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널뛰기를 하고 있어요.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는데, 하루 만에 고꾸라지고 말았죠. 찬물을 끼얹은 사람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에요. 미국 대선 후보들이 차례로 “반도체 무역 장벽을 높이겠다”라고 발언했거든요. 대선 후보들의 말 한마디에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에 칼바람이 불고 말았어요. 세계 각국의 언론은 이 날을 두고 ‘반도체 최악의 날’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했죠.
1. 시작은 트럼프의 한마디였다?
지난 17일(현지시간), 거대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동시에 크게 떨어졌어요. 이날 하루 동안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전체 주식 가치의 합)이 약 5000억달러(약 694조 원) 증발했죠. 미국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를 반영하는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81% 하락했어요. 2020년 3월 이후 미국 증시에 닥친 ‘최악의 하루’라는 평가가 나왔어요.
반도체주 주가가 휘청인 건, 전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 매체인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 때문이에요.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고 비판했어요. 또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대가로 대만은 미국에 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죠.
사람들은 이 발언을 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적인 파운드리 업체인 TSMC 등에 지급한 반도체 보조금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해석했어요.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해 기업들이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지으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향후 10년간 중국 등 다른 나라의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수 없게 하는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펼쳐 왔어요. 이 법에 따라 TSMC도 66억 달러(약 9조 원)의 보조금을 받아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고 있죠.
TSMC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회사예요. 최근 몇 년 사이에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죠. 트럼프는 ‘잘 나가는 외국 회사에 미국이 굳이 보조금을 줘야 하냐?’는 입장인 거예요.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해외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높은 관세, 무역 제재 등 ‘미국 우선주의’ 공약의 연장선이죠.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게까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날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봤자, 결국에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어요.
2. 줄줄이 휘청인 반도체주
이 발언 이후 주가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건 아무래도 TSMC였어요. 하루 만에 주가가 8%가량 떨어졌죠. (이후에 깜짝 실적이 발표되며 주가가 조금 오르긴 했어요) 엔비디아, 삼성전자 등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같이 떨어졌어요.
미국이 대만을 견제하는 발언을 했는데, 왜 다른 나라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졌을까요? 이들 반도체 기업들이 서로 깊게 얽힌 협력 관계이기 때문이에요. 미국 반도체 회사들은 설계에 능하고, 한국과 대만 회사들은 설계도를 보고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는 걸 잘하죠. 일본에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나 부품, 장비를 잘 만드는 회사들이 많고요. 서로 잘 협력해야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한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기업들도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거예요.
3. 찬물 한 바가지 더 부은 바이든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의 발언도 반도체 주가에 찬물을 끼얹었어요. 트럼프의 발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거든요. 반도체와 과학법 등 각종 제재에도 중국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자, 다른 국가들에 ‘계속 중국과 교류한다면, 미국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경고장을 날린 셈이에요.
더 강력한 조치의 대표적인 예가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FDPR)’이에요. FDPR은 미국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원천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면, 수출을 할 때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에요.
미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는 나라이고, 그만큼 첨단 기술의 상당 부분을 미국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어요. 최초의 반도체도 미국에서 개발됐고요. 미국의 기술과 장비 없이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미국 정부는 FDPR을 이용해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를 구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원래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영국, 일본, 한국, 호주, 캐나다 등의 국가들은 FDPR을 면제받는 국가였어요. 그런데 이번에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와 일본에 FDPR을 적용할 수도 있다고 밝힌 거예요. 네덜란드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의 반도체 회사들은 중국에 대한 판매 비중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에요.
이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들 업체의 주가도 급락했어요. ASML은 하루 만에 11% 하락했는데,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었어요. 이날 하루 동안 날아간 기업 가치가 무려 427억 유로(약 64조 원)에 달한다고 해요.
4. 반도체 동맹, 흔들리는 거야?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한국, 일본과 반도체 동맹인 '칩4(Chip4)'를 결성했어요. 그런데 트럼프가 집권할 시, 칩 4 동맹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와요. 우리 반도체 기업에는 당연히 좋지 않은 소식이에요.
삼성전자는 440억달러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 등을 짓고 보조금 64억 달러를 받기로 했어요. SK하이닉스도 미국 인디애나주에 39억 달러 규모의 최첨단 패키징 라인을 건설할 계획이고요.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되면, 보조금을 지급받는 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요.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불투명해지면서, 이들 기업의 주가도 내려갔어요. 18일 삼성전자는 2.88%, SK하이닉스는 1.41% 급락했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 시가총액(전체 주식 가치의 합) 1, 2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요. 실제로 이날 국내 주요 주가지수인 코스피는 1.02% 떨어졌어요. 우리 주식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도체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죠.
전문가들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분간 세계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분명한 건 앞으로 세계 반도체 전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에요. 과연 우리 기업들은 이 위기를 잘 버텨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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