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seek 쇼크에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이 읽었고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국내외 전문가들께서 좋은 글들을 많이 써 주셨기에, 따로 전문적 글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deepseek 등이 촉발하는 혁신이 앞으로 미-중 구도 변동, 나아가 한국의 상황에 어떻게 변동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다각도의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와 별개로, deepseek가 주는 쇼크가 사실 미국의 AI 산업 자체뿐만 아니라, 미국이 그간 다소 느슨하게 혹은 게으르게 돈놀이 위주로 이끌어 왔었던 것 같은(혹은 그렇게 보이는), 이른바 '미국식 혁신'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 아닌가 하는 시각도 보이는 것 같아서, 이에 대해서는 저도 한 번 생각을 나누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1. 가속화된 산업 전환 경향
일단 이러한 시각은 최근의 AI에 몰린 투자 광풍, 미디어의 광적인 집착, 주식 시장의 널뛰기 경향, 이에 대한 반발 (예를 들어 미국 AI나 반도체 회사의 주식이 과대 평가 되었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반론이 거세지는 이른바 AI 버블 경계론 등)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식 혁신이 AI 시대에도 지속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전에, 일단 지난 반세기 간, 특히 90년대 자유무역주의 시대 진입 이후의 최근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더 가속화된 산업 전환 경향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 연구에서도 잘 관찰된 바이지만, 미국은 제조업 등 전통적인 산업이 고비용 구조로 바뀌는 시점부터는 대부분 동아시아 등 상대적으로 비용이 싼 지역으로 외주를 주거나 혹은 자체적으로는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을 늘 먼저 선점해 오는 전략을 펼쳐 왔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력 격차를 벌리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90년대-00년대 PC-인터넷 전환기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벌린 것, 00-10년대 모바일 전환기에서 독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과의 격차를 벌린, 10년대 이후 바이오산업에서 유럽, 일본과 격차를 벌린 것 등이 있겠습니다.
실제로 EU 전체와 비교해 보면 08-09년 정도만 해도 미국과 EU의 GDP는 비등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2배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고 또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산업 전환 경향이나 전략만 놓고 본다면,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산업에 집중되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과연 고비용 저효율 방식인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의 미국 정치-경제-산업 지도자들, 특히 IT와 AI를 이끌고 있는 이른바 신 테크노크라트들이 이번 AI 발 산업 전환의 시기에서도 미국이 지난 30년 간 충실하게 따라온 산업 트랜지션 문법에 따라, 또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및 혁신 이후 파생되는 시장의 선점이라는 논리로 접근한다면, 이들은 미국의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앞으로도 계속 달러 패권이 유지된다는 강력한 믿음 하에, 돈이 얼마가 되었든 일단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관건은 지난 30년 간의 산업 전환 문법이 ① 새로운 혁신의 초입을 먼저 선점 → ② 혁신의 chain을 창출하는 플랫폼 선점 → ③ 플랫폼에서 파생되는 서비스 선점의 파급효과까지 리드하는 방식에 기반을 두었던 것에 반해, 1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AI 전환은 선점의 효과가 정말 서비스 파생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불확실하다는 것이죠. 물론 미국의 AI 진영은 1에서 2로 당연히 흘러갈 것으로, 시간문제일 것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90년대 후반 경의 닷컴 버블 시기 초입이나, 00년대 후반의 모바일 전환 시기에서도 기존의 시장이나 산업계 반응은 보수적이었고 심지어 회의적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상거래를 하고, 인터넷상에서 심지어 정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00년 정도만 하더라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죠.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이 DSLR 카메라나 하이파이 오디오 같은 기존의 엔터테인 산업은 물론, 아예 PC까지 대처한다고 믿는 사람도 그 당시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몇 년이 지나자 그러한 시각은 금방 구시대적인 근시안이 되어 버렸고, 실제로 새로운 플랫폼이 창출하는 시장은 기존의 시장을 금방 잠식해 버리는 것을 넘어 아예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AI도 이러한 산업사 관점에서 본다면 산업이 제대로 전환하는 초입, 즉, S자 곡선으로 본다면 급상승의 초입 부근에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메커니즘에 따르면 1번 정도의 단계, 2번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단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2. 미국을 위협하는 혁신 국가와 경제의 등장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지난 30년 간 1-2-3의 공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위협할만한 혁신 국가나 경제는 사실상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시계를 조금 더 뒤로 돌리면 80년대 초반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긴 했습니다. 트랜지스터가 최초로 탄생한 미국에서 당연히 트랜지스터가 집적되며 현재의 개념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던 반도체 산업은 원래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미국의 것이라 생각했던 업계의 지형이, 순식간에 일본의 반도체 5 공주 (혹은 6 공주)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수율 및 원가 경쟁력에 의해 뒤집힌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죠.
