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WWDC와 함께 뜨거웠던 한 주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주 역시 IT 업계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 인데요. AI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믿음 속에 이해관계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비단 기술 개발과 투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견제하고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모든 ‘갈등’도 포함됩니다. 뜨거웠던 한 주를 시작하는 이번 글에서는 AI를 둘러싼 ‘갈등’을 간략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지속적인 중국 때리기와 오픈AI를 상대로 한 일론 머스크의 소송, 오픈AI의 전현직 직원 차별 등 이번 주 갈등과 관련한 새로운 내용이 대거 보도됐거든요. 이들의 갈등은 어떻게 시작됐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시작해 보겠습니다.
1. "SK하이닉스도 조심해" 中 견제 강화하는 美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바이든 정부가 AI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과 관련해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추가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2018년 3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폭탄을 매기면서 본격화된 양국의 갈등은 해를 거듭할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AI처럼 ‘기술’을 둘러싼 대립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예요. ‘기술을 장악한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믿음 때문일까요.
특히 중국은 정부의 막대한 투자와 인해전술을 앞세워 10여년 전부터 과학기술계에서 존재감을 뽐내던 상황이었습니다. 논문의 ‘양’에서만 앞선다는 평가를 받던 중국은 2020년을 전후로 ‘질’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미국에서 과학기술 분야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특히 미래 기술로 주목받던 AI,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이 가팔랐고 미국을 일부 앞섰거나 혹은 턱밑까지 추격했다는 분석이 지속해서 나오던 상황이었어요.
이를 의식한 듯 미국은 생성형 AI가 주목받기 전인 2022년 10월, 중국 기업에 AI 칩과 제조 장비, 투자를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엔비디아의 ‘A100’과 ‘H100’에 대한 수출이 막혔는데요,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엔비디아는 미국의 수출 규제에 맞는 ‘중국 전용 칩’을 출시하기도 합니다.
규제가 강화되면 회색 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의 대학과 국영 연구소, 심지어 ‘인민해방군’도 H100, A100 등을 구매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2. 엔비디아, AI기업 투자, 클라우드... 이번엔 HBM
미국은 규제를 한층 강화합니다. 2023년 1월에는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해 AI를 학습시키는 것을 차단합니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미국 외 기업이 미국 클라우드 기업에 접속할 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제를 꺼내 듭니다.
이어 8월에는 중국을 대상으로 AI, 양자컴퓨터 투자 금지 행정명령이 이어지는 등 견제가 가속화됩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사양이 낮은 AI 반도체에 대한 중국 수출도 금지했고요.
올해도 챗GPT와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에 중국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가드레일’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주 나온 제재안에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게이트올어라운드(GAA)’와 ‘고대역폭메모리(HBM)’과 같은 첨단 반도체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AI 개발에 필수품이 되어 버린 엔비디아의 제품은 어느 정도 막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규제에 나선 셈입니다.
GAA는 전력 소비를 줄여주는 제조 기술인데요, 삼성전자가 3nm 공정으로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TSMC, 인텔도 이를 제조하고 있고요. HBM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메모리입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삼성전자, AMD 등이 이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어요.
미국이 해당 부품의 중국 수출에 제재를 강화할 경우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산해 판매하면 큰 타격이 없을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강화되는 견제 속에서 중국이 해당 부품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줄어드는 기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사진이 아닙니다. 중국 내 틱톡 경쟁사로 불리는 '콰이쇼우'가 지난 10일 공개한 동영상 생성 AI가 만든 영상의 한 장면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AI 반도체 칩 제재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AI 분야에서 여러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3. 중국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1년 넘게 이어온 이러한 제재가 중국의 AI 발전을 가로막았을까요. 중국의 연구자들은 ‘그렇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턱 밑까지 쫓아왔다고 믿었던 AI 기술 수준이 미국 정부의 규제로 5~10년으로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과학자들은 “미국의 제재로 중국의 AI 모델 훈련이 제한됐다” “중국에서는 첨단 칩을 얻을 수도, 만들 수도 없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중국은 엔비디아의 칩을 마음껏 구매할 수 없다 보니 LLM 개발에 뒤처지게 됩니다. 앞서 중국의 여러 연구소, 대학, 인민해방군이 엔비디아의AI 칩을 구매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구매한 양은 LLM을 구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전 세계 AI 기업에 투자된 돈은 425억 달러. 이중 미국의 기업에 투자된 돈은 310억 달러에 달합니다. 반면 중국은 20억 달러에 그쳤다고 해요. 중국 AI 기업 투자는 2022년 377개 기업 55억 달러였는데, 지난해 68개 기업 20억 달러로 크게 줄었습니다. 미국이 제재를 본격화한 시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일단 중국은 메타가 제공하는 ‘라마1’과 같은 오픈소스 LLM을 이용해 이 격차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해요. 화웨이의 같은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 생산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화웨이가 출시한 AI 반도체 ‘어센드910B’는 7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만들어집니다. 다만 연산성능은 256테라플롭스로 엔비디아의 ‘H100(4나노, 756테라플롭스)’과 비교하면 5~1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4. 오픈AI 소송 취소한 머스크... 예상됐던 결과?
챗GPT 출시와 함께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은 또 있습니다. 바로 오픈AI 설립에 참여했던 일론 머스크예요. 지난 11일(현지 시각) 머스크는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한 사실이 알려집니다.
머스크는 지난 2월, 오픈AI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를 ‘기각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겁니다. 재판 하루 전날, 소송을 취하한 것인데요, 이유에 대해 머스크는 함구합니다.
사실 이 소송을 두고 “머스크의 여론전이다”라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소송이 성립되는지조차 의견이 분분했을 정도로 ‘무리한 소송 아니냐’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거든요. 머스크와 오픈AI,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요. 간단히 정리해 볼게요.
