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부터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제도가 정식 시행 됐습니다. 직장인들은 가뜩이나 바쁜데 귀찮은 메일이나 문자를 더 자주 받게 됐습니다. 내용도 어려워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선뜻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관련 직장인 행동 요령을 Q&A 방식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우리 회사는 아직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거나, 도입했더라도 DB형을 선택해서 운용하고 있는데요?
축하드립니다. 1~3번은 읽지 말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디폴트 옵션과 관련한 해당 사항이 없는 행복한 분들입니다. 마음 편히 회사 일만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다만 4, 5번은 읽어 둬야 할 사항이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 우리 회사는 DC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걸로 압니다. 7월 12일 이후 뭐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요?
DC형 퇴직연금이란 회사가 따로 퇴직금을 적립하지 않고, 그 돈을 가입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입금해 주는 방식입니다. 이 돈은 가입자가 스스로 알아서 굴려야 합니다.
그러니 귀찮거나 잘 몰라서 그냥 방치해 놓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그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사가 알아서 마음대로 은행 정기 예금 등 저위험 저수익 상품에 묻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턴 금융사가 알아서 마음대로 어딘가에 묻어둘 수 없게 된 겁니다. 사전에 근로자가 따로 지정한 디폴트 옵션으로 그 돈을 굴려야 합니다. 그래서 디폴트 옵션을 지정해 달라고 귀찮게 메일과 문자를 보내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지정을 해놓지 않았다면, 7월 12일 이후엔 그냥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돼 수익률이 더 낮은 곳에 내 퇴직금이 방치됩니다. 물론 당장 12일부터 모든 퇴직금이 대기성 자금이 된 건 아닙니다. 이날 이래로 기존 퇴직연금을 굴리던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면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하간 그리 되면 매우 낮은 이자율이 적용돼 아쉬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디폴트 옵션을 꼭 선택해놓으셔야 합니다.
3. 저는 DC형 퇴직연금인데 알아서 스스로 잘 굴리고 있습니다. 그럼 디폴트 옵션은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죠?
예. 알아서 잘하고 계시다니 앞으로도 그렇게 잘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도 디폴트 옵션을 활용하시면 더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위험 자산 비중을 크게 늘리고 싶을 때 디폴트 옵션이 그걸 가능하게 해 줍니다. 원칙적으로는 퇴직연금 자산의 70%까지만 위험 자산(주식 비중이 40%가 넘는 펀드)에 넣어둘 수 있습니다. 이름이 위험 자산이라 위험하기만 한 것 같지만 위험한 만큼 기대 수익도 높습니다.
그럴 땐 퇴직연금 자산의 70%를 위험 자산으로 굴리면서 디폴트 옵션도 위험 자산으로 지정해 두면 나머지 30%도 디폴트 옵션에 따라 별다른 운용 지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럼 100% 위험 자산으로 내 퇴직연금을 굴릴 수 있게 됩니다. 디폴트 옵션 제도 시행 전엔 불가능하던 요령인데요. 다른 곳에서는 잘 안 가르쳐드리는 꿀팁입니다.
4. 저는 IRP계좌에도 따로 돈을 붓고 있습니다. IRP계좌도 디폴트 옵션을 선택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IRP 계좌도 퇴직연금 DC형과 마찬가지로 디폴트 옵션을 지정해야 합니다. 때문에 2번과 3번의 설명은 IRP 계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니까 필요하시면 다시 읽어두시기 바랍니다.
디폴트 옵션을 설정하지 않는 건 사지선다 객관식 시험에서 답을 하나도 표기하지 않은 채 답안지를 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보단 잘 모르는 문제더라도 아무 선지라도 고르는 게 무조건 나은 선택인 것처럼 디폴트 옵션도 뭐라도 선택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디폴트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되는지는 2번에서 설명해 드린 것과 똑같습니다.
5. 방금 이야기에 나온 IRP계좌는 뭔가요? 저는 그게 뭔지 전혀 모릅니다만?
IRP 계좌는 회사가 부어주는 퇴직금이 아니라 회사원 본인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 가는 셀프 퇴직금 통장입니다. 그러니 그게 있는 분들도 있고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퇴직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니 너무 대단하다고 판단해서 정부가 이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IRP 통장에 붓는 돈은 연말 정산에서 세액 공제를 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IRP 통장은 직장인들에겐 연말 정산을 위해 웬만하면 다 가입하는 제2의 퇴직연금 통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IRP 계좌는 한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는 직장인에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통장입니다만, 이직을 하려는 분들껜 꼭 필요한 통장입니다. 왜냐면 이직 및 퇴직을 할 때 퇴직금은 꼭 IRP 통장으로 받게끔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는 아직 이직 및 퇴직 생각은 없으니 안 만들어도 되는 거냐?"라는 질문이 떠오르실 텐데요. 안 만든다고 뭐 죄를 짓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IRP 통장을 당장 꼭 만드시는 게 좋은 몇 가지 이유는 있습니다.