반도체는 누가 보더라도 이미 70년대 초반부터 양산 (특히 반도체 화학공정의 개발과 도입 이후)되기 시작하면서 당시의 AI, 당시의 모바일, 당시의 인터넷 같은 파괴적 혁신의 엔진임에는 분명했고, 미국은 이 혁신의 엔진으로 당시 최대의 경쟁국이었던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견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미국은 안방 시장을 동맹국이었던 일본에게 내어주게 되었고, 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단순히 수율이나 원가 경쟁력 만의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큰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 이전 가전-전자 산업이나 자동차, 철강, 조선 등의 제조업에서 일본이나 독일 등에 조금씩 밀리고 있던, 심지어는 이미 안방 시장을 다 내어준 형국이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산업 리더십을 되찾기 위한 돌파구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일본에 금방 안방까지 내어주게 된 형국을 맞게 되었으니 당시 미국의 정치인들, 산업 전략가들은 굉장히 당황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이를 기술이나 투자에서 촉발되는 혁신의 선점-플랫폼의 점유 경쟁 공식보다는, Yellow Fever 같은 국제정치의 노골적 힘의 논리와 미-일 관계라는 안보 특수성, 달러 패권을 위한 다자간 협상 전략 등을 활용하여 견제했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오히려 90년대부터 GAAT-WTO로 이어지는 자유무역주의가 글로벌 수준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이 반도체 산업, 특히 반도체 제조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로 분산되는 것을 딱히 견제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인텔이나 AMD, 마이크론 같은 기업들은 당시에도 여전히 강력한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였지만,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전자, 그리고 여전히 강력했던 일본의 메모리반도체 업체들, 독일의 MCU나 전력반도체 업체들,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게 된 것도 이 시점 전후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혁신의 최대 엔진이라고 보았을법한 반도체를 독점하기보다 오히려 이렇게 분산시킨 이유는 반도체, 특히 반도체 제조업은 이미 그 당시에 1단계를 넘어 2-3단계로 진입한 상황이었고, 이제는 반도체 자체가 아닌,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후방 산업, 예를 들어 통신이나 자동차, 인터넷 분야 등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수익성을 가져다주는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도체 산업 자체가 또한 너무 커지고 복잡해져 글로벌 분업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반도체 전략은 2001년 중국이 마침내 WTO에 가입하는 것으로 완성되다시피 했는데, 이는 다분히 미국의 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사실 2001년 이전부터 이미 90년대부터 개혁개방 기조를 유지하며 경제 성장을 위해 세계 무역 시장에 하루라도 빨리 진입하고 싶어 했지만, 이를 견제했던 것은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이랬던 미국이 21세기가 되자마자 중국을 무역 파트너 삼아 심지어는 반도체 산업까지도 글로벌 분업 구조의 한 축으로 인정할 수 있었던 전략의 이면에는 중국이 가져가는 산업이 상대적으로 저부가가치 분야였고, 비교적 저렴한 생산원가와 인건비를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소모품 조로서의 반도체 양산 기지이자 동시에 거대한 소비 시장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초반만 시점만 하더라도 이미 일본은 물론, 한국, 대만 같은 동아시아 반도체 제조 강국의 인건비는 상당히 많이 오른 상황이라는 사실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충분한 혁신 역량을 미국이 다음 혁신 엔진을 찾는 시점까지는 아마도 갖추지 못할 것이라는 다소 나이브한 계산, 또한 중국이 글로벌 무대에 진입하여 경제가 성장하고 중진국 레벨에 진입하면 중국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시민혁명을 거쳐 민주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기에 성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3. 빠르게 일정을 단축하고 있는 중국
지난 30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잘 작동해 왔던 이러한 미국의 혁신 선점 전략은 바로 이 중국이 미국의 예상 스케줄보다 훨씬 더 빨리 시간을 단축하며 기술 생태계를 자립하고, 동시에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장기간 지속시키면서도, 또한 무엇보다도 top-down으로 전략적 산업 투자를 정부(공산당)가 얼마나 집중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미국의 계산이 빗나가기 시작하면서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Deepseek 쇼크 이전에도, 이미 중국은 2014년부터 본격화된 이른바 '반도체 빅펀드'를 앞세워, 미국의 민간 투자에 준하는 수준의 집중적인 반도체-IT 분야 투자를 지속했고, 이 빅펀드는 5년을 주기로 마치 마틴게일스 도박 투자 전략처럼 배증하며 세 번에 걸쳐 갱신되며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 나오게 된 것이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중국 IT-가전-통신 업체들의 세계 시장 진출, 전기차-배터리 업체들의 세계 시장 석권, 삼성과 하이닉스를 위협하는 CXMT, 인텔과 TSMC를 쫓아오는 SMIC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등장, 아마존을 위협하는 알리바바나 바이두 혹은 테무, 메타를 위협하는 틱톡, 웨이신이나 바이두 같은 존재들의 등장일 것입니다.
