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SMR 투자 및 개발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고 있습니다. AI 상용화로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탄소 배출에서 자유로우며 기존 원전의 단점까지 보완한 SMR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건데요. SMR이 원자력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자 전 세계가 SMR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도 SMR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한국은 대형 원전 건설 경험은 풍부하지만, SMR 관련 인허가 체계 등은 아직 미비한 상황이라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번에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SMR과 국내 SMR 시장 현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글로벌 빅테크기업, SMR 개발 추진
최근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연이어 SMR을 개발하거나, SMR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내놓고 있습니다. 소형모듈원전, SMR(Small Modular Reactor)은 기존 원전보다 크기는 작으면서 모듈화 되어 있어 공장 제조가 가능한 원전입니다. SMR의 출력은 최대 300MW로, 대형 원전보다 출력은 작지만 원전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안전 문제에서 자유로운데요. 또한 크기가 작아 수요지 가까이에 건설 가능해 분산형 전원으로서 장점도 가집니다.
아마존은 복수의 미국 에너지업체와 역대 최대 규모의 SMR 개발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아마존은 버지니아주에 전력을 공급하는 도미니언에너지가 보유한 원전 인근에 SMR 개발을 추진하여 향후 300MW 이상의 전력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또한 워싱턴에 위치한 공공 전력 공급 기업인 에너지 노스웨스트와도 계약을 체결하여 4기의 SMR 건설 사업을 지원합니다. 이와 더불어 에너지 노스웨스트에 첨단 원자로와 연료를 공급하는 X-에너지에도 투자하고 있는데요. X-에너지에 총 5억 달러(한화 6,905억 원) 규모의 자금 조달 라운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글도 미국의 스타트업 카이로스 파워가 가동을 앞둔 SMR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구글은 향후 카이로스 파워가 가동할 6~7개의 원자로에서 총 500MW의 전력을 구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죠.
또한 챗GPT 개발사 오픈 AI의 최고경영자 샘 울트먼이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핵융합 스타트업 오클로도 2027년 첫 SMR 가동을 목표로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2. SMR이 각광받는 이유
이처럼 빅테크 기업들이 SMR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AI 상용화로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AI 기술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교환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 AI 핵심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데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이 소모됩니다. 한 국가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죠. 골드만삭스는 2020년 241 TWh(테라와트시) 였던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에는 1063 TWh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결국 AI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공급망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탄소배출량 감축 기조 속에서 풍력과 태양광 만으로는 폭발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는데요. 하여 탄소 배출을 하지 않으면서 화석연료, 풍력 및 태양광보다 에너지 용량 계수가 2-3배 높은 원자력 발전, 그중에서도 기존 원전의 단점을 보완한 SMR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죠.
3. 국내 SMR 인허가 기준 미비
SMR이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해외 여러 국가들도 SMR 개발 지원에 힘을 쏟기 시작했는데요. 현재 가장 빠르게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러시아와 중국으로, 이 두 국가는 지난 8월 기준 상업 가동 중인 SMR을 각각 1기씩 보유하고 있습니다. 건설 중인 SMR은 총 4기로,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에서 ’26년-’27년 사이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이외의 국가들도 2030년 내에 SMR 가동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SMR 상용 가동을 위해서는 관련 기관의 인허가가 필요한데요. 아직 국제표준이 정해지지 않아 SMR 개발을 원하는 국가가 개별적으로 인허가 규범을 수립해야 하죠. 국제원자력기구는 각 국가에 SMR에 차등 규제를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요. 이에 미국은 2020년부터 대형 원전과 SMR의 규제를 분리하여 SMR 사업화가 수월하게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국내 SMR 인허가 관련 규제 법령은 아직 미비한 상황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SMR 인허가 시 단일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기준은 기존의 대형 원전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SMR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SMR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례로 대형 원전의 경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반경을 2-30km로 설정해야 하는데요. 비상계획구역 반경이 넓을수록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도 작고, 비용이나 경제성 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비상계획구역 반경도 줄일 수 있는데요. 실제로 미국의 경우 비상계획구역 반경을 300m로 줄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SMR 관련 규제가 없는 상황이라 대형 원전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이외에도 기존의 규제는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경수형 원자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최근 개발 중인 헬륨이나 소듐 등을 사용하는 4세대 SMR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SMR에 초점이 맞춰진 인허가 규제가 없다 보니 기업 간 기술 협력에도 잡음이 들리는데요. 실제로 유럽 소재 SMR 개발 업체는 한국에 SMR 관련 제도가 없어 기술 협력 시 인허가 과정에 차질이 생길까 불안하다며 한국 업체와의 기술 협력을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죠.
