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만들어진 AR 글라스 중 가장 진보된 제품이라고 믿습니다.” 26일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메타가 공개한 AR 글라스, ‘오라이언(ORION)’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몇 주 전부터 메타가 미국 멘로파크 본사에서 개최하는 ‘커넥트 2024’ 행사에서 스마트 안경 프로젝트가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외신을 통해 흘러나왔는데요,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메타가 공개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까요. 메타(옛 페이스북)와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빅테크’에 올라선 메타는 스마트폰 이후의 미래를 꿈꾸며 AR 글라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AR 글라스, 메타가 꿈꾸는 ‘메타버스’ 세상에 한 걸음 다가서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메타의 오라이언을 살펴보겠습니다.
1. AI 글라스 오라이언
메타가 공개한 오라이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뿔테 안경보다 조금 더 두껍습니다. 무게는 98g. 안경보다 무거워요. 가벼운 안경의 경우 렌즈를 합해서 10g 정도에 불과합니다. 뿔테 안경은 약 30g 전후로 보시면 됩니다.
수많은 기기와 함께 배터리까지 있어야 하니 기존 안경보다는 무거울 거예요. 메타가 지난해 공개한 스마트 안경인 ‘레이밴 메타 스마트 안경’의 무게는 50g 정도입니다. AR, VR을 즐기기 위한 전자기기인 메타의 퀘스트(약 500g)와 애플의 비전프로(약 600g) 보다는 가벼워요.
오라이언은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그네슘은 알루미늄보다 가벼울 뿐 아니라 전자기기가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열을 빠르게 분산시켜 줍니다. 즉 덜 뜨겁습니다.
렌즈는 ‘마이크로 LED(초소형 LED)’가 채우고 있습니다. 렌즈의 소재는 ‘실리콘 카바이드’입니다. 가볍고 굴절률이 크다고 해요. 렌즈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가장 뒤쪽에 있는 렌즈에서 빛이 나오면 앞에 있는 여러 층을 거치면서 화면을 구성합니다. 이때 굴절률이 높으면 우리 시야를 가득 채울 수 있어요. 오라이언의 시야 각도는 70도라고 하는데요(작아 보이지만...), 이제껏 출시된 AR 글라스 중 가장 좋은 스펙이라고 합니다. 오라이언에는 총 7개의 카메라가 탑재돼 있고 배터리 수명은 약 2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오라이언을 착용해 본 후기에 따르면 렌즈는 어두운 색처럼 보이지만 쓰고 나면 일반 안경처럼 외부 환경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해요. 해상도는 1 도당 13픽셀로 퀘스트의 25픽셀과 비교하면 다소 떨어집니다. 다만 메타는 현재 퀘스트의 해상도에 맞먹는 AR 글라스도 개발했으며 퀘스트와 마찬가지로 선명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해요.
실리콘 카바이드는 규소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인데요, 다이아몬드를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로 꼽힙니다. 다만 가격이 상당히 비싸고 단단해서 제조 과정에서도 큰 비용이 필요한 소재로 알려져 있어요. 메타의 설명에 따르면 실리콘 카바이드를 이처럼 디스플레이에서 적용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메타는 향후 이 기술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해 다양한 AR, VR 기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오라이언으로 바라본 세상입니다. 저렇게 주변의 모든 공간을 나만의 작업 공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공간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닌 시대가 오나 봐요. 그러면 우리는 '알트탭'을 빠르게 눌러가며 창을 수차례 바꿀 필요가 없겠죠? 화질이 좋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려요.
2. 카메라 대신 근전도 밴드
이번에 공개된 또 하나의 새로운 기술은 손목에 착용하는 밴드(팔찌)입니다. ‘신경 인터페이스’ 기반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정확히는 ‘근전도(electromyography)’를 이용한 기술로 볼 수 있습니다.
근전도란 신경과 근육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분석하는 기술이에요. 스타트업 ‘CTRL-랩스’가 만든 기술인데 메타는 지난 2019년 이 회사를 1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이 기업은 머리뼈를 뚫지 않아도 뇌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읽어서 이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하려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구현은 더 어려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밴드가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요. 비전프로를 사용했을 때 두 손이 반드시 헤드셋 아래에 있어야 했습니다. 헤드셋에 있는 카메라가 손동작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요. 하지만 이 밴드를 이용하면 별도의 카메라가 없어도 됩니다.
즉 손가락을 움직일 때 밴드 근처의 신경과 근육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를 감지한 뒤 신호를 안경으로 전달해 주거든요. 즉 안경 앞에 펼쳐진 디스플레이를 조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손을 꺼내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머니에 넣은 채로, 혹은 손을 등 뒤에 둔 채로 손가락을 움직여도 이를 인식할 수 있어요.
이 밴드는 이러한 방식으로 몇 가지 제스처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엄지로 집게손가락을 비비면 항목을 선택하고, 중지와 엄지를 비비면 앱 화면을 호출하거나 숨길 수 있습니다.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화면을 스크롤할 수 있습니다.
비전프로나 퀘스트와 비교했을 때 이러한 움직임이 보다 정밀했다는 후기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눈은 포인터의 역할을 하고, 비행기 게임을 할 때는 머리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밴드는 ‘세련된 느낌’, 즉 완성도가 높았다고 하는 데 따라서 메타가 이를 곧 판매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고 해요. 메타는 내년, 이 밴드와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포함된 안경을 합쳐 ‘하이퍼노바’라는 코드명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 마치 스마트폰 충전기처럼 보이는 ‘무선 컴퓨트 팩’이 제공되는데요, 이 기기는 안경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장치예요. 이렇게 하면 글라스 자체의 배터리 소모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안경과 12피트, 약 3.6m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합니다. 두 개의 반도체가 탑재돼 있다고 해요.
