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건설업계와 금융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PF란 부동산 사업에서 발생할 미래 수익을 담보로 돈을 빌려 부동산을 개발하는 금융기법을 가리키는데요. 금리가 높아지고 건설 경기가 침체하면서 부동산 PF 연체율이 높아지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업과 보증을 서준 기업의 부실화 우려가 커지죠.
오늘은 건설과 금융업계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부동산 PF를 다룹니다. 사실 이번 위기에서 문제가 되는 건 부동산 PF뿐 아니라, 부동산 PF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증권도 있는데요. 이 둘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또 어떻게 위기를 유발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부동산 PF가 뭐야?
1)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PF)이란?
말 그대로 어떤 사업의 계획이나 수익성을 토대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합니다. 보통의 금융(Financing)은 개인이나 기업의 신용 혹은 담보에 기초해 이뤄집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기업의 신용을 토대로 채권을 발행하는 게 대표적이죠. 하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은 별다른 담보 없이, 어떤 사업으로부터 나올 미래 수익을 담보로 대출이 이뤄집니다. 건물이나 주택 같은 부동산을 개발하거나 발전소, 터널,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주로 PF를 활용합니다. 지금 당장은 담보가 없더라도, 미래에 사업이 완료되면 분양이나 사용료 수익이 발생하니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거죠. 담보가 불확실해 위험성이 높은 대출로 꼽히며, 이자도 높은 편입니다.
2) 부동산 PF의 구조
요즘 문제가 되는 부동산 PF도 이런 PF의 일종입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약 130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조가 복잡하긴 하지만, 큰 골자는 사업의 주체인 시행사가 시공사인 건설사의 신용을 빌려 금융기관에서 돈을 조달한 후 청약 등으로 발생한 수익을 통해 원리금을 상환하는 것입니다.
3) 시행사와 시공사
부동산 개발 사업 주체는 크게 시행사와 시공사로 나뉩니다. 시행사는 토지 매입, 공사 계약, 자금 조달 등을 수행하며 개발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시공사는 시행사와 계약을 맺고 건물을 올리죠. 다만, 통상 시행사는 임시적으로 만들어지는 특수목적법인(SPC)이라 돈을 빌리기엔 신용이 부족한 편인데요. 따라서 신용등급이 높은 시공사(건설사)가 시행사의 신용을 보강해 줍니다.
4) 브릿지론과 본 PF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시행사는 토지 매매 계약부터 체결합니다. 아직 사업이 본격화하기 전이라 PF 대출을 받기 힘든데요. 초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PF 이전에 브릿지론이라는 고금리 초기 자금 대출을 활용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토지 구입 대금의 70~90%를 브릿지론으로 조달합니다. 이후 금융사와 본 PF 대출 계약이 체결되면 대출금을 활용해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구조입니다.
5) PF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
금융기관은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보유한 자금을 활용해 대출을 내어줍니다. 이렇게 돈을 빌려주는 기관을 대주 혹은 대주단이라고 하는데요. 통상 위험성이 높은 대출이기에 증권사나 저축은행, 상호금융, 캐피탈 등 제2금융권의 비중이 높습니다. 대주단 입장에선 프로젝트를 통해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대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데요. 따라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두 가지 요소가 바로 책임준공과 분양성입니다.
6) 책임준공
대주단이 원리금을 제대로 돌려받으려면 일단 건물이 제대로 올라가서 담보물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주단은 공사를 맡은 시공사에 책임준공을 약속받습니다. 책임준공이란 시공사가 건물을 계획대로 올릴 건설역량이 있다는 것(시공능력), 그리고 준공에 실패할 경우 대출금을 갚아줄 돈이 있다는 것(상환책임능력)을 증명하고 준공과 대출 상환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상환책임능력의 경우 시공사가 발행하는 회사채 등급으로 평가하며,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는 시공사는 신용평가사가 매기는 신용등급으로 평가하죠. 이번에 위기에 빠진 태영건설도 이 책임준공 확약 금액이 3조 5천억 원에 달합니다.
7) 분양성
건물이 기한 내에 올라갔더라도 분양이 되지 않는다면 대주단은 원리금을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대출 전 프로젝트의 분양성이 충분한지를 확인하는데요. 먼저 대주단은 시행사에 청약을 미리 실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청약률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보고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거죠. 또, 대주단은 할인분양트리거를 걸어두는데요. 분양을 시작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도 분양률이 목표에 못 미치면 강제로 정해진 할인율을 적용해 분양가를 깎는 것이죠. 이 두 가지 장치를 활용해 대주단은 프로젝트에서 충분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2. 부동산 PF 유동화란?
이번 태영건설 부도 위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부동산 PF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동산 PF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ABCP도 건설기업의 부실 요인으로 떠올랐는데요. 대출채권을 유동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게 왜 위기의 원인이 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산유동화란?
