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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by 트렌디한 경제 상식 202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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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한국 역사에 획을 긋는 정치적 돌발 사태가 벌어지면서, 정말 고민이 많았던 한 주였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쌓아 올린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추락, 여실히 드러난 민주주의와 대리인의 문제점, 한국 경제의 회복 능력 고민. 생각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번 사태가 경제 금융 테크에 걸쳐 매우 큰 충격파를 던졌기 때문에, ‘민주주의 시스템’적 측면에서 주권자라면 한 번 쯤 고민해 봐야 할 주제로, 오늘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1. 1628년 권리청원, "전시가 아닌 평시엔 계엄령 선포는 안돼!"

시간을 잠시 396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여기는 잉글랜드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입니다.) 1628년 찰스1세가 잉글랜드 의회로부터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이라는 문서를 건네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국왕은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과세할 수 없고, 전시가 아니고서는 계엄령인 전쟁 법을 발동해 군법으로 민간인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통지문이었습니다.

 

1) 끝나버린 풍요의 시대

전쟁 예산이 절실한 찰스1세는 승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영국 왕실은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라는 걸출한 절대 왕정 시기를 막 지난 직후였습니다. 선대왕들은 의회에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왕실 토지를 매각해 전쟁 예산을 충당했습니다. 1215년 대헌장 때 마련된 ‘의회 동의 없이 과세하지 못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때문에 국왕은 존엄했고 국력은 강대했습니다. 하지만 찰스 1세 시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스페인(1625~1630년), 프랑스(1627~1629년), 스코틀랜드(1639~1640년)와 치른 잇따른 전쟁으로 왕실 재정은 거의 파산 직전이었습니다. 국왕으로서는 의회를 열어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찰스1세는 관습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권리는 하늘에서 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의 옹호자였습니다. 때문에 권리 청원 1년 뒤 의회를 해산해 버렸고, 11년간 단 한 번도 의회를 소집하지 않습니다.

 

2) 파산 직전에 놓인 찰스1세

국왕은 전쟁 법을 발동해 군사 재판을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경제권은 이미 신흥 귀족인 젠트리에게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색이 짙은 종파간 갈등이었습니다. 국교회인 성공회는 국왕을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 섬기는 가톨릭에서 분리된 종파입니다.(중도 보수) 반면 젠트리들이 지지하는 청교도(Puritans)는 엄격한 도덕과 성경 중심의 신앙을 옹호했습니다.(진보 개혁)

 

이뿐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 상호 평등을 강조하는 장로교(개혁주의), 군인과 중소 농민의 지지를 받으며 교권과 국권의 분리를 주장하는 독립파(급진주의),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퀘이커(평등주의), 일부 귀족과 지주의 지지를 받는 가톨릭(보수주의)까지, 저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국가의 미래는 서서히 ‘운명의 깔때기’ 안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3) “우리를 적그리스도의 손아귀로...”

사태는 스코틀랜드에서 터졌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종파가 엇갈려 있었습니다. 청교도는 로우랜드(평지)를, 가톨릭은 하이랜드(산악지대)를 양분했습니다. 찰스 1세는 욕심이 많았습니다. (찰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나라의 국왕입니다. 동군연합이라고 합니다.) “스코틀랜드 종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잉글랜드 성공회 기도서를 토대로 한 통합 기도서를 만들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청교도들이 들고 일어섰습니다. “국왕이 스코틀랜드를 가톨릭 적그리스도의 손아귀로 넘기려 하고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급기야 내란이 일어났습니다. 종교색이 강한 이른바 비숍전쟁입니다. 찰스 1세는 내란을 막기 위한 군대 편성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1640년 4월13일. 11년 만에 의회를 다시 소집했습니다.

 

4) 2시간 동안 성토를 당한 왕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의사당은 국왕에 대한 성토장이 됐습니다. 찰스1세는 예산 편성을 호소했지만, 야당 지도자인 존 핌(John Pym) 의원은 “국왕이 잉글랜드를 교황에게 넘기려고 한다”며 2시간 넘게 왕의 실정을 비판했습니다. 약이 바짝 오른 찰스 1세는 의회를 다시 해산하고, 모든 재정을 끌어들여 전쟁 준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이를 지켜만 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청교도 병사들을 상대로 “장교들은 왕을 수호하는 교황주의자”라고 선동했습니다. 병사들은 불안에 떨었고, 군대에선 하극상이 난무했습니다. 그 사이 스코틀랜드 군은 잉글랜드 북부 2개 주를 점령하면서 남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찰스 1세는 외통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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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641년 대간주, 군대를 끌고 의사당으로 돌진한 왕 "아내를 위해"

전쟁에서도 패했고, 지지기반은 약했으며, 재정마저 거덜 났습니다. 왕은 어쩔 수 없이 그해 11월 다시 의회를 소집했습니다. 밥 먹듯이 의회를 해산한 왕을 본 의회는 격분했습니다. 의원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여 찰스 1세의 실정을 힐난했고, 무려 206개 항목에 걸쳐 왕의 잘못을 나열한 ‘대간주(Grand Remonstrance)’를 들이 밀었습니다. (諫奏 간주란 옳지 못할 일을 할때 이를 간하는 것을 말합니다)

