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날씨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열풍이 뜨겁게 불어오며 열기를 더했죠. 이로 인해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망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AI의 확산이 계속되고, 여름철 기온이 매년 상승한다면 전력 수요 증가가 불가피한데요. 이를 충당하려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망이 구축돼야 하죠. 오늘은 AI 시대를 맞아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전력망과 스마트그리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전기를 이동시키는 인프라, 전력망
1) 발전-송전-배전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우리 집 또는 회사까지 오는 단계는 크게 발전-송전-배전 단계로 구분됩니다.
① 발전: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로, 화력 발전, 원자력 발전, 태양광 발전 등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② 송전: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 전력을 보내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전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압을 높여 전기를 송전합니다.
③ 배전: 변전소에서 가정이나 회사와 같은 최종 소비처까지 전력을 공급하는 단계로, 변전소에서 적절한 전압(예: 220V)으로 조정하여 전기를 전달합니다.
변전(Transformation of Electric Power)이란 송전이나 배전 단계에서 전압을 올리거나 내리는 과정을 뜻합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220V인데, 이렇게 낮은 전압으로 전기를 송전하면, 높은 저항으로 인해 손실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에 전기를 운반할 땐 전압을 높이고, 우리가 사용하기 직전에는 적당한 수준으로 전압을 낮추죠. 변전은 전력 수송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2) 전력망은 뭐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최종 소비처까지 전달하는 데 필요한 모든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전력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효율성과 안전성입니다. 전기를 최대한 낭비 없이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안전한 수송을 보장해야 합니다. 충남, 경북, 경기, 전남, 인천 등에서 생산된 전기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전력망 덕분입니다.
2. 전력망 확충이 필요하다
1) 기존 전력망의 노후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전력망이 노후화하면서 전력망 교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전력망을 빠르게 구축했던 미국이 가장 대표적인데요. 바이든 정부는 지난 4월 향후 5년 동안 16만 km에 달하는 전력망을 새로 교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노후화된 전력망이 감당하지 못해 정전 사고가 늘어나며, 블룸버그는 이로 인해 미국이 입는 경제적 손실을 매년 200조 원 이상으로 분석했습니다. 전력망 교체 주기는 보통 50~60년이기 때문에, 미국 외에도 여러 국가에서 전력망 교체 수요가 있을 전망입니다.
2) 늘어난 전력 수요
최근 몇 년간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도 전력망 확충의 필요성을 키웁니다. 몇 년 전부터 암호화폐 투자가 늘며 자연스레 채굴량도 늘었는데요. 암호화폐 채굴에는 많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고, 그만큼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AI 열풍은 늘어난 전력 수요에 기름을 부었는데요. AI 개발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데이터센터 운영에도 전력이 많이 필요하죠. 챗GPT에서 질문 하나를 처리할 때는 구글 검색보다 약 10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AI 수요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전력 수요도 커질 전망입니다.
3) 신재생 에너지도 전력망이 필요해
신재생 발전 확대에 따라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도 중요해집니다. 풍력발전소나 태양광 발전소를 볼 수 있는 바닷가나 넓은 평야 등 도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를 도시까지 옮길 수 있는 전력망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또한 최근에는 소형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곳곳에서 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요. 이 역시 필요한 곳으로 전기를 옮기기 위한 전력망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신재생 에너지가 보편화될수록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도 함께 만들어져야 합니다.
4) 우리나라도 전력망 구축 속도 높여!
일본은 2030년까지 전국에 18개의 대형 변전소를 신설하거나 증설하기로 했고, 중국은 전력망에 1,000조 원 넘는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죠. 우리나라도 반도체 산업 등 필수 산업군에 안정적으로 전력 공급을 하기 위해 전력망 건설 및 인허가 프로세스를 단축해 전력망을 대폭 확충하는 특별법인 전력망 확충법(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국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3. 똑똑한 요즘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1) 스마트그리드란?
스마트그리드는 전력망에 IT 기술을 접목해 전력 공급자와 수요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효율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차세대 전력망입니다. 발전소는 물론이고 변전소와 최종 소비처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각자의 공급량과 수요량 등을 공유해 효율적으로 전력을 주고받는 유연한 전력망이죠. 지금까지 발전소는 전력 수요를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채 내부 상황을 고려해 전력을 생산하고, 수요자는 단순히 공급받는 만큼 전력을 사용하는 형태였는데요.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되면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발전소에서는 각 수요처에서 필요한 전력을 빠르게 파악해 필요한 만큼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죠.
