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비디아의 주가가 크게 조정을 받으면서 인공지능(AI) 유행이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옵니다. 올해 AI의 한계(LLM의 한계)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아직까지는 AI에 대한 기업과 투자자들의 확신은 굳건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AI붐이 계속되려면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킬러 서비스'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하는 것 같아요. 오늘은 피그마라는 회사의 행사인 '컨피그 2024'를 중심으로 생성형 AI 킬러 앱은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어도비에 팔렸다가 무산된 피그마
피그마라는 회사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같은 이름의 UI/UX 디자인 툴인 ‘피그마’를 서비스하는 회사. 2022년 ‘포토샵’등을 만드는 어도비에 회사를 200억 달러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독점적’ 요소가 있다는 규제기관들의 판단 때문에 지난해 인수계약이 최종 무산됐죠. 그는 지분의 10%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매각에 성공했을 경우 약 2조 8000억 원을 손에 쥘 수 있었죠
피그마는 '컨피그(Config)'라고 하는 사용자 커뮤니티 행사를 매년 여는데요. 저도 여기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피그마는 손쉽게 말하면 앱이나 웹을 디자인하는 소프트웨어라고 보면 되는데요. 우리가 웹이나 앱으로 사용하는 여러 서비스를 피그마에서 디자인합니다. 서비스의 시각적인 구성부터, 이를 클릭했을 때 어떤 다른 화면에서 넘어가는지도 디자인합니다.
또, 협업툴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들어와서 같이 일할 수 있고요. 디자이너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디자인한 것을 바탕으로 코딩을 해주거나, 개발자와 함께 협업하면서 코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피그마를 통해 마치 서비스하는 것 같은 ‘프로토타입’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적인 서비스 론칭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피그마의 기능을 살펴보니 2년 전 피그마를 소개할 때 보다 더 발전했고, 무엇보다 디자인과 코딩의 결합이 많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피그마는 UI/UX 디자인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할 정도로, 앱이나 웹을 디자인할 경우 대부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고 해요.
2. '힙스터' 스타트업
2024년 컨피그에는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직접’ 참석을 했는데요. 디자이너 행사이고, 스타트업 행사라서 그런지 그 어느 행사보다 '독특'했습니다. 행사장과 굿즈의 디자인이 매우 감각 있다고 느껴졌고요.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곡들도 매우 아티스틱 했죠. 바로 한 주 전 공개된 한국 아이돌 ‘뉴진스’의 신곡 ‘Supernatural’이 배경으로 깔리는 것을 보면서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초청한 연사들의 면모도 독특했습니다. 보통 테크기업들의 행사를 가면 테크기업의 임원이나, 테크기업의 고객사 임원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 컨피그 2024도 물론 그런 세션이 많았지만 ‘독특한 감각’을 가진 ‘창의력’ 넘치는 사람들이 많이 연사로 등장했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의 CEO인 제스퍼 쿠토트드인데요. 이 회사는 독특한 디자인의 음악기기(휴대용 신시사이저, 테이프 리코더 등)를 만드는 회사인데요. 최근에는 외부 기업과 콜라보를 한 제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쿠토트드 CEO가 컨피그 2024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했죠. 실리콘밸리에는 이 회사의 팬이 많아요.
피그마의 이번 컨피그 2024는 어도비와 인수계약이 깨지고 나서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였어요. M&A가 실패로 돌아간 만큼, 장기적으로는 기업상장(IPO)으로 가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돈을 버는 회사로 탈바꿈해야 하고, 투자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트렌드도 쫓아가고 있음도 보여줘야 하죠. 바로 AI 같은 것 말이죠.
3. 컨피그 2024 : 피그마 AI 등장
컨피그 2024에서 피그마는 중대한 발표를 몇 가지 했는데요. 하나는 피그마 서비스의 UI를 통째로 바꾸겠다는 것. 딜런 필드 피그마 CEO는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것보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면서 사용자들과 새로운 UI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어요. 새로운 UI를 내놓고,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고서 이를 전면 적용할지 아님, 아예 철회할지를 정하겠다는 것이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다운 접근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로 피그마는 ‘피그마 슬라이드’라고 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공개했어요. 피그마는 웹사이트/앱서비스를 만드는 것이지만 이를 ‘슬라이드’ 제작용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피그마는 이를 아예 전용 서비스로 공개. 다만 비용을 내야 하는 유료 서비스.
마지막으로 피그마 AI라고 하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능들을 공개했는데요. 입력한 텍스트에 맞춰서 페이지를 만들어주거나, AI가 만들고 있는 페이지의 디테일을 적당히 채워주는 일을 해줘요. 또한 만들어진 페이지를 AI가 자동으로 연결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줘요.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기능은 작업하고 있는 페이지의 각 레이어 이름을 AI가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이름을 입력해 놓으면 협업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건데 귀찮아서 안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피그마에 따르면 피그마 AI는 텍스트는 오픈 AI GPT를 사용하고, 이미지 생성은 아마존의 타이탄 모델을 가져왔다고 해요. 일단 올해 베타테스트를 시작하고,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내년부터 공개. 월 사용료를 어떻게 할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4. 이제 UI/UX 디자이너 사라지나요?
