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이커머스 업계 전반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쿠팡의 독주 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고, 고금리와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내수 소비는 침체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수익성 강화 흐름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죠. 특히 '티메프 사태'로 상징되는 중소 플랫폼들의 위기는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뿐 아니라, 영업 종료와 폐점 소식이 계속 이어지며 업계는 한층 더 긴장감을 안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5년은 어떨까요? 내년에는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준비해 온 업계 재편의 움직임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예정입니다. 네이버는 네이버 배송과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 별도 앱 출시를 준비하고 있고, 롯데는 오카도의 기술을 도입한 물류 센터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절치부심하며 내부 정비를 마친 신세계 그룹과 11번가도 다시 한번 시장의 빈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쿠팡이 장악한 패권에 모두가 도전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지만, 결과적으로 큰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4가지 예측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쿠팡과 네이버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집니다
네이버는 한때 이커머스 업계의 1위였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쿠팡에게 완전히 밀려 2위로 내려앉고 맙니다. 올해 내내 네이버의 거래액 성장률은 시장 평균에도 못 미쳤던 반면, 쿠팡은 이를 크게 웃돌며 격차를 더욱 벌렸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네이버는 지난 11월 새로운 비전과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와 네이버 배송을 중심으로 변화의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데요. 특히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는 2025년 상반기 중 별도 앱으로 출시될 예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네이버의 기존 강점이었던 가격 비교 기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네이버 배송과 플러스스토어를 키우기 위해 외부몰 상품 노출을 줄이고, 네이버 배송 상품을 우선적으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UI/UX를 조정했기 때문인데요. 이로 인해 수수료 부담이 커지고, 최저가 중심의 시스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빠르고 편리한 배송을 앞세운 쿠팡에게 계속 고객을 빼앗기던 네이버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네이버 배송이 쿠팡의 로켓배송과 경쟁할 체급을 확보하려면 빠르게 상품 구색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죠.
반면 쿠팡은 이미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년은 네이버가 전략을 정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도기로,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은 쿠팡의 독주가 한층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025년은 네이버가 골든타임 내에 쿠팡과 싸울만한 체급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시장 주도권을 완전히 놓치게 될지 가늠할 중요한 시점이 될 것 같네요.
2. SSG와 G마켓은 하나로 합쳐집니다
사실 이와 같은 쿠팡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건 신세계 그룹이었습니다. G마켓을 인수하며 쿠팡과의 정면 대결을 선언했죠. 하지만 과감한 결정에 비해 이후 행보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룹사 간의 시너지는 예상보다 더뎠고, 중복 투자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IT 중심의 비즈니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린 의사결정도 문제였는데요. 그 결과, 오랜 기간 흑자를 내던 G마켓은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외형 성장조차 멈췄다는 점이었는데요. 결국, 올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죠.
다만 조금 늦었지만, 변화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SSG닷컴과 G마켓 간 상품 연동이 드디어 가능해진다는 것인데요. 내년 1월 가동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과감하게 전망하자면, 장기적으로 SSG와 G마켓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합쳐질지도 모릅니다. 2025년 연내 통합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로드맵은 공개될 수는 있어 보이는데요.
물론 이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은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SSG닷컴에게 꼭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멀티 플랫폼 전략*이 대부분의 경우 실패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버티컬 서비스가 아닌 이상, 여러 플랫폼을 운영하면 마케팅 투자와 관리 리소스가 분산되어 오히려 경쟁에서 불리해지기 쉽습니다. 이는 금융 업계의 사례를 보면 더 명확해지는데요. 슈퍼 앱 전략을 택한 토스가 개별 앱으로 나뉜 기존 금융사나 심지어 카카오와의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죠.
※ 멀티 플랫폼 전략이란 하나의 앱에 모든 기능을 모으는 '슈퍼 앱'과 달리, 특정 기능이나 사용자 그룹을 겨냥해 여러 앱이나 플랫폼을 따로 운영하는 전략
또한 신세계와 이마트의 계열 분리도 이 변화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SSG닷컴과 G마켓이 물리적으로 통합되지 못했던 이유는 각 플랫폼의 포지셔닝이 달랐기 때문인데요. SSG닷컴은 신세계백화점에서 가져온 고급 이미지를 지닌 반면, G마켓은 보다 대중적인 오픈마켓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트와 백화점이 분리되면서 SSG닷컴의 키를 쥔 이마트가 매스 타깃에 적합한 전략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유리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SSG닷컴과 G마켓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버티컬 서비스는 더 세분화되고, 종합몰은 하나로 합쳐지는 흐름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업계의 큰 방향성이니까요.