2) 스마트그리드의 주요 구성 요소
스마트그리드는 크게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지능형 원격검침 인프라(AMI)로 구성됩니다.
① 에너지관리시스템(EMS)
EMS는 전력망 내 에너지 효율을 높게 관리하는 IT 소프트웨어입니다. 각 전력 수요처에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전력 공급을 최적화하고, 미래 수요를 예측해 전력 생산량을 관리합니다.
② 에너지저장시스템(ESS)
ESS는 생산된 대량의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입니다. 전기를 저장한다는 점에서 배터리와 원리는 같지만, 수백 kWh에 달하는 대량의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를 ESS라고 부르죠. ESS는 보통 스마트그리드 내에서 이미 생산된 전기를 저장해 뒀다가 가장 수요가 많은 낮 시간대에 공급하는 등 급격한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날씨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신재생 발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높은 스마트그리드에서는 그 중요성이 커집니다.
③ 지능형 원격검침 인프라(AMI)
AMI는 수요자와 공급자 간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인프라입니다. 특히 AMI는 수요자의 전력 사용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고, 이를 공급자에게 제공해 전력 공급량과 단가 등을 조정하도록 돕습니다.
3) 스마트그리드의 장점
스마트그리드는 그동안 공급자 중심으로 진행됐던 전기 공급을 효율화해 낭비되는 전력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당장 전기가 필요하지 않은 수요자에게 전기를 보내지 않음으로써 송전 비용을 줄이는 식이죠. 또한 스마트그리드는 신재생 발전의 단점을 보완합니다. 언제 바람이 불고 해가 뜰지 몰라 발전 시간이 불규칙적인 신재생 발전의 단점은 스마트그리드가 공급과 수요를 조절함으로써 해결이 가능하고, 도시 곳곳의 소규모 신재생 발전을 스마트그리드에 통합하면 효율적인 전력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4) 우리도 전기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가 상용화되면 누구나 전기 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집이나 회사에서 태양광 패널 등 자가발전 설비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별 생산자는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가격으로 전기를 판매하며 현재 독점 체제로 구성된 전기 시장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4. 스마트그리드, 어떤 것들이 달라질까?
1) 전기 요금 유연화
스마트그리드를 이용하면 누구나 전기 공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전기 거래 시장에 유동성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가 비싼 낮에 자가발전 설비를 이용해 개인이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이는 전기 공급량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공급이 늘어나면 전기 요금은 저렴해질 가능성이 높죠. 또한 시장에 전기를 거래하려는 참여자가 많아지면, 주식처럼 전기도 실시간으로 거래 가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력 공급 시장이 완전히 시장에 의해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정전이나 과부하 방어
스마트그리드는 정전이나 전력망 내 과부하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번 여름처럼 단기간에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예측될 때, 아무런 대비가 없다면 전기가 부족해 정전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스마트그리드는 미리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주변의 소규모 발전소 등에서 나온 전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전력 부족을 막습니다. 또한 전력망 내 각 단계를 모두 모니터링해 장비 이상에 따른 전력 과부하 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죠.
3) 전기차와 스마트그리드
전기차는 스마트그리드의 시스템에 포함되면 하나의 전기저장장치(ESS)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V2G(Vehicle-to-Grid) 기술을 통해 전기차와 스마트그리드는 양방향으로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요. 전기차는 스마트그리드와 통신해 가장 전력이 가장 저렴한 시간대에 충전하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고, 스마트그리드는 전기차를 하나의 전력 저장소로 활용해 필요한 경우 인접 전기차에 저장된 전기를 빠르고 저렴하게 배분할 수 있게 됩니다.
올해 들어 AI 수요와 폭염 등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전력망과 관련된 기업의 주가가 크게 오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노후화된 전력망을 재정비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기도 했는데요. 세계 각국은 초전도 전력망 등 전력망 자체의 성능을 높이기도 하고, 스마트그리드와 같이 IT 기술을 도입해 전력 관리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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