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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거시경제

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진짜 이유 (feat. 엔화 약세 대응 역부족)

by 트렌디한 경제 상식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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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진짜 이유 (feat. 엔화 약세 대응 역부족)
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진짜 이유 (feat. 엔화 약세 대응 역부족)

 

일본은 지금 역사적인 엔저를 겪고 있습니다. 달러/엔 환율이 150엔까지 치솟으면서 '일본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평가까지 나오는데요. 일본 정부는 환율 방어를 위해 수십조 원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3~3.25%)과 일본(-0.10%)의 금리 차이가 워낙 커 엔화 약세를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금리 인상에 선을 그었는데요.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금융 완화를 계속하겠다"라고 까지 말했죠. 환율 상승으로 물가가 치솟으며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지만, 기시다 총리는 오히려 "일본은행 총재의 임기를 단축할 생각이 없다"라며 구로다 총재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데도 일본은행이 꿋꿋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환율 상승으로 인한 물가 급등으로 내각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데도 기시다 총리가 구로다 총재의 초완화정책을 옹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금리를 올리지 않는 일본의 속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1. 일본의 엔화 약세의 원인, 계속되는 아베노믹스

올해 초만 해도 110엔 정도였던 달러/엔 환율은 미국의 빠른 금리 인상에 어느새 150엔까지 치솟았습니다. 일본 당국은 수십조 원을 쏟아 엔화 약세를 방어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에는 선을 긋고 있죠. 이는 아베노믹스의 주역 중 하나였던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입김이 강력하게 반영된 것입니다.

 

1) 3%가 넘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8~9%에 달하는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세 번 연속 0.75% P씩 인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여전히 경기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죠. 특히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아베노믹스' 추진을 위해 임명한 슈퍼 비둘기파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와 일본은행 정책위원들이 금리 인상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2) 아베노믹스, 돈을 찍어 경제를 살려!

아베노믹스는 아베 전 일본 총리가 내놓은 경제 정책으로, 중앙은행이 시중에 막대한 돈을 풀어 일본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정책입니다. 특히 '디플레이션 탈출'이 제1 목표였는데요. 일본은 1991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수십 년간 물가가 안 오르는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왔습니다. 물가하락(디플레이션)→소비감소→기업실적 악화→임금&고용 감소→소비감소→물가하락(더 심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이어졌죠. 아베 전 총리는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 투자와 소비 증가→기업실적 개선→임금&고용 증가→소비 증가라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3) 아베 사후에도 지속되는 레거시

아베 전 총리는 2020년 지병을 이유로 사퇴한 뒤 올해 7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유산, 아베노믹스는 지금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일본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정책위원들이 대부분 아베 전 총리가 임명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3년부터 일본은행을 이끌어 온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겠다"라던 아베 총리의 의지를 가장 충실하게 잇는 인물이죠.

 

2. 일본은행, 아베가 내려다보고 있다

일본은행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우리나라의 금융통화위원회처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정책심의위원회'가 있습니다. 정책심의위원회는 총 9명의 정책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새로 임명된 2명을 제외한 7명은 모두 아베 전 총리 집권 시절 임명된 완화정책 찬성론자입니다.

 

1) 아베의 단짝,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아베 총리가 임명한 구로다 총재는 대표적인 초완화정책 지지자입니다. 아베노믹스의 실현을 위해선 중앙은행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요. 양적완화의 핵심은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매입해 이자율을 낮추는 데 있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하죠. 구로다 총재는 아베 전 총리의 집권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한 일본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 인데요. 임기 전 사임할 생각이 없으며, 금융완화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2) 2명 빼곤 모두 아베노믹스 지지자

일본 통화정책심의위원회는 총재와 부총재 2명을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요. 이중 올해 7월 새로 임명된 2명의 정책위원을 제외하면 모두 완화정책 지지자입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금리가 오르는 지금도 완화정책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1)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넘어 3%에 이르렀지만, 아직 2%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고, 2) 기업의 실적 개선이 실제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려면 아직 돈을 좀 더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죠. 물론 올 7월 임명된 다카타 하지메와 타무라 나오키가 매파(긴축 지지파)로 꼽히긴 하나, 나머지 7명이 압도적인 비둘기파(완화 지지파)여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습니다.