 

1) 오른팔마저 처형당한 찰스1세

왕은 3년마다 무조건 1번은 의회를 소집한다고 약속했고, 국왕의 오른팔 스트래퍼드 백작인 토머스 웬트워스 경(아일랜드 총독)은 탄핵 후 처형당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전쟁에 실패했고 전횡을 저질렀다는 것이 처형 이유였습니다. 찰스 1세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하지만 여론의 화살은,

 

찰스 1세의 부인이자 프랑스 앙리 4세의 막내딸인,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1641년 아일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의회에서는 가톨릭인 왕비가 국왕을 꼬드겨 잉글랜드 청교도를 몰아낼 것이라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왕비마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찰스 1세는 격분했습니다.

 

2) 왕비를 위해 의사당으로 돌진

국왕은 주동자인 의원 6명을 직접 척결하기로 결심합니다. 친위군 400명을 이끌고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으로 돌진합니다. 왕은 의장에게 이들을 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의원들은 소식을 접하고 의사당을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의사당에서 허탈하게 나온 찰스 1세...

 

그는 민중들이 ‘킹 핌’을 외쳐대는 것을 바라만 봤습니다. 자신을 비난한 야당 지도자인 존 핌(John Pym)을 새로운 왕으로 떠받든 것입니다. 찰스 1세는 1642년 1월 10일 런던을 빠져나와 의회와 일전을 결심합니다. 왕비 마리아와 자녀들을 네덜란드로 도피시킨 직후였습니다. 이후 잉글랜드는 극심한 내전에 시달립니다.

 

3) 내전에 시달린 영국

의회파와 왕당파가 내전을 벌였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전쟁을 했습니다. 결국 찰스1세는 항복하고 맙니다.(자세한 내용) 시민들은 처형을 외쳤지만, 의회는 처형만큼은 꺼렸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올리버 크롬웰로 넘어가면서, 찰스1세는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목이 잘리기 마지막 순간,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이 모든 법률을 좌지우지하는 칼의 힘으로 독단적 정치를 했다면, 여기 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짐이 분명히 밝히건대, 짐은 국민의 순교자다!!!”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은 국민을 위해 벌인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일찍이 꽃을 피운 것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일찍 겪었기 때문입니다. 1689년 권리장전, 1920년 긴급권한법, 1998년 인권법을 거치면서 계엄령인 전쟁법을 평상시에는 발동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또 비상 상황에서도, 민간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틀까지 마련했습니다.

 

우리말 계엄에서 ‘계(戒)’는 경계를, ‘엄(嚴)’은 엄중하게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단어가 갖는 함의는 “경계를 엄중히 한다”입니다. 반면 이를 영어로 옮기면 Martial Law이고, Martial은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서 나온 단어이므로, ‘전쟁법’ 또는 ‘군법’이 됩니다. 즉 전쟁을 앞두고 발동되는 법입니다.

 

때문에 영국에서는 정부가 의회의 승인을 받았을 때만 계엄령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폭동, 반란, 법집행 불가 상태에서만 대통령이 군을 민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396년 전 영국 정치가 오늘날 한국 정치에 오버랩되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3. 1762년 일반의지, “국민들은 민주주의라는 자유를 강요당해야 한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근대 민주주의 이론의 아버지입니다. 그가 민주주의 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까닭은, 민주주의가 왜 선한지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선한 의지, 즉 일반의지(General Will)가 있다고 1762년 사회계약론을 통해 주장했는데요. 그래서 민주주의는 절대선이 됩니다.

 

1)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

루소는 국민이 모은 일반의지는 파괴 불가능하고 양도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홉스(1588~1679년)나 존 로크(1632~1704년)가 주권은 군주에게 위임이 될 수 있는 양도 가능한 성격을 가졌다고 한 것에서, 한 걸음 전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모순적이었습니다.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국민, 그들은 왜 새로운 공화국 정부에 자발적으로 복종해야 하는지... 근거가 빈약했습니다.

 

그래서 루소는 일반의지를 자유를 위해 강제된 의지로 선언합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라는) 자유를 강요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에 일반의지를 부여함으로써, (폭정이라는) 종속적인 상태에서 구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는 딱 여기까지 이론을 정립하고 사망합니다. 이후 이론적 계승자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로베스 피에르(1758~1794)와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1748~1836)입니다. 둘은 루소의 사상을 계승했지만, 이론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2) 피에르 VS 시에예스

로베스 피에르는 일반의지를 제대로 구현하고자 공화국 내에서는 당파마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공화당을 전복시키려는 왕당이 득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공화국의 적들은 제거 당하거나, 아니면 공화국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혁명 정부는 전제정에 항거하는 자유의 독재입니다." 절대 선인 공화국에 반대하는 적들은 인간이 아닌 악마로 지목됐습니다.

