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두산그룹과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옵니다. 두 그룹 모두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계열사 간 합병을 발표했는데요. 이 합병 과정에서 계열사 간 합병비율이 논란의 불씨가 됐습니다. 오늘은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그리고 두산그룹과 SK그룹의 사례에서 합병비율이 어떤 논란을 낳았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합병비율, 어떻게 정할까?
1)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
두 기업의 합병비율을 정하려면 당연히 각 기업을 얼마의 가치로 평가할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크게 4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① 시장접근법: 규모나 사업 내용이 유사한 기업의 가치를 적용해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② 현금흐름할인법: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추정한 후 이를 현재 가치로 할인해 기업가치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③ 비용접근법: 유사한 기업을 새로 만들 때 드는 예상 비용을 기업가치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④ 기준시가를 활용하는 방법: 기업의 주식이 시장에서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를 보여주는 시가총액을 기업가치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2) 합병비율이란?
기업을 합병할 때는 보통 하나의 기업이 남고, 다른 기업이 그 아래로 합쳐지곤 합니다. 이름을 유지하는 기업을 존속회사, 합쳐지면서 사라지는 기업을 소멸회사라 부르는데요. 합병 시 소멸회사의 주주에게는 일정량의 존속회사 주식을 부여합니다. 이때 소멸회사의 주식 1주당 얼마만큼의 존속회사 주식을 줄지, 그 비율을 합병비율이라고 합니다. 합병비율은 보통 각 회사의 기업가치를 비교해 산정됩니다. 예를 들어 존속회사의 기업가치가 10이고, 소멸회사의 기업가치가 5라면 합병비율은 1:0.5가 되죠. 이때 소멸회사의 주식 10주를 가지고 있다면, 이 주식은 없어지고 대신 존속회사의 주식 5주를 받습니다.
3) 합병비율 결정하기
합병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계산한 기업가치를 합병가액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 합병가액을 계산하는 방법은 자본시장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상장기업은 ‘최근 1개월간 주식의 평균 종가’와 ‘최근 1주일간 주식의 평균 종가’ 그리고 ‘가장 최근 주식의 종가’를 산술평균한 값을 기준시가로 정하고, 기준시가를 30% 범위(계열사 간 합병일 때는 10% 범위)에서 할인하거나 할증해 합병가액을 결정합니다.
비상장기업은 기업의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1.5로 가중평균한 본질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정합니다.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이 합병하는 경우에 한해, 상장기업의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낮다면, 상장기업은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은 이렇듯 기업의 주가를 활용해 합병가액을 결정하도록 했는데요. 이 배경에는 시장 참여자에 의해 가장 합리적으로 결정된 가격인 주가가 곧 기업의 가치가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자산가치란 현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자본)의 가치이며,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제외해 계산할 수 있습니다. 수익가치는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을 추정해 이를 현재가치로 할인해 계산하죠. 수익가치의 경우 기업이 자의적으로 미래 이익을 과대평가하지 못하도록 반드시 외부 회계 전문가가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대한 비판: 앞서 설명했듯 우리나라는 합병가액을 계산할 때 주가를 활용합니다. 다만, 주가를 이용해 합병가액을 계산하는 현행 방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먼저, 기업이 합병 전에 주가를 어느 정도 통제해 원하는 합병비율을 맞출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주가는 시장의 기대에 따라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기업이 얼마든지 주가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인수합병 시기는 기업이 결정할 수 있는데, 주가가 저평가 또는 고평가 된 시점에 인수합병을 진행하면 실제 기업가치와 합병가액의 괴리가 커지게 됩니다. 또한 주가를 이용한 합병가액 산정 방식에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나 내부 인력의 역량 등 무형적인 가치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4) 고정된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문제?
자본시장법에 의해 엄격하게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합병가액을 계산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합병 과정에서 합병가액을 조정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업이 법을 악용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합병을 시도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이를 막기 어렵다는 한계도 존재하죠. 참고로 미국이나 일본은 주가를 이용한 합병가액 산정 방법 외에도 자산가치, 수익가치를 섞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2.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뜯어보기
1) 지배구조 개편안 살펴보기
두산그룹은 그룹의 핵심 사업을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 및 첨단소재 등 3개로 정리하고자 계열사 개편에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산업군의 계열사를 끼리끼리 모아 시너지를 내고 성장을 가속한다는 계획이죠.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크게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단계: 두산에너빌리티를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존속회사 A와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투자회사 B로 인적분할합니다.
2단계: 분할된 투자회사 B가 두산로보틱스에 흡수 합병되면서,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의 지분 46%를 보유하게 됩니다.
3단계: 일반주주가 보유한 남은 두산밥캣의 주식 54%를 두산로보틱스가 가져옵니다. 그 대가도 일반주주는 상응하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받게 되죠. 최종적으로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두산밥캣을 상장 폐지해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의 완전자회사가 됩니다.