 

3) 기시다: "하... 이것 참 고민이네"

이렇듯 정책위원 중 아베노믹스 지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경제 정책의 방향성을 송두리째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데다, 구로다 총재를 제외한 정책위원들의 임기가 2025~2026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죠. 물론 내년 4월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기에 일본은행의 '슈퍼 비둘기파'적인 색채가 약해질 수는 있지만, 여전히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을 보유한 아베 전 총리가 퇴임 이후에도 "차기 총재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만큼 급격한 정책 전환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올해 5월 기시다파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본은행 총재) 인사가 힘들다.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했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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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시다, 아베노믹스가 싫지만은 않다?

기시다 내각은 고물가와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66%에 달하던 지지율은 엔저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30%대까지 주저앉았죠. 훌쩍 뛴 물가에 일본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구로다 총재가 일본은행 총재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까지 생각한다는데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꿈쩍도 하지 않는 일본은행이 답답할 만도 하지만, 그는 내년 4월까지 예정된 구로다 총재의 임기를 보장하기로 했습니다. 정치적 논란을 만들지 않고자 하는 의도도 있겠지만, 완화정책이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 오르는 물가가 답답한 기시다 총리

9월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였습니다. 우리나라(5~6%)나 미국(8~9%)에 비하면 한참 낮지만,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수십 년간 0%대였기에 체감 상승률은 훨씬 높을 수밖에 없죠. 3%대 상승률은 30년 만에 처음이며, 체감 물가 상승률은 10%에 달하는데요. 엔저로 환율이 폭등하며 제품 수입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기시다 총리는 약 692조 원 규모의 물가 대책을 내놨지만, 70% 넘는 일본인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2) 완화정책, 오히려 좋아?

그런데 기시다 총리도 완화정책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는 올해 6월 아베노믹스를 대체할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임금 인상을 통한 중산층 확대이기 때문이죠. 임금이 오르려면 일단 기업의 실적이 좋아져야 하는데, 완화정책과 엔저의 영향으로 주요 수출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금리를 올린다면 살아나기 시작한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 되죠. 치솟는 물가는 부담이지만, 기시다 총리도 겨우 살려 놓은 성장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최근 구로다 총재의 정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기업들이 물가 상승을 계기로 임금을 인상의 여지를 갖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3) 기시다의 카드, '물가대책'과 '여행활성화'

완화정책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해도, 물가 상승을 방치할 수만은 없습니다. 일본 정계에는 내각 지지율과 자민당 지지율의 합이 50%보다 낮으면 총리가 실각한다는 '아오키의 법칙'이 존재하는데요. 통일교 스캔들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 관리까지 실패한다면 기시다 총리도 총리직을 잃을 위험도 있죠. 그래서 그는 692조 원 규모의 물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에너지 보조금과 출산 지원금, 중소기업 임금인상 지원금 등을 통해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을 덜겠다는 거죠. 또, 엔화가 약세인 틈을 타 무비자 관광을 확대하고, 여행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여행 산업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경기도 좋아지고,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만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시다 총리에겐 살아남은 아베노믹스의 유산이 기회가 될 수도, 위기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통일교 스캔들과 물가 관리에 성공한다면 역대급 엔저는 그가 그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좋은 동력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실패한다면 고물가는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만 줄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일단 구로다 총재가 강경한 완화정책 지지자인 만큼,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일본은행은 엔화를 풀고 재무성은 달러를 풀며 환율을 150엔 내외로 묶어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엔 구로다 총재보다 덜 강경한, 완화정책 신중론자가 총재 자리에 임명될 거란 관측이 나오는데요. 과연 기시다 총리와 구로다 총재의 미묘한 동거는 어떤 결말을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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