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러스트벨트, 미국 대선의 캐스팅보트 (feat. 트럼프의 전략)

by 트렌디한 경제 상식 2024. 10. 22.
반응형

러스트벨트, 미국 대선의 캐스팅보트 (feat. 트럼프의 전략)
러스트벨트, 미국 대선의 캐스팅보트 (feat. 트럼프의 전략)

 

나는 백인이긴 하지만, 북동부에 사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인 와스프(WASP*)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난 데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해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과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의 줄임말로 미국 사회의 주류 집단을 지칭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39살의 상원의원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J.D. Vance). 밴스는 미국 북부의 쇠락한 제조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의 가난한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는 마약 중독에 시달려 할머니의 손에 자랐는데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해병대에서 복무한 뒤,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됐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자로 거물급 기업인들과 인맥을 쌓았습니다.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아메리칸드림의 표본인 셈이죠.

 

그런 그가 2016년 낸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에는 미국 사회의 비주류가 된, 북부 러스트벨트 지역의 몰락한 백인 노동 계급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산업의 중심이 남부로 옮겨가며 서서히 삶의 기반을 잃게 되고, 주류 백인 계층에게도 버림받은 이들의 비참한 심정이 녹아 있는데요. 오늘 <국제 한입>에선 밴스의 부통령 후보 지명을 계기로 미국 러스트벨트의 변천사와 정치적 영향력을 살펴봅니다.

 

1. J. D. 밴스는 누구일까

1) '시골 촌놈'에서 성공한 투자자로

러스트벨트의 한 축인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밴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이혼해 친권을 포기했고, 어머니는 마약에 중독돼 폭력을 휘두르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밴스는 그를 사랑으로 돌봐줬던 외할머니 덕에 힘든 어린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는데요. 고등학교 졸업 후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 해병대에서 5년간 복무한 뒤, 오하이오주립대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명문으로 꼽히는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죠. 로스쿨을 졸업한 뒤에 밴스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에서 벤처투자자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힐빌리로 태어나 잘 나가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된 그는 2016년, 본인의 삶을 회고하고 미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책 '힐빌리의 노래'를 출간하며 유명세를 얻게 되죠.

 

힐빌리(Hillbilly)란 미국 애팔래치아산맥 근처에 사는 가난한 백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농촌민을 가리키는 레드넥(Redneck), 도시 지역의 백인 빈민을 가리키는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등도 비슷한 멸칭입니다.

 

2) 힐빌리의 노래

그의 회고록은 주류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 계급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가난이 도시를 지배하고, 마약과 폭력이 만연하며,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쇠락한 공업 도시의 현실을 밴스 본인의 삶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인데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던 러스트벨트 지역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층으로 돌아선 이유가 잘 드러나죠. 한편, 밴스는 이 회고록으로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자, 러스트벨트의 좌절을 뼈저리게 이해하는 인물로 대중에게 각인됐습니다.

 

3) 반트럼프주의자, 트럼프에 충성을 맹세하다

밴스는 사실 과거 트럼프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합리적인 보수 인사로 꼽혔습니다. 트럼프에 대해 사적으로는 '미국의 히틀러'(America's Hitler), '도덕적 재앙'(moral disaster)이라고 칭하는가 하면, 공적으로는 '완전한 사기꾼'(total fraud)이자 '문화적 헤로인'(cultural heroin)이라고까지 비판했는데요. 이랬던 그도 정치권의 문 앞에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2021년 공화당의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경선에 도전한 그는 오하이오주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던 트럼프의 벽을 실감했는데요. 결국 밴스는 과거의 발언에 대해 후회한다면서 트럼프의 가장 충성스러운 지지자로 돌변합니다. 상원의원 당선 이후에도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 만들기(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청사진에 꼭 맞는 법안을 줄줄이 발의했죠.

 

4) 트럼프는 왜 밴스를 골랐을까

트럼프가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낙점한 데는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의 설득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발표 전날까지 밴스와 다른 두 명의 후보 중에서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트럼프 주니어는 △ 밴스가 트럼프에 가장 충성할 것이란 점 △ 러스트벨트 빈민가 출신으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단 점 △ 부인인 우샤 밴스가 인도 이민자 가정의 자녀로 소수 인종 유권자에게 호소할 수 있단 점 등을 이유로 들어 트럼프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반응형

2. 러스트벨트, 슬픔의 녹지대

1) 러스트벨트가 어딜까

러스트벨트(Rust belt)는 미국 북부 오대호 주변에 위치한 공업 도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일리노이, 인디애나 등이 대표적인데요. 철강 산업의 중심인 피츠버그, 자동차 산업의 메카 디트로이트 등이 모두 이곳에 속하죠. 20세기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로 과거엔 스틸벨트(Steel belt)로 불리곤 했는데요. 하지만 1970년대 미국 제조업의 몰락으로 이 일대의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녹슨 지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2) 미국을 발전시킨 러스트벨트

러스트벨트는 미국 공업화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애팔래치아산맥을 끼고 있어 철광석 등 자원이 풍부했고, 동부 해안을 통한 물자의 운송도 용이했는데요. 덕분에 시카고와 피츠버그, 디트로이트 등 인근 도시에 철강과 자동차 공장 등 각종 중공업 인프라가 우후죽순 갖춰지기 시작했죠. 18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러스트벨트는 그야말로 '미국 제조업의 심장'으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3) 선벨트에 자리를 내주다

하지만 1950년대부터 산업의 중심은 중공업에서 전자산업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신흥 제조업 강자로 떠오르는데요. 1970년대엔 오일쇼크까지 겪으며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크게 뒤처지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미국의 주력 산업도 반도체와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첨단 전자 산업으로 바뀌어 갔고, 미국 경제의 중심 역시 실리콘밸리를 필두로 한 남쪽의 선벨트로 옮아가게 됩니다.

