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돈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는 지인이나, 친구, 가족에게 돈을 빌리죠. 차용증을 쓰고, 이자를 정하고, 언제 다시 갚아야 하는 지를 정확히 문서로 남기기도 해요. 일반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지만 세금으로 모두 감당하긴 어려워요. 국가도 특정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는데, 이를 ‘국채’라고 해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차용증을 쓰고 이자를 지불한 뒤 돈을 빌리는 거예요.
세계 모든 나라가 '국채'(Government Bonds)를 발행해요. 세계 곳곳의 투자자들은 이 국채를 사들여 나라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서 수익을 추구하기도 해요.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보다 훨씬 안정적이라서 그래요. 그렇지만 모두가 안정적인 건 아니에요. 돈을 잘 갚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 있지만, 어쩐지 좀 불량하고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국가도 개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어떤 나라는 아주 잘 살아서 ‘국채’를 통해 돈을 빌려줘도 안심되지만, 어떤 나라는 빌려주기가 좀 꺼려지죠. 안 갚겠다고 몽니를 부릴 수도 있고, 갑자기 전쟁을 벌일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국채를 사야 한다면, 미국과 북한 중 어떤 나라를 선택하겠어요. 안전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당연히 미국이겠죠.
1. 국채의 미슐랭? WGBI
투자자라면 궁금할 거예요. 어떤 나라가 안정적이고, 어떤 나라가 불량한 지를요. 그래야 국채를 사도 돈 떼일 일 없이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있겠죠. 글로벌 지수 제공업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제공하는 세계국채지수(WGBI)가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요.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국채를 선정해 주기 때문이에요.
미슐랭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해 미식가들의 선택을 돕듯, WGBI는 '국채 맛집'을 선정해 주는 거예요. 모든 나라들이 자신의 국채가 안전하고 수익이 높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이 지수에 편입되고 싶어 해요. 이 지수에 편입이 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WGBI의 선택에 따라 국채를 더 많이 사들여요. 국채 발행 국가는 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는 셈이에요.
그러나 누구나 '국채 맛집'이 될 수는 없어요. 나라가 부강하고 안정적이면서 투자하기 적당한 나라만 지수에 편입이 될 수 있어요. WGBI에 가입된 나라는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선진국 25개 밖에 가입돼 있지 않아요. 이 지수가 '선진국 국채 클럽'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예요.
2. WGBI에 가입될 한국
지난 8일(현지시간) 대한민국에 경사가 있었어요. FTSE러셀이 내년 11월부터 WGBI에 대한민국을 편입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에요. 선진국 국채 클럽에 당당히 대한민국 국채가 이름을 올린 것이에요. 우리나라는 네 번째 도전만에 이 지수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어요.
WGBI는 투자자들에게 국채 투자 비율도 정해주곤 해요. 가장 맛있는 집이 미슐랭 별 세 개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가장 많은 투자 비율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에요. 미국의 추천 투자 비중은 40.4%에 달할 정도예요. 아무래도 막강한 파워를 가진 나라에 많이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이치겠죠.
그다음으로는 일본(10.2%), 프랑스(6.7%) 순이예요. WGBI는 이번에 대한민국 국채 편입 비중으로 2.2%으로 결정했어요. 이번에 막 가입된 나 라인만큼 막대한 비중을 추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2.2%여도 적은 돈은 아니어요. WGBI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자금만 2조 5000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에요. 그중 2.2%만 대한민국에 투자해도 670억 달러나 돼요. 우리나라 국채에 투자하는 돈이 90조 원이나 추가된다는 뜻이에요.
3. 이제 적은 이자로 돈 빌려요
WGBI에 편입되면서 우리나라는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을 전망이에요. 신용도가 높아지면 은행에서 대출 이자가 낮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WGBI라는 세계 3대 채권 지수가 대한민국을 '인정'한 만큼 우리나라도 그만큼 신용도가 올라가요. 우리나라 기획재정부는 0.6포인트 금리 인하 효과를 기대하고 있어요. 연간으로 따지면 1조 1000억 원이나 이자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에요.
'국채'의 위상이 증가하면서 대한민국 은행채와 회사채도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여요. 은행도 회사도 국가처럼 이자를 약속하고 돈을 빌리는데, 이를 은행채와 회사채라고 해요.
일반적으로 은행채와 일반 회사채는 앞서 말한 국채 금리에 추가적으로 이자를 더해 이자율이 정해져요.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해외에서 부유한 대한민국의 후광을 받듯, 은행·회사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선진 국채 혜택을 받는 거죠.
WGBI 지수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면, 꾸준히 외화가 대한민국으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돼요. 외국돈을 거래하는 외환시장의 달러 물량이 풍부해지면, 환율도 안정을 찾게 돼요. 국제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달러가 부족하면 국가 경제는 위기를 맞아요. 1997년의 외환위기처럼 말이에요.
WGBI는 채권에 대한 지수이지만 주식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요. 한국을 선진시장으로 인정해 준 만큼 외국인들이 대한민국 주식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에요. 국채시장과 주식시장이 상호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아 활발해질 수 있다는 의미예요.
4. 선진자본시장까지 갈길은 멀다
그렇다고 아직 남은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특히 주식을 거래하는 증권시장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증시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상징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MSCI는 지난 6월 연례 시장 분류 결과 신흥국(EM)에 속한 우리나라의 변경 사항이 없다고 발표했어요. 아직 선진국으로 가기에는 우리나라 시장 수준이 낮다고 판단한 거예요.
특히 공매도 금지 조치를 문제 삼았어요.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진행하는 투자 기법인데, 모든 선진국은 이를 다 시행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정부는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지난 6월 말까지 예정된 공매도 전면 금지를 내년 3월 30일까지 9개월 연장한 바 있어요.
MSCI는 "공매도 금지 조치로 인해 시장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 규칙의 갑작스러운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했어요.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려면 후보군인 관찰대상국에 1년 이상 올라야 해요. 내년 6월 선진국 지수 편입 후보군에 들더라도, 2026년 6월 지수 편입이 발표되고 2027년 6월 실제 편입이 이뤄진다는 뜻이에요. 선진 자본시장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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