시행사에 돈을 빌려준 대주단은 만기가 돌아오는 수 년간 차용증(대출채권)을 들고 있어야 합니다. 건물이 예정대로 준공되면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건데요. 하지만 수십, 수백억 원짜리 채권을 몇 년간 들고 있자니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이 대출채권을 잘게 쪼개서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하고 현금을 확보하는데, 이를 자산(대출채권) 유동화라고 하며, 쪼개진 채권을 유동화증권(Asset-Backed Securities, ABS)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주단은 자산유동화를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데요. 하지만 신용이 부족한 SPC로는 증권 발행이 어렵기에 시공사와 증권사의 신용보강을 거치게 됩니다. ABS를 사는 투자자 입장에선 '만약 PF 대출채권이 부도날 경우 증권사나 시공사가 ABS를 대신 사준다'라는 약속을 받는 것이죠.
2) 요샌 ABS대신 ABCP?
다만, 유동화증권은 발행 요건이 까다로운 편인데요. 그래서 요샌 발행이 쉽고 만기가 3개월 정도로 짧은 단기채권인 자산유동화기업어음(Asset-Backed Commercial Paper, ABCP) 혹은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sset-Backed Short-term Bond, ABSTB)가 많이 발행됩니다. 그런데 만기가 짧기 때문에 약 2~3년이 걸리는 준공 기간 차환발행(roll-over)이 필수적인데요. 쉽게 말해 1회차 ABCP의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서 2회차 ABCP를 발행해 1회차 ABCP 투자자의 돈을 갚아 줘야 하는 것입니다. '단기 자금 돌려막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만약 준공과 분양에 성공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중간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거나 준공에 실패할 경우 다음 회차 ABCP를 사줄 사람이 사라집니다. 이러면 건설사와 증권사가 ABCP를 되사줘야 하고, 자금을 구하지 못한 곳은 도산 위기를 맞는데요.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와 지금의 태영건설 사태 모두 이런 상황입니다.
3) 금융회사가 대출을 해주지 않는 PF도 있다?
원래 부동산 PF 유동화는 금융회사가 대출을 해준 후, 이 대출채권을 유동화 회사가 쪼개 파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예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유동화를 전제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는데요. 시행사가 유동화 회사와 곧장 대출 약정을 한 후, 유동화 회사가 ABCP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팔고 그 대금으로 바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때도 유동화 회사는 신용도가 부족하기에 시공사와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합니다.
3. 부동산 PF, 어떻게 위기가 됐을까
1) 버블이 터지면서
부동산 PF 위기의 발단은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투자가 활발해졌는데요. 당시만 해도 금리가 낮은 편이었기에, 증권사와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이른바 제2금융권은 수익률이 높은 부동산 PF 대출로 몰려들었습니다. 위험성이 높은 편이었지만 부동산 가격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돈을 떼일 일은 없다는 판단에서였죠. 하지만 분위기는 한순간에 반전됐습니다. 금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오르고,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부동산 경기가 냉랭해졌죠.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의심한 투자자들은 더 이상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에 투자하지 않았고, 금융사도 신규 PF 대출을 중단했습니다.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악화하며 중간에 문을 닫거나 준공에 실패한 사업장이 늘었습니다.
2) 분산된 위험, 퍼지는 위기
하나둘 문을 닫는 사업장이 생기면서 PF 대출과 그 유동화 증권에 보증을 섰던 건설사와 금융사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큰 보증 의무를 진 건설사들의 피해가 컸는데요. 국내 시공 능력 16위인 태영건설은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워크아웃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태영건설의 부동산 PF 보증 규모는 9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죠. 문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건데요. 롯데건설과 동부건설의 유동성 위기설이 제기되는 등 건설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고, PF에 돈을 대거나 보증을 선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도 부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건설업계는 물론, 금융업계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3) 왜 우리나라만 유독 문제일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부동산 PF 위기가 심각해지는 것일까요?
한국금융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1) 시행사의 자금력이 부족해 PF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2) 분양 계약금을 공사비로 활용해 대주단이 부동산에 대한 담보권을 온전하게 확보하기 어려운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미국의 경우 시행사가 토지 담보대출을 받고 투자자를 추가로 모집해 이를 상환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브릿지론으로 돈을 빌려 토지를 매입한 후, 본 PF로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돌려막기' 구조라 PF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또, 미국은 분양 계약금을 별도 신탁에 보관하고 공사비를 PF 대출로 조달하기에 대주단이 담보권을 확보하기 용이합니다. 우리나라는 선분양을 통해 받은 분양 계약금을 공사비로 활용하는데요. 이때 수분양자까지 토지나 건물의 담보권을 가지게 되면서 대주단이 담보권을 온전히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어쩔 수 없이 건설사에 책임준공확약, 조건부 채무인수 등을 추가로 요구하게 되고 건설사에 신용부담이 집중됩니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경우 사모펀드, 개인투자조합, 연기금, 리츠(REITs) 등의 부동산 투자자들과 자본력이 충분한 시행사가 투자 위험을 골고루 나누어 부담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시공사의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작은 문제만 발생해도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PF와 관련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금융은 점점 고도화됐지만, 결국 기초자산인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자 그 충격을 못 이기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부동산 PF 문제가 어디까지 확산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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