 

이어 1990년대엔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의 바람이 불며 값싸고 질 좋은 중공업 제품들이 미국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사실상 미국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마는데요. 그렇게 서서히 쇠퇴하던 러스트벨트는 2008 금융위기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게 됩니다. 디트로이트에 본거지를 둔 미국 대표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와 GM이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심지어는 디트로이트 시정부까지 지자체 파산을 선언하고 만 것이죠.

 

4) 빈곤해진 노동자들

과거 러스트벨트의 부흥을 이끈 것은 백인 이민자와 그 후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의 전환으로 기업이 줄줄이 선벨트로 빠져나가고, 남아있던 공장들까지 문을 닫으며 이들은 급속도로 가난해지기 시작하는데요. 실업률이 급증하고 도시가 황폐화하면서 곳곳에서 마약과 범죄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비참한 도시이자 위험한 도시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죠. 삶의 터전을 위협받게 된 백인 노동자 계급은 끝내 자신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기존 정치권과 엘리트 계층에 대한 커다란 반감을 갖게 되는데요. 이는 미국의 정치적 지형을 뒤바꿔놓는 계기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러스트벨트, 미국 대선의 캐스팅보트 (feat. 트럼프의 전략)
러스트벨트, 미국 대선의 캐스팅보트 (feat. 트럼프의 전략)

 

3. 러스트벨트, 미국 정치의 캐스팅보트가 되다

1) 2016년 트럼프를 당선시키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러스트벨트는 민주당의 힐러리 대신 공화당의 트럼프를 선택했습니다. 유세 기간 내내 러스트벨트를 돌아다니며 저소득, 저학력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던 것이 먹혀들었다는 평가인데요. 일리노이를 제외한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인디애나, 웨스트버지니아 등에서 트럼프가 선거인단을 가져갔죠.

 

2) 독특한 미국 대선 제도

미국 대통령 선거 제도는 조금 특이합니다. 주마다 선거인단이 투표를 하는데, 여기서 한 표라도 더 많이 가져가는 후보가 해당 주의 표를 모두 독식하죠.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270명의 지지를 확보하면 대통령에 당선되는데요. 대개 농촌 지역은 공화당, 도시 지역은 민주당이 강세를 보입니다. 텍사스,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 지역은 대표적인 공화당 우세 지역, ‘레드 스테이트’로 꼽히고, 워싱턴, 캘리포니아, 뉴욕 등은 민주당 우세 지역인 ‘블루 스테이트’로 유명하죠.

 

3) 2020년 작심한 민주당

트럼프에게 러스트 벨트 지역을 빼앗긴 조 바이든과 민주당은 백인 노동자를 겨냥해 수많은 공약을 쏟아냈습니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7.5달러에서 15달러까지 올리겠다고 밝히는 동시에 부유층 증세, 친환경 인프라 투자 등을 약속했는데요. 또 노동자의 복지와 일자리 확충 등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던 청년과 블루칼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또 미국 내 생산기지 확충, 정부 조달시장 분야에서 미국산 제품 우선구매, 중국의 덤핑에 맞선 공정무역 추구 등 트럼프의 정책도 모두 흡수했죠. 결국 이 선거에서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기존에 민주당을 지지하던 러스트 벨트 지역을 되찾아오면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4) 트럼프, 다시 러스트벨트를 노린다

그리고 2024년 대선을 약 3달 남긴 지금,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표심을 집결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섭니다. 트럼프가 부통령 후보로 러스트벨트 출신 흙수저 밴스를 선택한 데에는 누가 봐도 러스트 벨트 경합 주를 공략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죠. 실제로 지난 20일(현지 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암살 시도 이후 첫 선거 유세를 부통령 후보 반스와 함께 미시간에서 열었습니다.

 

미 정치컨설팅 기관 270 투윈에 따르면, 트럼프의 공화당은 251명의 선거인단을, 바이든의 민주당은 22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결국 61명의 선거인단을 가진 경합 주(Swing state)가 선거 결과를 결정짓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데요. 이 경합주 중 세 주가 바로 위스콘신(선거인단 10명), 미시간(15명), 펜실베이니아(19명)로 러스트벨트에 속한 지역입니다.

 

과연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을까요? 또, 밴스는 트럼프와 함께 힐빌리와 레드넥, 그리고 화이트 트래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을까요?


 

 

프로야구 티켓이 갑자기 16배 비싸진 이유 (feat. 역대 최대 72.8 만원)

한 야구 경기장의 특정 좌석* 가격이 한때 4.5만 원 ~ 72.8만 원을 오갔어요. *창원 NC 파크 스카이박스 1. 가격이 16배나 올랐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수요, 상황에 따라 가격을 바꾸는 전략, 다

mkpark01.tistory.com

 

 

알아두면 돈이 되는 핵심 이슈 브리핑 (feat. 현대차, 인도 IPO 반응 미지근, 미국 빅테크, 설비투자

1. 트럼프 당선 확률 상승, 트럼프 트레이드 재확산미국 대선이 3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확률이 높아지면서 자산시장에서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가 재확

mkpark01.tistory.com

 

 

5수 끝에 일본 총리된 이 남자, 반대 목소리에 벌써 정책 뒷걸음질

지난달 27일, 낮은 지지율과 당내 비자금 의혹 등으로 물러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전 총리의 자리를 메꿀 사람을 뽑는 선거가 일본에서 열렸죠. 당선된 ‘자민당 아웃사이더’ 이시바 시게루 총

mkpark01.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