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집권 보수당이 ‘상속세 폐지’를 다음 총선 공약으로 추진하기로 해 화제입니다. 영국은 근대적 상속세를 최초 도입한 나라입니다. ‘상속세의 나라’ 영국이 왜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상속세 기원지 영국 “완전 폐지할 것”
먼저 영국의 상속세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유산이 5.3억 원 미만이면 상속세가 안 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높으면 초과분에 40% 세율을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10억 원을 상속받으려면 1억 8,800만 원을 상속세로 내야 하는 겁니다. 리시 수낵 총리는 상속세율을 단계적으로 내린 뒤 종국엔 상속세를 완전 폐지하겠단 입장입니다.
2. 전쟁 및 혁명이 탄생시킨 세금
상속세를 폐지까지 하려는 것인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상속세의 유래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상속세는 전쟁, 혁명과 연관이 깊습니다. 사상 첫 상속세는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 첫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만들었습니다. 20년 이상 복무한 상비군의 퇴직금을 마련하고자 6촌 이내 가족이 아닌 자에게 유산을 줄 경우 그 1/20을 세금으로 부과했습니다.
근대에 와선 영국이 상속세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직접적 계기는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이웃나라 혁명 소식에 충격을 받은 영국 지도층은 부 세습의 완화 수단으로 상속세를 제정했습니다.
3. 세계대전 및 러시아 혁명 거치며 상속세 강화
이후 영국의 상속세 비중은 점점 올라갑니다. 일련의 식민지 쟁탈과 세계 대전을 겪으며 세금 수입을 확대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도 한몫했습니다. 혁명으로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물결이 강해지자 영국 등 서방 각국은 빈부 격차 완화, 복지 강화에 힘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상속세를 향한 불만은 높아졌습니다. 영국의 상속세 부과 대상은 4% 미만에 그치지만,
영국인 절반 정도(텔레그래프 올해 6월 설문)가 “가장 불공정한 세금”이라 여긴다고 합니다. 2015년 약 8억 원 이하의 거주 주택은 공제해 주며 상속세를 일부 완화했지만 불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는 추세입니다.
4. 스웨덴, 상속세 때문에 일류 기업 뺏겼다
실제 부과 대상이 적은데 왜 불만은 커진 이유를 살펴보면 사실 상속세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합니다. “상속세는 이중과세”,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 “폐지해 봤자 실질적 감세 효과는 없다.” 등 다양한 엇갈린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속세의 실제 잘잘못을 떠나 영국 등 서방 국민들의 뇌리에 남은 결정적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 아스트라 상속’입니다.
원래 아스트라는 스웨덴의 대표 제약사였습니다. 그런데 1984년 창업주 자녀들이 상속세를 위해 지분을 팔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속세 마련은 어려웠습니다. 당시 스웨덴 상속세율이 70%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상속을 포기하고 영국 제약회사 제네카에 회사를 매각합니다. 이렇게 생긴 기업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입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스웨덴의 세계적 가구 기업인 이케아도 상속세 부담 때문에 본사 이전을 추진했었습니다. 결국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이케아도 본사 이전을 철회합니다. 그러나 이케아는 훗날 법인세 부담 때문에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깁니다. 일련의 기업 상속을 지켜본 영국 등 서방 각국에선 상속세를 ‘위험한 세금’으로 보는 시선이 생깁니다.
5. “당장 손봐야” vs “상징적 조치 불과”
이후로도 영국서 상속세 여론이 계속 나빠집니다. 최근엔 인플레도 한몫했습니다. 강력한 인플레로 자산 가치가 불어난 탓에 상속세 부과 대상자는 많아졌는데 부과 기준은 14년간 바뀌지 않아 당장 손봐야 할 세금이란 인식이 강해진 것이죠. 수낵이 전임자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도 보수당 숙원인 감세의 물꼬를 틀려는 지점도 바로 상속세에 있습니다.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는 인플레가 한창인 작년 70조 원 이상의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고 최단기 총리로 사임한 바 있습니다. 그 여파로 현재 여당인 보수당 지지율은 28%로 42%인 노동당보다 크게 낮습니다. 때문에 보수당은 당장 외연 확장에 집중하기보단 보수층을 결집할 정책 마련에 고심 중인데요. 바로 상속세 폐지가 그 적절한 카드로 여겨졌으리란 분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이유로 반대 여론도 만만찮습니다. 실제 감세 효과는 거의 없는, 상징적인 포퓰리즘일 뿐이란 것이죠. 감세 효과가 있다 해도 문제입니다. 여전히 인플레가 남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만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 상속세 존치/폐지 효과가 어떻든 폐지를 향한 국민 여론이 나쁘지 않고 어느 정도 정치적 주목도 끌어낸 만큼 실제 추진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집니다.
6. 캐나다, 호주 등 10개국 상속세 폐지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겠습니다. OECD 37국 중 상속세를 없앤 곳은 10국입니다. 캐나다가 1972년 최초로 상속세를 폐지했고 슬로바키아(2004년), 스웨덴(2004년), 노르웨이 및 체코(2014년) 등이 그 뒤를 잇습니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평균은 약 25%입니다. 일본(55%)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한국(50%)입니다. 프랑스는 45%, 영국·미국이 40%, 독일이 30%입니다.
상속세 부과 방식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나라별 부과 방식이 다른데 크게 2가지입니다. 바로 ‘유산세 방식’과 ‘유산취득세 방식’입니다. 전자는 전체 상속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후자는 각자 상속되는 개별 재산 총액에 따라 세액을 결정합니다.
좀 복잡한 설명인데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유산취득세는 같은 재산의 상속인이 여럿인 경우 상속 재산이 분산되기에 과세표준이 줄고 그만큼 누진세율 적용도 작아집니다. 때문에 유산세보다 세 부담이 적습니다. 한국·미국·영국·덴마크 등 4국이 유산세, 프랑스·일본·독일 등 20국이 유산취득세입니다.
7. 한국의 상속세
한국은 1997년부터의 상속세 틀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상속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덕인지 전체 세금 수입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입니다.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 약 12조 원입니다. 삼성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한 번에 내지 못해 2021년부터 5년간 6회에 걸쳐 납부할 방침이며 납부금 충당을 위해 4조 원 이상의 대출을 받고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기도 해 화제였습니다.
감세를 추진하는 현 정부는 상속세 부과를 기존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우려해 내년 총선 이후 세법 개정 때 추진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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