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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거시경제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by MINK1016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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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미국은 중국을 인큐베이팅했으나 중국은 기대를 저버렸다

 

1. 헨리 키신저의 사망

헨리 키신저가 사망했습니다. 100세가 넘어서도 장거리 항공편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워낙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인 데다가, 20세기의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라 "살아 있었어?"라는 물음이 나올 법도 한 분이지만 이 사람은 올해 7월에도 중국을 갔다 왔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한 시대를 대표하기도 합니다.

 

키신저가 만들고 이끌어 왔던 시대는 하지만 끝났습니다. 코로나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도 마스크 한 장을 놓고서까지 싸우던 미국의 엘리트들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동의하는 단 하나의 명제가 바로 "중국, 특히 시진핑 정권은 위험하며 믿을 수 없다."가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처음부터 중국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의외로 중국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실제로 시진핑은 주석직에 오르기 전 미국을 방문하였고, 아이오와 주의 농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LA레이커스의 NBA 정규 시즌 경기를 관람하였고 매직 존슨과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는 등 자연스럽게 미국과 밀접한 행보를 보였고, 이는 고작 10년 전입니다. 즉 미중관계가 나쁘다는 현 상황 자체는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사실 키신저가 70년대에 짜 놓은 판을 이제 막 벗어나는 중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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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이든과 시진핑의 관계

재미있는 것은, 시진핑의 2012년 방미를 조율한 것은 바로 지금의 미국 대통령인, 그리고 키신저에게 "외교를 잘 모른다."라고 디스를 당하기도 했던 조셉 바이든이라는 것입니다.  2012년 시진핑의 방미 당시 바이든과 시진핑 둘은 조금 촌스럽지만 각자의 언어로 쓰인 협력의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자랑스레 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트럼프가 되었든 바이든이 됐든 중국을 거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대결 구도를 해제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에반 메데이로스 前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를 "협력과 경쟁에서 경쟁과 대응으로의 변화"로 설명합니다.

 

이는 중국에 대해 날 선 대립주의로 일관한 전 대통령 트럼프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의 정치를 지배하는 엘리트 집단 전체가 초당적으로 중국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엘리트는 왜 중국에 대한 신뢰를 잃었는가? 이는 미국이 중국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인 과정을 살펴보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키신저를 빼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3. 미국과 중국의 관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맺은 시점 자체가 미-소간 대결이 극을 달리던 197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입니다. 72년 그 유명한 Nixon goes to China가 일어난 후 미국은 본격적으로 중국을 국제사회에 참여시켰습니다. 여기서 판을 짠 사람이 오늘 사망한 헨리 키신저입니다.

 

물론 닉슨-마오쩌둥 회담에는 대가가 필요했습니다. 미중 밀착 자체가 미국의 소련 견제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키신저는 이를 대만으로 지불하기로 결심했고, 피노체트를 싸고 돌 정도의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그는  71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UN 상임이사국으로 만들며 대만을 매몰차게 버렸습니다. 곧 대만은 국제사회의 왕따로 전락했고 미국은 대만에게 무기를 판매하며 이를 달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에도 미국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당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 상품의 더 많은 수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경제적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중국을 WTO에 밀어줬습니다. 미국의 자신감이 가장 넘쳐흐를 때이며, 팍스 아메리카나가 영구적으로 지속될 거라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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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국을 인큐베이팅한 미국과 기대를 저버린 중국

즉, 결국 중국을 G2로 만들어 준 가장 일등공신은 그 누구도 아닌 미국, 그리고 이를 움직인 사람이 바로 키신저였습니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UN 상임이사국으로까지 만들며 70년대에 소련 외 공산주의 국가를 UN 상임이사국으로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였을지 잘 생각해 보면, 국제사회 일원으로 참여시켜 줬고, WTO 가입으로 경제적 성장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후 중국이 미국에 보인 행보는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 입장에서는 철저한 뒤통수 및 배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을 자국 내에서 모두 차단한 후 되려 자국의 플랫폼으로 미국의 청소년들을 사로잡았으며, 한편으로는 미국에 어마어마한 무역적자를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바로 난사군도 피어리크로스 암초에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면서부터였습니다. 중국은 2015년 미국에 해당 인공섬을 군사화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지만 후일 미국 정보자산에 의해 담수 저수지가 발견되며 중국이 약속을 어겼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군에 입대를 할 때에도 회사에 입사를 할 때에도 '선서'를 그렇게 중요시하는 미국이 자기 입맛대로 약속을 어기는 중국을 곱게 볼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5. 기대를 저버린 중국과 미국의 향후 대응

