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유가가 꾸준히 상승하고,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지면서 고유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강달러로 치솟는 환율은 가계와 기업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1. 환율, 고공행진 중
1) 1,400원 넘긴 환율
지난 16일 달러/원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했습니다. 환율이 1,400원이 넘어간 건 1997년 IMF 경제 위기, 2008년 금융 위기,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급작스러운 환율 상승에 금융 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서면서 17일엔 1,394원대로 소폭 하락했습니다.
구두개입이란 정부는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국내 경제 상황에 악영향이 우려되면 직간접적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합니다. 실제 행동에 앞서 말로 시장에 경고하는 구두개입과 실제로 외환을 매매해 환율 변동을 일으키는 직접개입으로 나뉩니다.
2) 달러 강세
사실 고환율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대비 환율이 급등하는 추세입니다. 달러/엔 환율도 154.49엔까지 오르며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달러 인덱스도 106.2선을 돌파하며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달러 인덱스란 전 세계 주요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수입니다. 달러인덱스에는 경제 규모가 크고 통화 가치가 안정적인 세계 주요 6개국의 통화(유럽의 유로, 일본의 엔, 영국의 파운드, 캐나다의 캐나다 달러, 스웨덴의 크로나, 스위스의 프랑)가 포함되며, 유로화의 비중이 가장 큽니다. 1973년 3월을 기준점 100으로 두고 달러의 가치 변동을 파악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달러 인덱스가 120이라면, 1973년 3월 대비 달러의 가치가 20% 상승했다는 뜻입니다.
3) 외국인 순매도
환율이 급등하면서 국내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도 커집니다. 지난 16일과 17일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각각 2,200억 원, 1,700억 원가량을 순매도했습니다.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투자하는 외국인으로선, 환율이 오르면 수익을 다시 달러로 바꿔 갈 때 손해를 보기 때문에 국내 주식 투자를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2. 환율 급등한 이유는?
1) 중동 사태
환율이 이렇게나 오른 가장 큰 원인은 중동 지역 분쟁입니다. 지난 13일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습하며 이스라엘의 자국 영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을 감행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또다시 ‘고통스러운 보복’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중동 불안이 커지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 수요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2) 금리 인하는 언제?
계속 지연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도 환율 상승 요인으로 꼽힙니다. 미국 3월 소비자물가와 소매 판매가 예상 보다 더 많이 오르는 등 미국 경제가 탄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16일(현지 시각)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고 확신하기까지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언급하며 금리 인하 기대를 크게 낮췄습니다.
3) 원화 약세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최근 중동 분쟁으로 인해 유가가 급등했는데요.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유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유가 때문에 경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원화 가치는 주요 31개국 중 가장 많이 하락했습니다. 특히 국내 주식 시장에서 배당금이 지급되는 4월 이후엔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로 받은 배당금을 달러로 바꾸면서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길 수 있습니다.
3.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
1) 높은 환율은 기업에 부담
225조 원가량의 달러 빚을 진 한국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외화로 조달한 자금이 많으면 환율이 상승할 때 상환해야 하는 금액도 커집니다. 특히 항공기를 들여오기 위해 막대한 외화를 조달한 항공사와 원자재를 사와야 하는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등하고 있는 우리나라 제조업 경기에 큰 악재입니다.
2) 수입 기업도 골머리
원자재나 제품을 들여와야 하는 수입 기업은 환율 상승에 따른 피해가 더 큽니다.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와 환율이 각각 10% 상승할 때 국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원가가 2.82% 상승한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일수록 환율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요. 중소기업은 환 위험을 관리할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신뢰도가 낮아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성을 상쇄할 수 있는 환 헤지 상품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3) 수출 기업은?
수출 기업도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이미 물류비를 비롯한 부대 비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인데요. 비용은 올랐지만 1년 단위로 체결되는 수출 계약 때문에 당장 단가를 올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판매 단위가 훨씬 큰 대기업에는 호재입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작년에 비해 올해 1분기 판매량이 감소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이익률이 높아져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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