피그마 AI를 본 저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첫 번째, 생성형 AI 기술이 사람의 생산성을 높여주고, 필요한 사람의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어요. UI/UX 디자이너도 마찬가지. 근본적으로 UI/UX디자이너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 회사에 필요한 디자이너의 수는 줄어들 것 같아요. 또한, 기존에는 UI/UX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직접 이걸 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겁니다.
두 번째, 파운데이션모델, 혹은 LLM이라고 불리는 기술이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올 텐데요. 이 기술이 미칠 산업적 효과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의 발달이 만든 것이 넷플릭스와 유튜브인데요. 이 두 가지는 TV와 영화관이라는 미디어 유통 산업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까지도 바꿔놨죠. 생성형 AI 기술은 기존의 산업에서는 그저 새로운 ‘기능’으로 들어가 큰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 엄청난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5. 인간을 이해해야 AI도 만들 수 있다
컨피그 2024에서 제가 들었던 재미있는 세션과 스타트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바로 ‘닷(Dot)’이라는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 ‘뉴 컴퓨터’. 애플에서 일하던 창업자가 만든 이 AI서비스는 좀 독특해요.
우리는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하는 ‘AI비서’가 등장하면, 우리가 말로 부탁하면 AI가 내가 원하는 것을 척척해주는 것을 상상해요. 애플이나 오픈 AI, 구글이 만들고자 하는 AI가 그런 모습이죠. 그런데 ‘뉴 컴퓨터’의 창업자들에 따르면 AI비서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AI에게 "뉴욕으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해 줘"라고 하면 가격과 시간을 분석해서 쉽게 AI가 예약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AI가 알아야 할 것이 많아요.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좌석 중에 무엇을 예약할지 알아야 하고, 내게 충분한 돈이 있는지도 체크해야 하고, 좌석도 창가와 복도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내 스마트폰의 AI비서는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내 매우 개인적인 정보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뉴욕에 사는 내 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어때?라고 추천해 줄 수도 있죠. 그런데 이렇게 AI가 내 개인적인 정보를 이용해서 나에게 다가온다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좋아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6. AI비서는 '확장된 나'를 반영한다.
뉴 컴퓨터에서 내놓은 ‘닷’은 AI개인 비서인데 사용자와 AI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예요.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닷은 정보를 기반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내가 얘기한 것에 대한 팔로우업을 해줘요. 내가 토요일마다 달리기를 한다고 하면,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내가 달리기를 하기 싫다고 하면 나를 독려해주기도 하죠. 심지어 ‘전 여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상담을 해주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일정을 관리하고 메모를 저장하는 AI비서를 만들고자 했던 ‘뉴 컴퓨터’는 개발을 하면 할수록 이 ‘AI비서’가 사실은 ‘확장된 자아(Extension of Self)’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고 해요. 왜냐면 이 AI는 나의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고민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자기와 대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AI가 꼭 진짜 인격을 갖춘 존재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그들이 대화하는 것은 스스로입니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싶은 나'와 '달리기를 하기가 귀찮은 것' 모두 '나'입니다. 하지만 AI라는 기술의 힘을 빌려 우리는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싶은 나'가 '달리기를 하기가 귀찮은 나'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AI비서’의 모습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터미네이터’나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처럼 매력적인 이성이 아니라, 결국엔 확장된 '인간의 자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인 것 같아요.
‘닷’도 피그마 AI처럼 자체 LLM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GPT’나 ‘앤스로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앱이에요. 챗GPT가 개인적인 질문을 하면 틀에 박힌 재미없는 응답을 하는 것과 달리 ‘닷’은 진짜 친구에게 상담하는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죠. 오픈 AI나 앤스로픽같이 범용 AI를 만드는 큰 회사가 만들기 어려운 서비스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 같아요.
과거 피그마에 관한 레터에서 창업자 딜런 필드의 개인사에 대한 얘기를 썼었는데요. 1992년생인 그는 불과 스무 살에 대학을 중퇴하고 피그마를 창업해요. 사회경험도 없이 창업을 했다가 직원들을 이끌어나가는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요. 마침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셔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죠.
창업 10년 만인 2022년 어도비에 회사를 매각한 것은 그래서 10년간의 고생 끝에 만들어낸 큰 성과였어요. 하지만 매각이 무산되면서 다시 그는 엄청난 무게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어요. 눈이 한층 높아진 투자자와 직원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게 회사를 키워야 하는 거죠. 적어도 회사를 200억 달러(28조 원) 이상의 가치로는 만들어 상장을 시켜야 하는 거죠.
오늘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23년 대만국립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말로 마쳐보려고 해요.
"Today is a very special day for you and a dream come true for your parents. It is a surely day of Pride and Joy. Your Parents have made sacrifices to see you on this day. Let's show all of our parents and grandparents many of them our appreciation."
"오늘은 여러분에게는 매우 특별한 날이고 부모님에게는 꿈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분명 자부심과 기쁨이 넘치는 날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오늘의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시다."
오늘 여러분의 희생이 멋진 미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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