때문에 바이든이 재집권을 하든, 권토중래를 노리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든 미국은 중국을 절대로 지금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은 자명합니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 입장에서 그들이 어느 당에 서 있든 중국은 '배신자' 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배신자에게 간도 내주고 쓸개도 내 줄 바보는 세상에 없습니다.

 

2020년 미 대선이 치러지기 전 FT는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 대대적인 '동맹국 재배치'가 있을 것으로 예고했습니다. 트럼프가 철저하게 외면했던 유럽을 재우대하는 등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식입니다. 실제로 벌어진 양상은 달랐지만, 미국은 아시아를 다시 떠나 중동과 유럽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는 중동보다 훨씬 단순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중동은 시아-수니라는 극단적인 종파 갈등뿐만 아니라 그 한복판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박혀 유대교, 기독교 간의 갈등도 존재하는 정말 복잡한 지역입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이 종파 갈등에 비교하면 한일의 역사 갈등은 그냥 갓난아기 생떼 수준으로 보일 것이 뻔합니다. 독도라는 영토 문제도 있지만, 다 육지로 연결되어 탱크를 보내면 그만인 돈바스나 중동과는 달리 독도는 미국 관점에서 분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애매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6. 헨리 키신저의 중국에 대한 전략

그러므로 미국의 관심이 중동과 유럽으로 옮겨 간 이상 사실 미국이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홀대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습니다. 키신저는 올해 7월 중순까지만 해도 중국을 깜짝 방문해 대단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중국은 앞에서는 손님을 예의 있게 받되 국영언론으로 면전에서는 못 할 말을 다 전달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는데, 존 케리도 토니 블링컨도 옐런 언니도 피하지 못한 이 중국 국영언론의 잔소리를 키신저만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가히 형님에게는 예우를 갖춘다는 나라답습니다.

 

실제로 키신저가 말년까지 친중 기조를 유지했던 것은 소련 붕괴 이후에도 그는 러시아를 가장 위험한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트럼프 정권 하에서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 중국을 움직이는 전략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마 이는 평생을 미소 양강구도에서 긴장의 완화에 평생을 바친 그의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헨리 키신저 사망, '평화 인큐베이팅' 시대의 종말 (feat. 미국과 중국의 관계)

 

7. 헨리 키신저의 이념, 평화

좌우간, 미국에서 Immortal Bastard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도 인간이니만큼 불멸은 아니었나 봅니다. 물론 그도 비판받을 구석이 많습니다. 실제로 키신저의 명료했던 이념은 "국가 간 협력으로 평화를 유지한다."였고, 그 협력에 있어 대상국이 독재 체제든 전제 왕정이든 이슬람 신정 국가든 그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평화 그 자체가 미국에 가장 큰 국익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칭 방구석 현실주의자들이 허구한 날 키신저를 소환해 대면서 말하는 힘으로 인한 평화라든지 뭐 이런 것들은 사실 키신저를 하나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키신저는 적어도 미국의 국익을 평화라는 상태와 논리적으로 얼라인시키고, 그 평화라는 상태를 항구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교적 현실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라든지 항모라든지 하는 건 나중 문제고, 결국 냉전 시기 핵전쟁이 터지지 않았던 것은 '대화' 덕분이었습니다.

 

즉 냉전 이후 현재까지의 상태는 결국 키신저가 만든 인큐베이터에서 유지돼 왔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큐베이터도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세계는 긴장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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