2014년, 구글이 AI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인수합니다. 딥마인드의 기술력을 예사롭지 않게 봐왔던 머스크. 2015년 5월에는 와이콤비네이터 대표였던 샘 올트먼이 머스크에게 ‘AI 맨하탄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2015년 7월, 머스크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를 초대해 AI의 발전을 두고 토론합니다. 두 사람의 의견은 갈립니다. 래리 페이지는 “AI가 인류를 이롭게 한다” 머스크는 “AI로 인류는 종말에 이른다.”
머스크는 딥마인드에 대항할 수 있는 AI 연구조직 개발을 꿈꾸며 올트먼과 손을 잡습니다. 2015년 12월, 그렇게 오픈AI가 만들어집니다. 머스크와 올트먼은 오픈AI의 공동 의장에 오릅니다. 목표는 인간에게 이로운 AI의 개발. 따라서 오픈AI는 ‘비영리법인’으로 출발합니다.
5. 오픈AI를 잡아야만 하는 머스크
하지만 앞선 AI 개발에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머스크는 오픈AI에 80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 정도 돈으로는 어림없었습니다. 구글과 같은 규모의 회사가 아니라면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 머스크는 오픈AI와 작별합니다.
오픈AI는 머스크가 떠난 뒤 본격적인 투자를 받습니다. 2019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협력도 시작됩니다. 조 단위의 투자가 이어지자 오픈AI는 챗GPT를 만들며 생성형 AI 시대를 엽니다. 이를 본 머스크는 땅을 쳤을 겁니다.
그래서, 소송을 합니다. 머스크의 주장은 ‘간단’ 합니다. 오픈AI는 비영리단체인 만큼 MS의 투자와 같은 영리적 활동은 계약 위반이라는 겁니다. 또한 오픈AI의 AI 기술을 공개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오픈AI가 공개한 과거 e메일에서 머스크는 다른 대답을 합니다. 오픈AI의 기술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동의했을 뿐 아니라 오픈AI가 영리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거든요.
하여튼, 머스크의 주장에 관해 여러 법률 전문가가 ‘의미 없는 소송’이라는 해석을 내립니다. 머스크가 주장한 내용과 관련해 당사자들이 서명한 ‘서면 계약’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이러한 소송을 제기한 것 자체가 오픈AI의 영리적 활동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오픈AI가 소스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는 머스크의 의도라는 거죠.
머스크는 우주의 본질을 밝히겠다는 목적으로 AI 스타트업 xAI를 설립하고, 챗GPT와 같은 LLM 서비스인 '그록'을 출시합니다.
6. 떠난 사람 조심하라는 오픈AI
오픈AI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거예요. 올트먼 축출의 배경이기도 했던, AI 개발이 먼저냐, 안전 추구가 먼저냐와 같은 갈등도 존재합니다. 이 사건은 과거 레터를 통해 몇차례 다루었는데요, 이번 주에는 새로운 ‘갈등’도 드러납니다. 오픈AI 지분 판매를 둘러싼 전직 직원들의 ‘불만’이에요.
간단히 정리하면 오픈AI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직원이 퇴사했을 경우, 이 지분을 ‘현금화’하는 데 있어서 오픈AI가 현직 직원과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지난달, 오픈AI는 직원이 회사를 그만둘 경우 ‘회사 비방을 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적힌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이때 포함된 조항이 “당신에게 부여된 주식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비방 금지 조항에 서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지분을 유지하려면 회사 욕을 하지 말라는거죠.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다 오픈AI는 “죄송하다. 철회하겠다”라고 밝힙니다.
오픈AI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입찰 라운드’를 개최했습니다. 2021년 중순, 2023년 중순, 2023년 말~2024년 3월. 이때 투자를 받으면서 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을 일부 현금화했는데요, 이 중 두 차례의 입찰 라운드에서 전직 직원의 판매 한도는 200만 달러, 현직 직원의 판매 한도는 1,000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차별을 둔 거죠.
또한 세금이 과도하게 부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량의 주식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기부 라운드’를 열었는데 전직 직원은 제외됐다고 합니다. 오픈AI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전직 직원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한 일입니다. 다만 오픈AI는 “현 직원, 전 직원은 같은 유동성 기회를 제공받았다.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해요.
전직 직원들이 걱정하는 가장 큰 사안은 바로 ‘언제든 지분을 박탈당할 수 있다’라는 문구라고 합니다. 오픈AI가 주식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에스타스(Aesta)’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 기업의 문서에는 “회사는 언제든지 전적인 재량으로 양수인의 회사 지분을 해당 지분의 공정 시장 가치에 해당하는 현금으로 상환, 매각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전직 직원들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아무 대가 없이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냐”라고 오픈AI에 물었다고 해요. 다만 오픈AI는 “전직 직원에 부여된 주식을 취소하거나, 0달러에 재구매하도록 요구한 바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알파고의 출현 이후 ‘AI를 어디에 써먹어?’라던 질문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모든 세상에 AI가 스며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인재 영입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좋은 인재 영입을 위해 그동안 많은 기업이 투자를 해왔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이제껏 보지 못했을 만큼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요. 100만 달러 연봉을 받는 사람도 늘고 있고, 심지어 다른 기업의 팀 전체를 스카우트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신기술, 신소재의 개발이 문명을 이끌어 나간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과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가 그랬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반도체가 그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어요. 현재를 ‘실리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앞으로 AI가 꿰차게 될까요.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커 보입니다. AI를 둘러싼 인재영입, 갈등이 격화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제 갤럭시와 아이폰에서도 AI가 펑펑 돌아갑니다. 챗GPT-4o를 기반으로 한 음성 서비스도 곧 출시되고요. AI와 함께 하게 된 인류. 우리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흥미진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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