이런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이라는 지리적, 정치적 바운더리에 다소 묶여 있지만, 사실 이러한 바운더리는 언제든 내적으로 혹은 외적으로 느슨해질 수 있고, 그렇게 될 경우, 누적된 규모의 경제와 전략적인 집중적 투자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은 80년대 일본 반도체, 자동차 업체들이 그랬듯, 미국의 안방 시장을 석권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미국이 다음 혁신 엔진으로 내세우려는 AI는 그나마 미국이 기존의 EU, 일본, 한국, 대만은 물론, 중국과도 충분히 격차를 벌리고 있고, 그 격차를 더 벌리기 위해 스타게이트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까지 발표하며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분야임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혁신의 문법은 예전의 공식대로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Deepseek 쇼크로 대표되고 있는 데다가, 이러한 쇼크가 나오는 주기는 이제 점점 더 짧아지고 더 커질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AI 혁신 전략은, 그것을 입안하고 계획하는 사람이 누구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은 맞습니다.
중국의 혁신 주도권 위협을 목전에 둔 미국의 고민은 이것일 것입니다. AI가 미국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들이 목숨 걸고 매달리는 다음 세대의 혁신 엔진이 되는 것은 아직까지는 맞아 보이는데, 지난 30년 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실상 전 분야에 걸쳐서 미국과 대등하거나 혹은 심지어 추월하려는 상대가 등장한 상황에서, 이러한 혁신 전략을 이끌고 가 본, 승리해 본, 지배해 본 경험이 없는 현세대가 정말 이 혁신을 미국이 온전히 선점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바로 그렇습니다.
미국은 이를 위해 여전히 강력한 AI 생태계와 거대한 투자라는 두 가지 무기로 수성의 태세를 취할 수도 있지만, AI는 1에서 2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수성 전략은 시대와 맞지 않습니다. 1에서 2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1에서 쌓아 온 혁신의 드라이빙 포스가 다른 분야로 파생되며 연결되도록 자연스럽게 흐르게 놔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AI를 만약 미국이 강력한 국가안보기술 카테고리로 지정하여 보호 기술로 특정하는 시점부터는 1에서 2로의 자연스러운 산업적 파급효과는 인위적으로 제한되기 시작하고, 이는 그 흐름을 받아야 하는 산업에서 파생효과가 그만큼 축소됨을, 그래서 자연스럽게 3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도 늦춰지고, 그 파급력도 같이 축소되는 연쇄반응이 생기게 됨을 의미합니다.
