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평온했던 미국과 일본 사이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두고 시각차가 드러난 것입니다. 거센 반대에 인수 성공 가능성이 쪼그라드는 분위기입니다.
1. 일본제철 vs. 미국철강노조
1) US스틸, 일본제철 손으로?
작년 12월, 강철 생산량 세계 4위 기업 일본제철이 미국의 철강 업체 US스틸을 149억 달러(약 20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901년 설립된 US스틸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기업입니다.
2) 노동계 “절대 안 돼”
인수 발표 직후 미국 노동계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85만 명 조합원으로 구성된 전미철강노조(USW)를 중심으로, 러스트 벨트 지역 전체가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USW는 일본제철이 US스틸 공장을 저가품 생산 시설로 사용하게 되면 노동자 처우 악화와 대규모 해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러스트 벨트는 말 그대로 '녹슨 지대(rust belt)'를 의미합니다. 미국 제조업 경기가 전성기일 때 호황이었지만 현재는 비교적 불황을 맞은 지역입니다. 러스트 벨트 지역 노동자들은 자유무역의 직격탄을 맞았으므로,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한 트럼프를 지지하여,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했습니다.
3) 지지 않는 일본제철
그럼에도 일본제철은 강력한 인수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지난 15일, 일본제철은 15억 달러(약 2조 원)의 추가 투자를 약속하고, 2026년 9월까지 해고나 공장 폐쇄가 없을 거라며 설명했습니다.
4) 일본제철은 왜 US스틸을?
일본제철이 US스틸을 탐내는 이유는 미국 내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바이(Buy) 아메리카’ 정책으로 미국 공공사업에는 미국산 철강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등 미국 내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데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일본제철은 US스틸을 인수해 미국 본토에서 철강을 생산하려 합니다.
2.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대했다고?
1) 바이든 “나도 반대야”
우려가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인수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바이든은 US스틸이 오랫동안 상징적인 미국 철강회사였고, 미국 철강회사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 철강 노동자 의식한 행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선 배경엔 올해 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전통 기업이 외국 기업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또 다른 대선 후보인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신이 당선되면 이번 인수를 즉각 저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3) 펜실베이니아, 놓칠 수 없어
인수 반대엔 펜실베이니아의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도 포함돼 있습니다. US스틸 본사와 USW 본사가 위치한 펜실베이니아는 미국의 대표적인 경합주이기 때문입니다. 펜실베이니아는 최근 12차례의 대선에서 8번을 민주당, 4번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2번을 제외하면 모두 펜실베이니아가 고른 후보가 최종 당선될 정도로 대선 경쟁에서 중요한 지역입니다.
3. 앞으로 어떻게 될까?
1) 이 틈을 노리는 경쟁사
일본제철이 반대에 부딪힌 틈을 타 인수 경쟁자까지 나타났습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일본제철의 경쟁사인 미국의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US스틸 인수 의사를 밝힌 겁니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는 작년에도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입찰가가 낮아 우선협상대상자에서 밀렸습니다. 이번에는 USW 회장 데이비드 맥콜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USW의 지지 의사까지 확인했습니다.
우선협상대상자는 기업 인수 등의 경쟁입찰 상황에서, 여러 응찰업체 중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1차로 추려진 업체를 말합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일정 기간 우선으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최종낙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2) 시간에 쫓기는 일본제철
일본제철의 모리 부사장은 인수 반대의 주축인 USW 지도부와 접촉하며 해법을 모색합니다. 4월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전에 USW와 어느 정도 합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3) 우리나라도 촉각 곤두세워
우리나라 기업도 이번 인수전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이번 인수로 일본제철이 글로벌 공급망을 꽉 쥐게 되면 국내 기업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한국 철강 업체의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철강을 수입하는 주요 시장인 만큼, 국내 기업의 현지화 전략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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