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설계하는 건축가와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공사하는 시공사가 따로 있다는 사실, 모두 알고 계시죠. 반도체도 마찬가지예요. 설계하는 회사와 이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회사가 따로 있어요.
설계 회사는 팹리스라고 부르고, 이들로부터 요청받아 실제로 생산에 나서는 회사를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라고 불러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회사를 IDM(Intergated Device Manufacturer)이라고도 해요. 요즘 경제신문에 자주 나오는 엔비디아가 요즘 가장 뜨는 팹리스 회사예요.
우리나라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는 팹리스이면서 동시에 파운드리 회사기도 해요. 외부 고객의 수주를 받아서 고품질의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요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실적은 좋지 못해요. 대만의 대표 파운드리 회사인 TSMC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시장조사기관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62.3%인데 반해 삼성전자는 11.5%에 그쳤어요. 체면을 구겨도 단단히 구긴 것이죠.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인텔도 최근 상황이 좋지 않아요. 인텔은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할 정도로 회사 사정이 나빠졌어요. 과거에는 반도체 하면 모두가 인텔을 떠올렸지만, 머나먼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에요.
1. 삼성과 인텔의 깜짝 협력?
그런데 최근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어요. 파운드리 사업 부진에 빠진 삼성전자와 인텔이 협력을 도모한다는 기사가 보도됐어요.
최근 인텔의 고위급 인사가 삼성전자에 최고위 경여진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어요. 펫 겔 싱어 인텔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만남이 성사될 전망이에요. 두 최고경영자는 파운드리 부문에서 협력할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어요. 두 회사의 '파운드리 동맹'이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예요. 두 회사가 협력에 합의할 경우 기술 교류와 생산설비 고유, 연구개발 협업 등이 진행될 것이란 분석이 나와요.
한미 반도체 대표 회사가 협업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어요. 그만큼 양사의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에요. TSMC의 독식을 방치하다간 시장 경쟁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죠. 실제로 TSMC는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첨단칩 생산 분야(선단 공정 부문)에서는 점유율이 92%에 달해요. 사실상 독점인 셈이죠.
2. TSMC는 훨훨 나는데 삼성은...
지난 3분기 TSMC 매출액은 약 32조 원, 순이익은 14조 원을 기록했어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9%, 54% 늘어난 수치예요. 그야말로 파운드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절대강자인 거죠. TSMC가 높은 기술력으로 팹리스의 설계를 완벽히 실현하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은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성능이 훌륭한 TSMC에 맡기는 상황인 거예요.
이렇게 TSMC가 훨훨 날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인텔의 활약은 미미한 편이에요. 특히 인텔은 지난 2021년 파운드리 회사를 설립한 이후 많은 고객을 유치하지 못했어요.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출범시킨 삼성전자도 AMD나 퀄컴을 고객으로 확보했지만 확장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아요.
파운드리 시장규모는 올해 1,591억 달러(약 219조 원)로 오는 2029년이면 2,700억 달러(약 372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돼요. 더 이상 TSMC의 독점을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인 거죠. 두 회사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화의 장을 마련한 배경이에요.
3. 협력하면 뭐가 좋아지지
두 기업이 협력하게 되면 우선 공동개발과 생산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전망이에요. 삼성전자는 높은 수준의 반도체 구현 기술을, 인텔은 패키징(가공 마친 원료 웨이퍼를 칩 모양으로 자르고 묶고 포장하는 후공정 작업)에 경쟁력이 있어요.
양 회사가 전 세계에 보유한 시설 설비 공유가 가능한 것도 장점으로 꼽혀요. 삼성전자는 국내경기도 화성, 평택뿐만 아니라 미국 오스틴, 중국 시안에 설비를 갖추고 있죠.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오리건과 아일랜드·이스라엘에 공장을 확보했어요. 공동 생산하면 물류비가 더욱 낮아질 수 있는 것이에요.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양사가 TSMC처럼 AI반도체를 만들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해요. 고품질 AI칩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파운드리가 TSMC인 만큼, 서둘러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분석이에요.
인공지능 반도체(AI 칩)에 대해 각국이 수출 장벽을 높이는 현재 상황도 양사의 협력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요. 미국은 AI칩에 대해서 적대국에 수출 금지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국가별 할당제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해요. 미국 회사와 협력하면 수출 장벽에 대한 부담은 어느 정도 줄어들 전망이에요.
4. 인텔 기살리기 나선 미국
인텔은 특히 이번 협력을 더욱 열정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어요. 회사가 위기 상황에 빠지자 미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인텔 기살리기'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에요. 미국 정부는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인텔에 약 26조 원의 보조금을 주겠다는 예비 합의를 하기도 했어요. 미국의 대표 기업을 이대로 죽일 수 없다는 메시지였죠.
특히 반도체는 경제적·안보적으로 중요한 물품인 만큼 외국 회사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계산도 숨어있어요. 첨단 반도체 생산이 모두 외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유사시 반도체 공급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삼성은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만큼 인텔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기도 해요. 굳건한 한미동맹처럼, 양국 대표 회사의 경제동맹도 성사될 수 있을지 전 세계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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