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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2000~2023년 과학기술 트렌드 분석 (feat. 사이언스 분석 결과 기반)

by 트렌디한 경제 상식 202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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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23년 과학기술 트렌드 분석 (feat. 사이언스 분석 결과 기반)
2000~2023년 과학기술 트렌드 분석 (feat. 사이언스 분석 결과 기반)

 

연말이 되면 과거가 그리워집니다. 올해는 어땠고, 지난해에는 어땠고, 3년 전, 5년 전에는 어땠고. 물론 그렇다고 1980년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요.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달라졌으며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 기업에서 ‘기술’과 관련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을 발표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정말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해봤어요. 바로 2000~2023년의 기술 분석입니다.

 

제 마음대로 분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대 과학저널로 불리는 ‘사이언스’의 분석을 토대로요. 사이언스는 1989년부터 매년 ‘올해의 과학기술 성과(Beakthrough of the year)’를 발표하고 있어요. 해당 연도에 과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연구나 발견, 기술 등을 10건 선정해 발표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사이언스의 발표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등이 골고루 섞여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에는 이를 기반으로 기술 흐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도록 할게요. 사이언스 자료를 토대로 그 해의 성과를 찾아 정리해 봤습니다. 

 

1. 2000~2023년, 기술트렌드 조사

사이언스는 매년 올해의 과학기술 성과 10개를 발표합니다. 그중 1개를 대표적인 성과라고 표현하고 나머지는 딱히 순위를 매기지는 않아요. 다만 순서는 있습니다. 10개를 모두 분석하기가 쉽지 않아 상위 5개를 뽑아서 정리를 해봤어요. 위의 ‘표’가 이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성과를 단순히 표현했기에 저만 알아볼 수 있는 내용도 있을 것 같지만요. 그래도 큰 틀에서 어떠한 기술들이 주목받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상했듯이 2000년대 초반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눈에 띕니다. 인간의 유전체를 낱낱이 분석하겠다던 이 프로젝트는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대규모 과학 프로젝트였습니다. 인간 게놈이 가진, 약 30억 개의 염기쌍을 분석하는 게 목표였어요.

 

2000년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 초안이 발표되면서 사이언스가 이를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를 꼽은 듯합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특정 질병에 대한 개인의 위험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맞춤형 치료의 문이 열립니다. 특정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알게 됐고, 이는 신약 개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DNA를 시퀀싱 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1990년대 한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조 원, 기간은 10년에 달했습니다. 지금은 단 100달러, 몇 시간이면 가능한 시대가 됐고요. 나아가 화석의 DNA를 분석하는 기술로도 연결이 되면서 고대 인류, 고대 생물의 진화 과정을 파악하는데도 기여를 합니다.

 

물론 인간 유전체 분석은 “유전자가 만능은 아니다”를 깨닫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면 불치병 정복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특정 형질, 즉 IQ라던가 신장(Height) 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정확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봤거든요. 해당 형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여럿 찾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IQ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수백 개로 추정됩니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성과는 2004년 줄기세포입니다. 황우석 박사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9년이 지난 2013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학 연구진이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합니다. 차병원 연구진은 이듬해 배아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망막 치료제 임상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고요. 현재 다양한 질병 치료를 위해 임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08년 이후에는 고대 인류의 DNA 분석과 함께 우주개발, 즉 행성과 혜성, 소행성 탐사와 관련된 성과들이 눈에 띕니다. 공룡의 진화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많은 연구가 발표됐는데요, 조금 과장 섞어서 말하면 공룡이 진화해 지금 우리가 즐겨 찾는 ‘닭’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공룡의 모습도 지난 20년간 많이 바뀌어 왔고요. 아래와 같습니다.

 

2015년을 전후로 중력파 발견, 힉스입자 발견을 비롯해 블랙홀 이미지 구현 등의 성과가 보입니다. 또한 유전자 가위와 같은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 개발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올해 노벨상을 받은 알파폴드와 인공지능(AI) 관련된 성과들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2. 과학기술 성과 트렌드

2000~2023년을 8년씩 나눠 세 구간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6가지 분야로 나눠서 정리해 봤어요. ㅇDNA, RNA, 단백질 등과 관련된 기초연구 (2) 질병 치료, 신약, 임상 연구 (3) 생명의 진화와 우주 (4) 양자기술과 핵융합 (5) 인공지능 (6) 신물질과 기후. 대략 이 정도로 나누니 상당수 기술을 그룹화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기술을 분류해 보니 정리가 수월했습니다. 그리고 23년의 트렌드가 조금은 보이는 듯했어요. 바이오 분야의 경우 2000~2008년 성과의 상당수는 DNA, RNA, 단백질과 관련된 기초 연구가 많이 차지했습니다. 아무래도 2003년 완료된 게놈 프로젝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여요.

 

2008~2015년 사이에는 유전자 가위를 비롯해 암 질환 면역 요법 등 ‘특정’ 질병 치료를 위한 기술이 선정된 것이 눈에 띕니다. 2016~2023년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비롯해 혈액암 치료제, 비만과 치매 치료제, 에볼라 치료제, 수명 연장과 관련된 성과 등 인간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성과들이 대거 선정됐고요.

