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
미국 달러는 세계 각국의 통화와 다이렉트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통화뿐만이 아니라, 산업의 근간인 석유와 철, 구리, 알루미늄 및 니켈 등의 비철금속, 옥수수 및 밀 등의 농산물까지 국제거래소에서 미국 달러는 가격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 달러가 현재 기축통화리기 때문입니다. 기축통화란 국제 외환시장에서 금융거래나 국제 무역결제를 할 때 기본이 되는 통화입니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으로 인해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지 않을 정도로 군사 강대국이어야 하고, 고도로 발달된 금융 및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원활한 대외거래를 위해 규제나 장벽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해 내수 기반이 확고해야 하며, 산업 전반적으로 균일하게 고도로 성장된 국가여야 합니다. 미국이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고도성장으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넘보고 있는 중국 위안화는 금융 및 자본시장 시스템이 폐쇄적이고, 제2의 기축통화라 불리는 유로화는 관련 국가들의 성장 편차가 고르지 못해 기축통화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령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전 세계 주요국의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2. 안전한 통화와 위험한 통화
주식 중에는 회사의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성숙기에 접어들어 비교적 안전한 주식이 있는가 하면, 회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위험한 주식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화도 똑같이 안전한 통화와 위험한 통화가 있습니다. 문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금융시장의 진리와 달리 위험을 감내하고 위험통화를 보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고수익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위험통화가 안전통화에 비해 수익이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안전통화와 위험통화의 기준은 바로 글로벌 위험 요인들이 부각될 때 강세를 보이는지, 아니면 약세를 보이는지 여부입니다. 만약 금융위기나 글로벌 경제 둔화와 같은 충격이 왔을 때 해당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안전통화, 약세를 보이면 위험통화로 구분합니다. 반대로 글로벌 경제가 완만한 성장기(회복기)에 있고 정치, 사회, 금융 및 경제 등에 특별한 위험 요인이 없을 때 강세를 보이면 위험통화, 약세를 보이면 안전통화로 구분합니다. 물론 안전통화국이 신흥국에 비해 고성장한다면 해당국으로 투자자금이 유입되어 안전통화임에도 강세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축통화이거나, 2차 기술산업 근간의 고성장 및 고소득 국가의 통화이거나, 초저금리 및 저인플레이션 통화는 안전통화로 구분합니다. 여기에서 초 저라고 함은 대체로 0%에 가까운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안전통화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 달러화와 엔화입니다. 유로화도 초저금리 및 초저인플레이션 통화이기는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기술 중심의 2차 산업 기반이 취약해 안전통화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특히, 유로화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존 내 재정 여건이 불안정한 일부 국가와 함께 엮여 있어 출범 이후 상당 기간 위험통화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물론 향후 유로존의 재정 및 금융 리스크가 제거되고 산업구조가 개편되면 안전자산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위험통화라고 해서 영원히 위험통화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조건이 충족되면 언제든 안전통화로 재구분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유로화는 유로존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한 2014년 6월 이후 유로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나라의 금융상품 등에 투자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거래)가 확대되었고, 유로존 재정 위기 또한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때는 간헐적으로 안전통화로 구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유로존 경기 둔화 우려가 확대되고 금융권의 부실 우려가 재부각되자 다시 위험통화로 회귀했습니다.
3.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구분하는 이유
전 세계 경제가 불안할 때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이해되지만 엔화가 안전자산인 이유는 일본 경제가 탄탄한 이유도 있지만 초저금리 및 초저인플레이션 통화이기 때문입니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일본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렸는데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구 노령화와 맞물리면서 임금과 소비가 늘지 않았고 물가 또한 오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금리는 제로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물가라도 높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데 엔화는 그럴 위험도 아주 낮았습니다. 즉, 엔화를 들고 있어도 가치 하락의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엔화는 장기적으로 저금리 및 저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 있고, 산업 전반적으로 일본의 기술경쟁력 역시 글로벌 최상위 수준입니다. 또한 무역 흑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발행한 국채의 대부분을 국민이 보유하고 있어 대외채무로 나라가 부도날 위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엔화는 캐리 트레이드 통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해외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금액의 엔화를 아주 싸게 차입하여 신흥국가의 고금리 및 고수익 자산에 투자했습니다. 문제는 금융위기 시에는 엔화의 대출금리가 올라가고, 투자했던 위험자산의 수익률도 떨어져 위험자산 처분과 엔화 상환 압박이 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입한 엔화를 상환하기 위해 엔화가 더 오르기 전에 빨리 보유하려는 심리로 엔화는 더욱 강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엔화는 글로벌 위험 요인이 부각될 때 강세를 보이는 대표적인 안전통화입니다. 글로벌 위험 요인에 대한 엔화의 반응 강도는 현재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보다도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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