 스마트 글라스를 활용하여 두 손 자유로운 바코드 스캔이 가능하다고 했고요. 이후 배송 마지막 단계에서 스마트 글라스로 배송 결과 사진을 촬영하고, 배송 완료 처리하면 즉시 해당 고객에게 안내 문자와 함께 사진이 전송되는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다고 합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별도로 추가 취재해 봤는데요. 한진 스마트 글라스는 안드로이드 OS를 바탕으로 한진 WMS 및 택배기사 앱과 연동됩니다. 한진은 한 스타트업과 협력해 자사 스마트 글라스 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고요. 해당 소프트웨어 기획 및 개발 단계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기능 고도화, 다른 자동화 시스템과의 조화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진 스마트 글라스는 전용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한진이 이용 중인 WMS와 API 연동을 통하여 상호 간에 필요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택배기사 전용 앱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진 스마트 글라스의 픽업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물류센터 내부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형태로 구현합니다. 여러 명의 작업자가 동시에 픽업에 나선다 해도 서로 간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최단거리, 최단시간의 경로를 추천합니다. 이는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더 고도화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로봇을 비롯해 향후 물류센터 현장에 투입될 각종 자동화 기기와 인간 작업자가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할 예정입니다. 서로 간의 업무 분배와 함께 작업 동선 역시 겹치지 않도록 스마트 글라스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예정입니다” - 한진 DT팀 관계자
2. 그래서 이거 쓸 만한 거예요?
그래서 이거 정말 물류 현장에서 쓸 만한 건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아직 한진조차 두 기기를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진 않은데요. 올해와 내년 상반기까지 테스트를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요. 그럼 물류 현장에서는 두 기기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실제 기술이 적용되는 풀필먼트 및 택배 현장 실무자들에게 위 내용을 공유하여, 한진 드론과 스마트 글라스의 도입 가능성을 물었습니다.
먼저 드론입니다. 한진의 드론 재고조사 시연 내용에 대해 물류업계 실무자들은 “가장 현명한 드론 활용 방법 중 하나”라 평가했습니다. 이미 아마존, DHL을 비롯해 여러 물류 기업이 드론을 야외 배송용보다 실내 재고조사용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관련 스타트업들도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그 근거로 들었는데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최대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게 재고조사 드론이란 평가가 많았습니다.
다음은 스마트 글라스입니다. 이에 대해 풀필먼트 기업 관계자들은 “스마트 글라스를 사용하는 작업자들의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어요. 현장 관리자가 ‘두 손이 편한 대신 업무가 느려진다’는 조건과, ‘PDA 및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신 업무가 빨라진다’는 조건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누구나 후자를 선택할 거라고요.
더군다나 요즘 택배 프로세스는 점차 CJ대한통운과 네이버 도착보장이 확장하는 주 7일 배송, 24시간 마감이 점차 기본값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때보다 분절된 마감시간마다 몰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면서 스마트 글라스와 대화하고, 추천해 주는 경로를 따라가는 방식을 작업자들이 매우 답답해할 거란 평가입니다.
또 스마트 글라스 특성상 디스플레이가 반투명 형태로 늘 작업자 눈앞에 아른거리는데요. 이러한 정보 표시 방식이 매우 바쁜 이커머스 피킹·패킹 작업자의 착각을 불러일으켜 작업 오류가 늘어날 것이라는 피드백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력이 낮은 작업자는 도수를 넣어줘야 하느냐’, ‘시력이 낮으면 디스플레이 자체가 잘 안 보일 것’이란 평가도 있었고요.
택배기사들도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비췄습니다. 풀필먼트 현장과 마찬가지로 스마트 글라스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기존보다 작업 속도가 저하될 거란 평가가 많았는데요.
현직 택배기사에 따르면 현재 스마트폰의 택배기사 전용 앱을 활용하는 게 충분히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스마트 글라스가 꼭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고요.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고 일하는 데는 많은 적응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활동하는 택배기사들이기에 기기 오류에 대한 대응이 원활할지 우려를 표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다만 스마트 글라스가 부가기능으로 제공하는 외국어 번역 기능은 유용해 보인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한진 스마트 글라스엔 해외직구 물량에 대해 송장 정보를 자동으로 한국어로 번역해 주는 기능이 있는데요. 현직 택배기사에 따르면 해외 직구 배송 건은 영어로 된 배송지 관련 정보를 즉각 파악하기 힘들어 번거로운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스마트 글라스가 이러한 번거로움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한 편에선 이러한 기능을 굳이 스마트 글라스를 통해서만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택배기사 전용 앱에 먼저 도입하여 카메라로 번역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한 택배기사도 있었거든요.
그 외에도 ‘스마트 글라스를 분실이나 도난당하면 택배기사가 다 책임져야 할 것 같다’, ‘회사 측이 택배기사의 업무 모습 하나하나를 감시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등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요. 종합하면 드론과 달리 스마트 글라스는 최전선의 작업자가 직접 착용한 채로 일해야 하는 만큼 아직은 편의성이 와닿기보다 낯섦과 불안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드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물류기업인 한진이 스마트 기기와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에 직접 투자하고, 시연회를 개최해 현황을 공유한 것은 신선하게 다가왔는데요. 한진의 현장 도입 의지가 확실한 만큼 예정된 테스트 기간을 거친 후의 한진 드론, 그리고 스마트 글라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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