 

바이오 분야가 이러한 변화를 이어왔다면 생명의 진화와 우주 카테고리에서는 23년 동안 꾸준한 연구 성과가 선정됩니다. 아마 사이언스가 주요 성과를 발표할 때 이러한 부분도 신경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초과학은 중요하니까요. 트렌드 변화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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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초과학에서 상용화로

2008~2015년에는 행성과 소행성, 혜성 탐사와 관련된 성과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2016년 이후에는 중력파 발견과 같이 거대 인프라를 활용한 성과들이 보입니다. 11조 원을 투자한 제임스웹 망원경도 최근 우주로 날아갔으니 앞으로 이 분야에 다양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고요.

 

2016년 알파고를 시작으로 AI는 꾸준히 사이언스의 10대 기술에 오르며 시동을 겁니다. 아직 달아오르지는 않았지만 핵융합이라던지, 양자컴퓨터와 같은 기술들도 2016년 이후 나타나고 있어요. 기초연구에서 응용 연구로의 확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가 융합되고(가령 유전자 가위 기반의 치료제와 같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바로 ‘데이터’입니다. 게놈 프로젝트 이후 유전체 관련 연구는 데이터 사이언스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가 늘어났습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정체불명의 신호를 분석하는 일도,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에서 양성자를 충돌시킨 뒤 발생하는 현상 분석에도 데이터 처리가 필요합니다. 네안데르탈인, 호모 날레디와 같은 고대 인류의 유전자 분석도 마찬가지고요. 더 이상 대학원생을 쪼며 데이터를 분석해 내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면서 AI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CPU 혼자서 할 경우 ‘버벅거리던’ 일들이 GPU를 통해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2012년 개발된 알렉스넷이 큰 영향을 미쳤고요. 결국 여기까지 오자 AI의 부상, 엔비디아가 ‘갓비디아’가 된 이유가 마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를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저는 5년 전에 엔비디아 주식을 사지 않았을까요?

 

4. 다가올 신기술은

현재 생성형AI라는 플랫폼(이라고 불러도 되겠죠?)은 막강한 능력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대로 만들긴 쉽지 않아요. 바로 생성형AI가 가진 ‘한계’ 때문입니다.

 

GPU 기반의 알렉스넷을 만든 일야 수츠케버는 “2010년대가 스케일링의 시대였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경이와 발견의 시대로 돌아왔다. 모두가 다음의 큰 것(next thing)을 찾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Breakthrough가 필요한 시기라는 거예요.

 

알파고와 함께 AI가 등장하고 GPU 기반의 생성형AI가 막강한 성능을 자랑하며 우리 삶으로 들어옵니다. AI의 기능을 지금보다 더 낫게, 더 월등하게 만들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GPU를 수만 개 엮으면, 당연히 성능은 좋아지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확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거죠. 그래서 수츠케버가 ‘다음의 큰 것’을 찾고 있다고 표현한 게 아닌가 싶고요.

 

그렇다면 next thing은 과연 무엇일까요. 몇 번 다뤘던 양자컴퓨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컴퓨터가 가진 계산 능력을 극대화한 만큼 GPU가 가진 비용, 데이터센터의 전력과 같은 AI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소형 모듈 원전(SMR),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면 핵융합도 next thing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의 전력 확보를 위해 폐쇄된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습니다. 당장 3~5년 이내에 엄청난 전기가 필요한데, 이 기간 내에 빠르게 지어서 전력 확보가 가능한 것은 SMR 밖에 없다고들 하거든요. 아직 상용화는 안 됐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강제로(?)’ 계약하며 드라이빙을 걸고 있으니 이른 시기에 뭔가 돌파구를 찾아내지 않을까요.

 

IT 분야에서 이러한 변화가 예상된다면 바이오 분야는 어떨까요. 최근 흐름 대로라면 신약 개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줄기세포, 유전자 가위와 같은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임상이 현재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비만치료제처럼 예상치 못한 효과를 활용하는 ‘드러그 리포지셔닝(Drug Repositioning)’ 효과에 따른 신약이 쏟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알파폴드의 활약도 앞으로 두드러질 거고요.

 

뉴럴링크가 추구하고 있는 BMI(인간-기계 인터페이스) 기술도 상용화될 것으로 봐요. 이미 BMI와 관련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물론 BMI 분야는 뉴럴링크 설립 이전에도 상당한 발전이 기대되는 분야였습니다. 현재 뉴럴링크가 했다고, 또는 하겠다고 발표한 것들 상당수는(뇌에 칩 넣어 마우스 조작, 뇌에 칩 넣어 로봇팔 조작) 이미 5~10년 전에 많은 과학자가 성공한 기술이긴 합니다. 다만 일론 머스크는 ‘상용화’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또한 그의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보니 기술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00~2023년의 성과들을 살펴보니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초과학의 성과들이 응용과학, 상용화와 가까워지고 있어요.

 

너무 당연한 결과인 만큼 기사로 쓴다고 하면 재미없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럴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을 실제로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기술의 흐름은 일정한 방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입니다. 그래핀의 발견처럼 우연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물론 그래핀을 만들려는 노력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데이터의 누적과 이를 분석하기 위한 AI의 발전, 그리고 AI의 계산 능력을 극복해 준 'GPU의 재해석'처럼 말이에요.

 

이전에도 한번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기술의 흐름이 너무도 빨라서 가끔 낙오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곰곰이 돌이켜보면,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기술이 변하는 그 과정에 서 있으면 두렵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만 저만치 앞서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잠시 떨어져서 기술의 흐름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는 생성형AI라는 배를 타고 파도를 헤쳐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물론 다른 기술에 올라타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배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멀미도 나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이랄까요. 종착지에 다다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에서 내려서 그다음 교통수단으로 갈아탈 것이고요. 종착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다음 교통수단이 궁금해지는 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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