 

그는 수많은 정적들을 기요틴에서 처형했고, 결국 같은 운명을 겪습니다. 반면 시에예스는 의회를 통해 민주주의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대의제를 고안하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회 시스템은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대리인의 문제입니다.

 

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민주주의 400년사 (feat. 주권자가 풀어야 할 숙제)

 

4. 2024년 혁신적 선거, 그 어떠한 후보도 100% 주권자를 대표할 수 없다

근대적 투표제를 탐구하고 정립한 인물은 니콜라 드 콩도르세입니다. 그는 수학을 활용해 일반의지를 최대한 반영하고, 사표를 방지하는 방법을 고민했는데요.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학자들이 선호(preference)하는 후보에 대해 우열 순위(ranking)를 정하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현실 세계의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투표제가 잘못 됐으면 그 민주주의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1) 최다득표제 VS 선택투표제

투표제는 무수히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선택한 후보를 채택하는 최다득표제(First Past the Post)와 선호하는 후보들을 리스트업 하고 오직 한 명의 후보가 남을 때까지 비선호 후보를 탈락시키는 선택투표제(Alternative Vote)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표제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매우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혁신적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기호1번 상덕, 기호2번 덕주, 기호3번 호섭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편의를 위해 미국 선거인단제처럼, 승자독식 최다득표 방식이라고 해보겠습니다.)

 

① A지역 인구(45%): 상덕 > 덕주 > 호섭

② B지역 인구(35%): 호섭 > 덕주 > 상덕

③ C지역 인구(20%): 덕주 > 호섭 > 상덕

 

2) 대통령은 상덕

만약 혁신적 나라가 최다득표제를 택하고 있다면, 상덕이 45%를 득표해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하지만 선택투표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 지지를 받은 기호2번 덕주 후보를 먼저 탈락시킵니다. 그리고 결선투표를 합니다.

 

① A지역 인구(45%): 상덕 > 호섭

② B지역 인구(35%): 호섭 > 상덕

③ C지역 인구(20%): 호섭 > 상덕

 

3) 대통령은 호섭

2차 투표 계산을 해보니 상덕 45% < 호섭 55%로 기호2번 호섭이 당선됩니다. 하지만 큰 표를 모았는데 1차부터 탈락한 상덕은 이를 보고 격분합니다. 그래서 바로 덕주를 지지하고, 후보 사퇴를 합니다. 그러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① A지역 인구(45%): 덕주 > 호섭

② B지역 인구(35%): 호섭 > 덕주

③ C지역 인구(20%): 덕주 > 호섭

 

4) 대통령은 덕주

덕주가 무려 65% 지지를 받고 당선이 됩니다. 맞습니다. 어떤 제도를 따르는지, 어떤 후보자끼리 합종연횡을 하는지에 따라 민주주의는 훼손이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선호가 순환적일 때입니다. 해법은? 없습니다.

 

① A지역 인구(33.3%): 상덕 > 덕주 > 호섭

② B지역 인구(33.3%): 호섭 > 덕주 > 상덕

③ C지역 인구(33.3%): 덕주 > 호섭 > 상덕

 

5) 아직도 숙제인 투표제도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앞두고 '최선을 선출하는 것이 아닌 차악을 뽑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간접 민주주의는 결국 개인이 지닌 선호를 어떻게 사회적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 방법이 오늘날에도 마땅치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도전을 해 왔습니다. 미국 수학자이자 컴퓨터학자인 폰 노이만은 후보에 대한 선호가 완벽하지 않을 때 벌어지는 사회적 선택이론을 연구했고, 노벨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는 개인들의 선호를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결코 사회적 선호가 최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6) 왜 우리는 없나, 국민소환제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들은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법안을 내는 국민발의제, 선출직을 끌어내리는 국민소환제, 국민이 법안에 찬성 반대를 던지는 국민투표제가 대표적입니다. 독일 일부 지방정부는 국민이 예산 수립에 참여하는 참여 예산제까지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국민소환제 대상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빠져있습니다. 도입하면 사회가 혼란해 진다거나 국정 공백이 생긴다 하면서 말입니다. 국민소환제 법안은 매번 발의는 됐지만, 주권자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사라지면 없던 일로 했습니다. 하지만 "주권은 결코 양도될 수 없습니다."

 

비상식적인 계엄령, 탄핵 움직임, 그리고 역대 대통령의 역사를 떠올리면 많은 생각이 스칩니다. 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고작 76년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13명인데요. 중복으로 따져 볼 때 암살 당한 대통령은 1명, 자살한 대통령은 1명, 처벌받은 대통령은 4명, 가족이 처벌받은 대통령은 6명, 중도 하야한 대통령은 4명입니다.

 

만약 우리가 경제와 사회 발전에 쏟아부은 에너지의 단 1% 만이라도 정치 발전에 투자했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치라는 단어는 본래 공동체의 발전과 공존을 위한 약속이자 의무를 뜻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선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 됐습니다. 과연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벌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지배받는 것(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 inferiors.)"이라는 플라톤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정치인이 매번 외치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식품이 아닌, 우리 각자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주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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