4. 정부 대응 현황
정부도 이와 같은 애로사항을 인식하고 SMR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20일,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연말에 SMR 4기 건설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라 밝힌 바 있죠. 이에 덧붙여 SMR은 표준화가 마련되지 않아 기술 개발을 하는 동시에 인허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형 SMR을 개발하며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등 적시에 SMR 인허가를 할 수 있도록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SMR 건설을 위해서는 관련 입법이 필수적이라 야권의 협조가 필요한데요. 야권은 원전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계부처도 정부 기조에 발맞춰 SMR 개발에 필요한 과정을 정립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발표된 차세대 원자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방안에 따르면 SMR 노형별 기술개발 상황에 맞춘 단계적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 있는데요. 관계부처는 우선 가장 개발속도가 빠른 혁신형 SMR (i-SMR, 경수로형)에 대한 사전설계검토, 규제연구 등을 시행하고, 이 혁신형 SMR은 2026년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할 예정입니다.
현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원자로(MSR) 등 비경수로형 SMR에 대해서는 노형별 개발 상황에 맞춰 연구개발을 진행, 단계적으로 규제 기반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5. 건설사 대응 현황
국내 건설사들도 SMR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요. 해외 투자 및 공동 개발 참여를 통해 SMR 해외 수주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1) 삼성물산
삼성물산은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 기본설계에 공동 참여하며 글로벌 SMR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삼성물산은 루마니아 현지에서 미국의 플루어, 뉴스케일, 사전트 앤 룬디 등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3개 사와 루마니아 SMR 사업의 기본설계를 진행하게 됐는데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승인을 받은 SMR 기술을 보유한 뉴스케일과 협업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삼성물산은 이번 루마니아 프로젝트를 계기로 아시아와 동유럽 등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 나갈 계획입니다.
2) 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유일의 원전주기기 제조업체인데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에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 사업에 강세가 있는 기업인 만큼 해외 원전 기업과도 다양한 협력을 진행 중인데요. 특히 X-에너지 지분 일부를 보유하면서 Xe-100에 사용될 핵심 기자재 공급 계약 체결하고, 뉴스케일파워의 SMR 건설에 사용될 소재 제작에 착수한 바 있습니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사업 재편으로 인한 부채 감소로 1조 원 이상의 투자 여력을 확보해 대형원전, SMR, 가스 수소터빈 등에 즉각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라 밝혔는데요. 설비 투자를 통해 5년간 대형원전 10기와 SMR 60기를 수주할 계획입니다.
3) DL이앤씨
DL이앤씨도 2022년 SMR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원자력 영업파트를 원자력·SMR 사업팀으로 변경하고, 조직 규모를 두 배로 늘렸을 만큼 SMR 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데요. DL이앤씨는 X-에너지, 캐나다 원전기업 테레스트리얼에너지 등에 투자를 진행하면서 SMR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해나가고 있죠.
또한 지난 8월에는 노르웨이 원전기업 노르스크원자력과 몽스타드 지역에 위치한 정규공장 내에 SMR을 개발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DL이앤씨는 SMR 플랜트의 EPC에 더해 유지, 운영까지 전 주기의 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SMR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겠다 밝혔습니다.
탈원전에서 복원 전으로, 대형 원전에서 SMR로 시대 흐름이 변화하며 SMR이라는 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풍부한 원전 건설 경험을 살려 SMR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SMR 맞춤 인허가 관련 규제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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