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내용을 다뤘길래 그래?
최근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논쟁적인 보고서 중 일부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아요.
1) 전국에 인프라를 깔아줄 순 없어
전국 방방 곳곳에 인프라를 깔아주는 걸로는 현재의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겼어요. 인구 감소 + 복지지출 증가로 지역 개발에 쓸 수 있는 돈이 더욱 한정될 것이기에, 소수 거점도시만 딱 골라서 집중 투자하자고 주장하죠. 그래야 수도권의 발전 속도를 늦게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
2) 집값 내리면 출산율도 늘어날걸
출산율 높이는 방법 6개를 제안했어요.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1.4% → 2.2%)으로 올리고, 육아휴직 실 이용기간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10.3주 → 61.4주)으로 올리고, 청년층 고용률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58.0% → 66.6%)으로 올리고, 도시인구집중도를 OECD 34개국 평균 수준(431.9 → 95.3)으로 내리고, 혼외출산비중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2.3% → 43%)으로 올리고, 실질주택가격지수를 2015년 수준(104 → 100)으로 내리자고 한 건데요. 이렇게만 하면 출산율이 2021년 기준 0.81명에서 1.655명으로 오를 것이라는 것이 한은 측의 생각이었어요.
3) 외국인이 싼값에 일해준다면
간병/육아 등 돌봄 서비스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를 지적하며, 그 해결방안으로 외국인 직접 고용(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적 계약 방식), 돌봄 서비스 부문에 한정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을 제안했어요. 외국인 노동자를 최저임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이래저래 고민한 거예요.
4) 농산물 수입을 늘려볼까
과도한 물가 변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해결 방법으로 국내 농가 기계화율을 높이고, 각 영농 규모를 늘리고, 농산물 수입을 늘리자고 제안했죠. 이 외에도 유통 구조를 효율화하고, 공공요금을 미리 올려 공공서비스 공급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자고 했어요.
5) 명문대 입학에 지역 쿼터를 부여하자
과도한 입시경쟁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유발했다고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해결방법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는데요. 서울대 같은 명문대 입학생을 지역별 학생 비율에 맞춰서 뽑자고 한 거예요. 2019년 서울대 입학생 성적을 보면 지역균형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성적이 다른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은행은 이와 같은 사례를 들어 지방에서 뽑은 학생도 다른 학생들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고 주장해요.
*사교육 부담, 교육기회 불평등 심화, 사회역동성 저하, 저출산, 수도권 인구집중, 학생의 정서불안, 낮은 교육성과 등
과일 수입을 늘리고, 명문대 입학에 지역 쿼터를 부여하는 등 어떤 면에서 보면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를 잇달아 다루고 있는 건데요. 이에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다른 집단과의 갈등을 빚기도 하는 상황이에요.
*농업 분야 전문가가 아니고 물가를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복잡다기한 농업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어 몇 가지 혼란을 야기할 부분이 있다고 했어요.
2. 이렇게까지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유가 있어?
과거 한국은행은 할 일(통화 정책)에만 조용히 집중하는 이미지였습니다. 절 같은 분위기 탓에 '한은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인데요. 이러한 기조가 최근 확 바뀌었다고 하죠.
총재 자리에 오른 이창용이 한국은행을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인데요. 통화 정책을 자유롭게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수십 년간 누적된 구조적인 사회 문제들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이창용의 생각이거든요. 이에, 사회적 이슈와 문제를 분석하는 한은 보고서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거예요. 이창용은 설사 그 과정에서 논란과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실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했어요.
3. 사람들은 뭐래?
아래와 같이 다양한 의견이 나와요.
1) 엘리트 집단에서 이 정돈 해줘야지
역량 있는 한국은행에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이 나와요.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이 다른 어떤 조직보다 관련 부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중립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어요.
2) 다른 나라에서도 하는 거야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도 지역 경제나 사회 문제를 분석해서 보고서로 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어요. 미국은 연준뿐만 아니라 지역 연방은행들도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경제학자 시각으로 다양한 보고서들을 낸대요.
3) 경제, 자본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해
사회적인 이슈를 경제학, 자본 논리로만 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와요. 정부의 시선으로만 이슈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죠.
4) 한은이라고 다 맞는 건 아니야
2023년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서 이창용은 "구조적 장기침체는 구조를 개혁해야 하지, 재정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자신의 견해를 질문식으로 해외 석학들에게 전했는데요. 딱히 공감을 얻진 못했어요. 오히려 반대의 답변이 돌아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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