1) IRP 통장은 중간에 해지할 경우 세제 혜택을 환원해야 한다.
IRP 통장은 퇴직 이후 쓰려고 붓는 통장이지만 살다 보면 목돈이 필요해 깨야만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죠. 그런데 중간에 깨면 그동안 받은 세제 혜택을 모두 토해내야 하므로 큰 손해입니다. 게다가 통장 일부 금액에만 페널티가 적용되는 게 아니라 통장 전체 금액에 그 손해가 적용됩니다. 가령 IRP 통장에 5,000만 원이 있다고 하면, 필요한 돈이 2,000만 원일지라도 5,000만 원짜리 통장 자체를 다 깨고 5000만 원에 적용되는 페널티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IRP 통장이 여러 개라 각각 1,000만 원, 2,000만 원, 2,000만 원 이렇게 나눠서 부어놨다고 해봅시다. 그럼 2,000만 원을 부은 IRP 통장 하나만 깨면 되겠죠. 때문에 IRP 통장은 여러 개를 만들어 놓을수록 좋습니다.
2) IRP 통장은 금융사가 수수료를 가져간다.
IRP 통장은 다 좋은데 금융사가 떼어가는 수수료가 0.5~1%쯤 됩니다.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물론 통상적인 금융 수수료 치고 낮은 편이긴 합니다. 그래서 작은 꿀팁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비대면으로 가입하면 수수료가 무료이거나 낮아지고 각종 이벤트가 자주 있어서 선물을 주기도 하니 그럴 때 가입하시면 좋습니다. 어차피 IRP 통장은 여러 개일수록 좋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만들어 두지 않으면 퇴직을 할 때 급하게 만들게 되고, 그럼 수수료가 비싼 IRP 통장에 가입하게 됩니다. 퇴직금을 거기 몰아넣게 되면 중간에 깰 때 손해가 크고 수수료 손실도 커집니다.
3) 개별적으로 디폴트 옵션의 적용이 가능하다.
디폴트 옵션은 내가 바빠서 스스로 IRP 계좌를 운용하지 못할 때 미리 지정해 둔 곳에 돈이 자동으로 옮겨지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디폴트 옵션 중 어디로 보내는 게 최선의 선택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중엔 200개가 넘는 디폴트 옵션 상품이 있고 수익률도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IRP 계좌를 따로 여러 개 만들어 운용하면 각각의 통장마다 각기 다른 디폴트 옵션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 하면 내 퇴직 자산을 여러 곳에 분산 투자하는 셈이 되죠. 그러니 IRP 통장을 하나 또는 여러 개 만들어 내 퇴직 자산을 분산해 두는 건 꽤 좋은 선택이 됩니다.
6. 디폴트 옵션이 뭔지는 이제 좀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택하러 들어가 봤더니 뭘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뭘 선택하는 게 좋은가요?
이 질문은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디에 투자해야 돈을 버느냐?"라는 질문과 같은 성격입니다. 그러나 디폴트 옵션 특성상 TDF 펀드를 추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TDF 펀드는 가입자의 나이에 맞춰 돈을 굴리는 상품입니다. 나이가 들면 주식의 비중을 줄이고 채권의 비중을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기계적으로 매년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조정하는 것이라 딱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 다만 애초에 디폴트 옵션이라는 게 바쁘고 무관심해 퇴직연금 운용을 안 하고 있는 회사원들을 위해 만든 것이니 만큼, 회사원들은 디폴트 옵션을 선택해 놓고도 계속 바빠 이에 무관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분들의 퇴직연금은 그냥 처음 지정한 디폴트 옵션으로 평생 굴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이런 분들껜 나이에 따라 착착 비중을 바꿔주는 TDF 같은 디폴트 옵션이 꽤나 유용할 거라고 추천들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TDF 펀드는 그 자체의 수수료도 꽤 높은 편이고 거기에 IRP 계좌의 수수료도 따로 물어야 하기 때문에 마냥 좋은 것이고 추천할 만하다곤 할 수 없습니다. 퇴직연금이나 IRP는 스스로 알아서 이것저것 바꿔가며 운용하는 게 제일 좋은 것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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