미국이 이를 안보적 관점에서 더욱 끌어안으려 할수록, 미국이 신경 쓰지 않는 영역에서는 오히려 중국발 오픈 혁신 생태계가 싼 가격과 쉬운 접근성 (물론 개인정보의 자의 반타의 반 헌납을 그 대가로..)을 앞세워 기존의 3세계는 물론, 주요 아시아 국가들, 심지어는 미국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EU로까지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중국의 혁신 생태계도 그 지속 가능성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혁신은 어쨌든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적인 마인드를 보장하는 토양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본의 흐름에 제한이 있어서도 안 되고, 사람의 다양성과 보상구조가 오픈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공산당이 주도하는 투자와 혁신 생태계는 그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와 경제성장률의 이면에는 AI와 로봇으로 대체되어 버리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불안해지는 job security 문제가 누적되어 있고, AI와 IT, 반도체로 쏠리는 민간 분야의 투자는 그만큼 다른 산업으로의 불균형한 투자를 대가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중국, 특히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도 이미 G1-G2 대결구도가 굳어진 현 상황에서 향후 최대의 전략 요소가 될 AI, 그리고 그것이 이루게 될 생태계의 주도권을 놓고 양보할 여유는 없으며, 더욱더 집중적인 투자와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중국 경제 전체, 산업 전체에 있어, 일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것이지만, 이것이 다음 세대까지 지속되는 혁신 경제로 바뀔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4. 트럼프의 정치 논리에 영향을 받고 있는 기업들
공교롭게도 이러한 AI 쇼크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시점의 미국 상황도 녹록지는 않습니다. 1월에 시작된 트럼프 2기로 대표되는 현시점의 미국은 MAGA로 대표되는 21세기형 고립주의를 택하게 되는 시점을 맞고 있고, 미국의 혁신을 주도해 온 FAANG 등의 테크노크라트들은 점점 트럼프식의 정치 논리에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트럼프 2기 시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미국에서는 다양한 AI 스타트업들이 당장 내일이라도 또 경천동지 할 새로운 발명품을 세상에 내어놓을 것이고, 엔비디아는 Physical AI를 표방하며 모빌리티나 바이오, 에너지 등으로 대표되는 2단계 진입까지도 이끌고 싶어 할 것이고 또 그럴만한 영향력도 당분간 보일 것이며, 앞으로 몇 년간 CES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신 신사유람단 핑곗거리이자 친목회 장소로 인기를 누리며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조금씩 미국은 자신이 계획했던 AI 산업의 혁신 엔진에 의한 1-2-3 단계 진입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혁신을 미국이 주도하여 이끌고 가기에는 지금까지 미국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경쟁자가 생겼고, 이 경쟁자는 기술 패권을 쉽게 미국에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대 이후의 중국이 만약 1980-1990년대의 일본 같았다면, 미국은 자국의 안보적 자산 전개가 가능하고 정치적 협력이 가능한 파트너로서, 예를 들어 미-일 반도체협정 같은 구도를 만들면서 공식적으로는 협력하는 구도로 혁신의 엔진을 공동 개발하는 전략을 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중국과 미국의 정치체제, 문화는 많이 다르고, 앞으로도 어떠한 한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기에 (전 지구적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양국의 AI, AGI, domain AI 등으로의 전략적 협력, 파급력 분배 협력 등은 마치 과거 냉전시대에 미-소 양국이 핵무기를 공동으로 개발한다는 같은 소리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사실 문자 그대로 AI, 나아가 AGI는 사실상 핵무기에 준하는 국제 정치적 파급력마저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바, 현재의 미친듯한 투자 경쟁이나 혁신의 경쟁은 더 이상 국가 간 협력의 대상이 아닌, 독점의 영역으로 바뀌고 있고, 만약 국가 간 협력의 틈이 보인다면, 그것은 적대국이 아닌 소수의 핵심 기술을 가진 동맹국들 위주로 확대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에, 이는 아직 형태만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의 COCOM 2.0 같은 다자간 전략기술 수출통제기구의 출현이 기정사실화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중국 입장에서도 혼자서는 AI 전체, 혹은 AGI나 이후의 domain AI 파급력을 독점적으로 이끌고 갈 수 없으니 동맹국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통적인 BRICS나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3세계 외에도, 앞서 언급한 EU나 동남아까지도 AI의 혁신 성과 분배라는 미명을 앞세워 그 영역을 넓히려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미-중의 AI를 둘러싼 혁신 경쟁이 필히 어떤 방향에서는 국가 간 땅따먹기 경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5. 인공지능, 반도체의 혁신에서 일어나는 병목지점
보통 AI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 AI 반도체 등의 병목지점이 중요하다는 것이 많이 언급되고, 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디어나 포럼에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병목지점이 너무 과하게 소수의 기업이나 국가에 의해 지배 구도가 굳어지게 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안티테제가 어디에선가 맹아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실현되었을 시점에서는 이미 파괴적 혁신의 방향을 뒤집기가 어려워져서 기존의 체제는 금방 앙시엠레짐이 되고 혁신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한국이 미-중의 AI 혁신 땅따먹기 게임에서 어떤 중요한 병목지점이 될지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중 하나로 언급되는 AI 반도체 전용 HBM 같은 일부 기술도 지금의 하이닉스 위주의 독점 구도가 사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마저도 모를 일입니다. Deepseek을 만든 회사가 이른바 미국이 강요한 결핍 속에서 성능이 한참 뒤떨어지는 화웨이의 Ascend 칩이나 AMD, NVDA의 이종 칩들을 닥치는 대로 동원하여 로우레벨에서 (CUDA 이전의 훨씬, 그야말로 기계어스러운 로우레벨을 의미) 다수 병렬 연결하여, 마치 암달의 법칙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 코어 수준에서의 병렬연결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며 컴퓨팅 하드웨어의 병목 지점을 우회하였듯, AI 생태계에서 기존의 강자들이 지키고 있던 병목 지점은 언제든 우회할 수 있는 기술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소버린 AI도 좋고, AGI를 향한 국가 간 경쟁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핵심적인 병목지점을 과연 몇 개나 앞으로 만들거나 가져갈 수 있고, 기존의 병목지점을 위협할만한 기술의 맹아가 한국에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합니다.