오라이언에는 메타AI가 장착돼 있습니다. 음성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볼 수 있고 테이블 위에 놓인 식료품을 인지한 뒤 요리법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AR 글라스는 애플의 비전프로가 보여준 다양한 공간컴퓨팅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비전프로가 공개됐을 때 저커버그가 혁신이 부족하다며 살짝 비판한 적이 있는데, AR 글라스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을까요.
메타는 오라이언의 정확한 가격과 출시일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외신에 따르면 현재 가격은 약 1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해요. 우리 돈 1328만 원에 해당하는데요, 비싸도 너무 비싸네요. 앞서 소개한 실리콘 카바이드 렌즈의 가격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현재 메타는 회사 내부 인력은 물론 외부 개발자를 위해 약 1000개의 안경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3. 상용화 시기와 극복과제
메타는 이번 AR 글라스의 출시일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거 오라이언 프로젝트를 비롯해 AR 글라스와 관련된 메타의 여러 보도를 살펴보면 2027년쯤이 목표 날짜로 보입니다. 지난 2023년 공개된 메타의 목표에 따르면 2024년 1세대 AR 글라스, 2026년 2세대, 2028년 3세대 버전 출시를 목표로 ‘가열하게’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2027년에 오라이언의 첫 번째 상용화 제품이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요.
2026년이건, 2027년이건 중요한 부분은 오라이언이 메타가 그리고 있는 미래를 보여주려는 ‘상징적인 제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자동차로 치면 상용화에 한 발 더 가까워진 ‘콘셉트카’라고 해야 할까요.
25일 영상을 통해 공개된 오라이언을 본 전문가들의 생각도 짧게 정리했습니다. 이들은 오라이언의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제품이라고 입을 모았어요. 먼저 국내에서 VR 콘텐츠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개발자의 의견입니다.
“중요한 점은 디스플레이에요. 빛이 차단된 상태에서 디스플레이를 보는 퀘스트, 비전프로와 비교했을 때 ‘안경’이 가진 최대 단점은 외부 빛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거든요. 빛이 조금만 밝아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문제를 기술적으로 얼마나 해결했는지 공개한 영상만으로는 확인이 어려워요. 실내외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마 밝은 곳으로 가면 디스플레이가 잘 보이지 않을 걸요. 이거 해결하기 진짜 어려운데...”
“배터리도 궁금해요. 많은 일을 할수록 배터리가 빨리 닳아요. 기사를 보면 배터리 예상 수명이 2~4시간이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중간에 충전 없이 다 볼 수 있을까요. 아직 이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 많을 거예요.”
AI 연구를 하는 대학 교수는 역시 ‘가격’을 이야기했어요. “100g이라는 무게도 고민해봐야 해요. 퀘스트나 비전프로와 비교하면 가벼운데, 대신 그 기기들은 머리에 쓸 수 있거든요. 안경은 코와 귀에 걸쳐야 해요. 사용 후기 기사를 보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안경이 가볍지 않던 시절 기억나세요? 밤에 안경을 벗으면 코 피부가 눌려 있었죠. 뿔테는 무거웠고요. 무게를 더 줄이기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할 것 같고요. 가격을 과연 얼마나 떨어트릴 수 있는지도 봐야죠. 우리 돈으로 약 500만 원 하는 비전프로도 비싸서 안 팔리는데, 해당 기능을 대부분 가지고 있으면서 무게를 줄이고 편의성을 높인 오라이언... 과연 가격을 크게 줄일 수 있을까요. 지켜봐야죠. 잘 봐줘서 3년 뒤 500만 원으로 칩시다. 500만 원짜리 안경, 사실 거예요? 난 한 200만 원까지 떨어져야 고민해 볼 것 같은데요...”
페이스북은 웹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를 경험하며 저커버그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그 의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데스크톱에서 모바일로의 전환이 있었던 것처럼, 모바일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안정되기 시작했을 때 ‘좋아, 미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심어보자’라고 생각했죠. 그게 뭔데?라고 한다면 우리가 오라이언에서 보여준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중략) 우리는 이를 소비자에게 적합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는 오라이언의 공개를 보면서 또다시 빅테크 기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은 만들어진,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혁신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누군가 새로운 것을 만들면 특허를 요리조리 피해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거 만들지 뭐’라며 판 자체를 흔들어 버립니다.
메타는 오라이언을 스마트폰을 이을 새로운 기기로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저커버그의 말처럼 ‘스마트폰’이 인류 역사에서 혁신의 끝은 아닐 테니까요. 누군가 혁신을 하기 전에 먼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저 용기와 대담함이 부럽습니다. AR 글라스가 새로운 미래로 자리 잡는다면 이를 중심으로 전 세계 산업은 재편될 겁니다. 삼성, LG와 같은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그리로 이동할 테고요.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집니다. 메타는 실리콘 카바이드 기반의 렌즈를 AR, VR과 관련 있는 여러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물론 비용을 받고)한다고 합니다. 근전도 밴드 기술의 활용도 또한 무궁무진할 거고요. AR 글라스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어떤 혁신적인 기기를 접할 수 있게 될까요. 이를 고민해 보는 차원에서 오늘 저녁은 ‘치킨’ 어떠세요? 왜냐고요? 저커버그는 치킨 마니아로 알려져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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