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제 되는 전세금 피해 유형 중 하나가 신탁부동산의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로, 다수의 뉴스 기사를 통해서도 그 실태가 보도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신탁 부동산은 도대체 어떤 부동산이고, 이러한 부동산에 입주한 세입자가 어떠한 연유로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한 기사는 보기 드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탁, 그중에서도 전세금 피해에서 특히 문제 되는 유형인 부동산 담보 신탁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신탁 부동산의 세입자가 왜 법적 보호를 못 받는 것인지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1. 신탁 부동산의 임대차 계약 구조
신탁(Trust, 信託)이란 한자 의미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A가 B를 믿고 본인 소유 재산의 관리와 처분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이때 재산을 맡기는 주체인 A를 ’위탁자‘, A의 재산을 맡아 관리·처분하는 B를 ’수탁자‘라고 합니다.
신탁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부동산 담보 신탁’은 대출을 원활히 받기 위해 부동산을 담보로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 채무자(위탁자)는 신탁사(수탁자)에 본인 소유 부동산의 관리·처분을 위탁하고, 채권자를 ‘우선 수익자’로 지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집주인인 위탁자가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우선 수익자가 해당 부동산에 대해 최우선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선수익자로 지정된 채권자는 채무액에 대한 강력한 담보 장치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본인 소유 부동산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 대신 부동산 담보 신탁을 활용하는 이유를 궁금해하실 수 있습니다. 부동산 담보 신탁은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절차도 간단하며, 채권자(우선 수익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 세입자의 법적 보호 미비
그런데 최근 이렇게 신탁된 부동산에 대해 소유주인 집주인(위탁자)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호소하는 세입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동산 중개인조차 신탁의 정확한 의미를 잘 알지 못해 세입자에게 관련 위험을 고지하지 않거나, 오히려 “대형 신탁사가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한 부동산이다“라고 잘못된 사실을 말하며 계약 체결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약 체결 후 집주인(위탁자)이 채권자(우선 수익자)에게 빌린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신탁사는 부동산을 공매에 넘겨 매각 절차를 진행합니다. 이때 발생한 매각 대금은 우선 수익자인 채권자가 최우선으로 수령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는 부동산을 공매 절차에서 매수한 새로운 소유자에게 인도해 줘야 하고, 더 이상 해당 부동산에서 살 권한이 없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신탁사나 새로운 소유자에게 임대차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신탁사와 채권자(우선 수익자)가 사전에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임대차계약을 동의한 경우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대법원 2019다300095, 2019다300101 판결). 앞서 설명한 대로 부동산 담보 신탁은 우선 수익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는데, 세입자의 보증금을 보호해 줄 경우 우선 수익자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세입자가 살고 있는 곳이 신탁된 부동산일 경우, 집주인의 사정으로 부동산이 공매로 넘어가게 되더라도 임대차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는 집주인(위탁자)에게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통상 공매까지 진행된 위탁자는 금전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3. 세입자 구제 방안
한편 세입자가 위와 같이 임대차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경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부동산 중개인(및 중개인협회)에 대해 손해 배상 청구를 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법원은 부동산 중개인이 세입자에게 단순히 해당 부동산이 신탁되어 있다는 사실만 알리고, 신탁의 구체적 의미와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다면 세입자가 임대인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을 손해로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법원은 임차인에게도 책임이 있는 점을 고려해서 통상 임대차 보증금 전액이 아니라 50% 내외를 손해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세입자로서는 임차하려는 부동산이 상태가 아무리 좋고 조건도 마음에 들더라도 신탁되어 있다면 계약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부동산에 대해 세입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매우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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