6. 인공지능 오픈 생태계의 전망과 전략
미국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취해 왔던 혁신의 열매 선점과 파급력 시장을 지배하려는 전략을 어쨌든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달러 패권이 유지되는 한, 아니 사실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거의 무한에 가깝게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을 앞세워 가장 혁신적인 기술과 인력과 기반과 데이터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성긴 그물도 물을 다 담을 수는 없듯, 기존의 병목지점은 언젠가는 예고 없이 다른 것으로 갑자기 대체될 수 있고, 동시에 혁신의 맹아가 나오는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의 누적 역량은 기존에 누가 더 많이 쌓았느냐보다, 앞으로 누가 더 많이 집중적으로 쌓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취해 오던 전략의 유효성을 빨리 다시 되짚어 검토해야 할 때일 것입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면 이렇게 광풍에 가까울 정도로 한 방향으로 몰아치던 미국 주도의 AI 혁신 경쟁이, 2단계로 진입하기 전, 중국이 먼저 2단계로, 특히 첨단 제조업과 방산을 포함한 중화학공업, 전략과 에너지, 그리고 바이오 같은 또 다른 전략 분야에서의 선점 효과를 가져갈 경우, 미국 내에서 AI에 대한 버블 위기론이 순식간에 몰아닥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엄청나게 쏠렸던 자본들이 뱅크런 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자본도 일부 포함되겠지만, 결국 돈의 논리를 쫓아온 다국적 자본들의 대이동이 포함될 것이고, 그 자본들이 향하는 곳은 보나 마나일 것입니다. 이러한 파국적 상황까지 가는 것을 미국은 당연히 원치 않을 것이고, 이를 위해 아직 미국에 '선수'를 둘 권리가 남아있을 때, 미국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취해왔던 대중국 기술-무역 제재일 수도 있고, 데탕트에 가까울 정도의 대타협이 될 수도 있지만,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그 어떤 옵션도 함부로 예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트럼프 내각의 대체적인 대중 매파적 성향을 고려할 때, 다수가 예견하듯,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대중 견제책의 강화로 쏠리게 되면, 혁신의 동력에서 오히려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 외의 시장부터 중국 AI 혁신 생태계의 먹잇감이 되게 만드는 기제가 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중국의 AI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견제의 유효성에는 물음표가 생깁니다. 반대로 반도체 협정 같은 데탕트가 이뤄진다면, AI 버블은 당분간 뒤로 밀릴 것이고, 심지어 아마 안 올지도 모릅니다.
미-중은 사이좋게 세계 AI 혁신 성과와 플랫폼을 공유하며 AGI 시대를 공동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고, 반도체와 AI 시장은 불확실성 해소로 투자의 효율성이 높아져 1-2-3의 전환이 가속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데탕트는 양국 중 어느 한 나라가 원한다고 될 일이 아니며, 양국이 동시에 원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작아 보이기 때문에, 과거 냉전시절 미-소 양국의 핵확산금지조약에 준하는 협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실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앞으로 제2, 제3의 Deepseek 쇼크는 오픈 생태계가 유지되는 한 중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계속 등장할 것입니다. 그것이 앞으로는 AI 자체의 혁신보다는 이제 현실 세계로의 이식으로 더 강력하게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쇼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기도 합니다. 특히 AGI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에서 언제이냐의 문제로 바뀐 이상, 지금까지의 국제 정치적 논리와 기정학적 전략, 병목지점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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