2) 숫자로 보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1단계에서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법인와 신설법인을 1:0.24 비율로 인적분할합니다. A회사는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75.3%를 보유하고 신설 회사는 24.7%의 비율로 떨어져 나간다는 의미죠. 이후 분할회사는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한 채로 두산로보틱스와 합쳐지고,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하게 됩니다. 두산밥캣의 나머지 지분 54%는 두산로보틱스가 발행하는 신주와 포괄적 주식교환의 형태로 교환하며,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주식 교환비율은 1:0.63입니다. 그러나, 이 주식 교환비율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3)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주식 교환비율 기준은?
이사회는 각 회사의 시가총액을 반영해 주식 교환비율을 결정했습니다. 두산로보틱스의 주가는 80,114원으로, 두산밥캣의 주가는 50,612원으로 반영했죠.
4) 두산밥캣 주주 입장
트랙터나 지게차 같은 소형장비를 만드는 두산밥캣은 두산그룹의 알짜 계열사입니다. 두산밥캣은 2023년 9조 7천억 원이 넘는 매출과 1조 4천억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꾸준히 늘어나는데요. 그러나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에서 주식 교환비율이 계산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두산밥캣 주식 100주를 들고 있는 주주라면 두산로보틱스 주식 63주를 받을 수 있는데, 두산밥캣의 주가가 저평가된 점을 고려하면 이번 주식교환이 두산밥캣에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5) 두산밥캣, 얼마나 저평가?
기업의 저평가 여부를 판별하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기업가치를 영업이익으로 나눈 EV/EBITDA 배수를 고려하면 두산밥캣은 2.7배가 나옵니다. 두산밥캣의 경쟁사라 볼 수 있는 일본의 구보타가 6배, 미국의 캐터필러가 10.5배가 나오는 것에 비교하면 두산밥캣이 얼마나 저평가된 상태인지 감을 잡을 수 있죠.
6) 두산로보틱스 주주 입장
두산로보틱스 입장에서는 알짜 자회사가 생겨 재무 구조를 개선할 수 있게 됩니다. 로보틱스는 2023년 530억 원의 매출과 19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요. 두산밥캣이 자회사가 되면 적자를 메우는 것은 물론 현금성 자산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또한 두산밥캣의 딜러망을 활용해 거래처를 넓혀가며 사업 시너지도 누릴 수 있죠. 두산로보틱스 주주 입장에서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확실히 호재입니다.
7)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
두산에너빌리티의 인적분할과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식 교환의 결과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가 75주로 줄어드는 대신,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3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알짜 자회사인 두산밥캣이 두산에너빌리티의 품을 떠나가면서 배당 이익이 줄어들고 재무 상태가 다소 악화할 전망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서도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탐탁지 않죠.
8) 관건은 주식매수청구권
단, 두산 계열사들의 주주가 대규모로 주식매수청구권을 신청하면 이번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될 수 있습니다.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반대할 때, 보유한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회사에 매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식매수청구권인데요. 두산밥캣 기준 1조 5천억 원, 두산에너빌리티 기준 6천억 원, 두산로보틱스 기준 5천억 원 이상 주식매수청구권 신청이 들어오면 합병 계약 변경이나 해제가 가능해집니다.
3. SK그룹의 사업재편 뜯어보기
1) SK그룹의 사업 개편 살펴보기
SK그룹은 최근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양사의 합병비율은 1:1.19이며, SK이노베이션이 존속하고 SK E&S가 소멸회사가 됩니다. 그래서 SK E&S 주주는 100주당 SK이노베이션 주식 119주를 받죠. 양 사의 합병이 승인되면 자산 가치가 100조 원이 넘는 초거대 에너지 기업이 탄생합니다.
2) 합병비율은 어떻게?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이 1:2나 1:3까지도 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낮은 1:1.19라는 합병비율이 발표됐는데요.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이 주당 112,396원으로 정해졌고, SK E&S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1.5 비율로 가중평균한 133,947원으로 정해진 것이죠.
3) 합병비율 논란
합병비율을 두고 SK이노베이션의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현재 저평가된 상태며, 자산가치로 따지면 현재 합병가액의 2배 정도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SK E&S가 비상장회사기에 SK그룹의 의지만 있었다면 SK이노베이션의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정할 수 있었죠. 그러나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의 기준을 저평가된 주가로 잡았고, 이는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불리한 선택이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4) SK그룹의 속내는
SK그룹은 이번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으로 배터리 계열사 SK온을 살리고자 합니다. SK온은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현재 지속적으로 적자에 빠져 있는데요. 2023년 1조 3천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 알짜회사 SK E&S를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해 SK이노베이션에 자금력을 실어주고, 이 현금 흐름으로 SK온을 지원한다는 계획이죠.
핵심 계열사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두산그룹과 SK그룹의 결정에 대해 당장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입장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기업 간 합병비율을 일률적으로 주가를 기준으로 정한 자본시장법이 가진 한계도 지적되는데요. 이에 정치권에선 합병비율을 주가가 아닌 기업의 본질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합병비율을 정하는 방법과 법안은 시대에 따라 발전해 온 만큼, 앞으로 주주가치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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