3. 롯데의 그로서리 올인, 성과는 크지 않을 겁니다
신세계와 달리, 롯데는 온라인 대응에서 계속 한발 늦어왔습니다. 통합 플랫폼 론칭도, 대규모 물류 투자도 몇 년씩 뒤처져 있었는데요. 오카도*를 도입하여 그로서리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을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너무 늦은 결정'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 오카도란 영국에서 온라인 슈퍼마켓으로 시작하여, 자사 기술을 타사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에 적용하도록 솔루션 형태로 판매하는 기업으로 국내에서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롯데 쇼핑이 최초
그리고 드디어 내년 상반기 롯데는 그로서리 전문 서비스인 '롯데마트 제타'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2026년 1월에는 오카도의 기술을 적용한 물류센터 완공도 예정되어 있죠.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이 시장 판도를 바꿀 만큼의 성과를 낼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쿠팡이 로켓프레시를 통해 그로서리 시장까지 독주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마트가 네오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도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가장 먼저 새벽배송을 도입했던 컬리조차 한 자릿수 성장에 그쳤습니다. 이런 가운데 후발주자인 롯데마트가 오프라인에서는 이마트, 온라인에서는 컬리가 모두 쿠팡에 밀리는 현실을 극복하며 반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그로서리 카드마저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롯데의 부진은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고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롯데의 전략이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롯데는 나름대로 입체적인 그로서리 전략을 구상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슈퍼와 마트를 통합해 소싱 효율화*를 꾀했으며, 매장을 ‘그랑 그로서리’로 재편해 고객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 시즌 신선 기획 상품을 선보이며 롯데만의 색깔을 강조하려는 노력도 돋보입니다.
※ 슈퍼와 마트 통합이란 롯데마트와 슈퍼는 취급하는 상품은 상당히 일치했으나, 사업부가 분리되어 있어서, 일을 따로 하였는데, 이를 통합하여 인력 및 물건을 사 오는 효율을 높임
이러한 시도들이 제대로 빛을 발한다면, 롯데가 온라인 그로서리 시장에서 균열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실현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다만 이를 현실로 만들려면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겁니다. 실행력과 계획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이번 시도 역시 제한적인 효과에 머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4. 십일절과 쓱데이는 대폭 축소될 겁니다
매년 11월은 '쇼핑 축제의 달'이라 불리며, 이커머스 업계의 최대 매출을 기록하던 시기였습니다. 시작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중국의 광군절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국내에 정착시킨 주역은 바로 11번가와 G마켓이었죠. 이들은 각각 십일절과 빅스마일데이를 통해 고객들을 사로잡으며, 쇼핑 문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쇼핑 축제는 이어졌습니다. 11번가는 그랜드 십일절로 고객을 끌어모았고, 신세계 그룹에 인수된 이후 빅스마일데이는 쓱데이라는 더 큰 행사로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이 행사의 화제성과 거래액 증가 효과는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행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11번가와 G마켓은 업계 1, 2위를 다투던 플랫폼이었지만, 지금은 쿠팡과 네이버에 한참 뒤처지는 3위 이하 그룹으로 묶이며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죠.
더군다나, 올해부터는 11월 대규모 행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진행하지 않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롯데가 대표적인데요. 작년에는 온오프라인을 통합해 진행했던 레드페스티벌을 올해는 대폭 축소한 땡큐절로 대체했습니다. 이는 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과거처럼 외형 거래액 규모를 확대하기보다는 수익성을 더 중시하고, 특가 중심의 단기 프로모션보다는 상시 할인 전략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십일절과 쓱데이 같은 대규모 쇼핑 이벤트는 점점 축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장 환경이 변화하고 소비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한 달간의 이벤트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축제 한 방'이 아닌, 지속 가능한 할인과 관계 구축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2025년에도 쿠팡의 질주는 계속될 겁니다. 많은 도전이 예상되지만, 쿠팡이 그동안 쌓아온 '경제의 해자'*는 이미 너무 깊고 단단합니다. 여기에 더해,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해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또 한 번 긴 겨울이 찾아올 것으로 보이는데요.
※ 경제의 해자란 워런 버핏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진입장벽이나 경쟁 우위를 의미
그러나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이, 내년을 충실히 준비하고 버틴 기업들에게는 반등의 기회가 분명 찾아올 것입니다. 어떤 기업도 시장을 완전히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 전체의 생태계를 위해서도 균형은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결국 이커머스 시장은 2~3개의 주요 업체가 과점하는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은 그 생존과 재편의 과정을 거치는, 마지막 시험대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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