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ESG는 2004년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에서 처음 그 개념이 제시됐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기업의 장기적인 성과와 투자 결정에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기업의 성장성을 판단할 때 성과와 이윤만이 아닌,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는 소위 ‘착한 기업이 롱런한다’는 철학입니다.
1. 2020년 팬데믹 유동성 타고 ‘ESG 열풍’
이후 ESG는 2015년 유엔의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되면서 전 세계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의제가 됐고, 2020년 들어 팬데믹 유동성을 계기고 그야말로 ESG 열풍이 불었습니다. 2014년 18조 달러였던 전 세계 ESG 투자 자산 규모는 2020년 35조 달러로 6년 새 약 2배로 성장했는데, 이는 전체 투자 자산의 30%에 달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도 너도나도 ‘ESG 경영’이란 기치를 경쟁적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러던 ESG는 최근 들어 그 열풍이 크게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ESG를 반대하거나 이를 거세게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ESG의 현실적인 제약과 ESG를 둘러싼 정치 진영 간 소모적 논쟁에 피로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ESG가 지나치게 정치 도구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더는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SNS를 통해 “ESG는 사기”라고 힐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테슬라가 S&P500 ESG 지수에서 퇴출된 데 따른 반응이었지만요.
2. ‘에너지 먹는 하마’ AI 급부상에 고민 커진 기업, 정치 도구화로 사용되며 피로도 쌓이기
세계지식포럼에선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이란 세션을 통해 그 이유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이날 세션에 모인 글로벌 전문가들은 ESG에 대한 피로감으로 생산성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ESG 대신 책임 있는 비즈니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SG 인기가 시들해진 원인으로 이들은 AI의 급부상이 꼽혔습니다. 에끌레어 의장은 “빅테크 기업들이 넷제로(Net Zero)를 약속했는데 AI는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비하다 보니 고민에 빠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정부 정책도 기업 입장에선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그린딜’에 모든 걸 걸고 규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린딜은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2023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응해 발표한 방안으로, EU 기업에 친환경 보조금 지급을 강화하고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에끌레어 의장은 “ESG가 가치관 대립 전쟁으로 빠지고 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미국에서 ESG라는 용어 자체가 합리적 토론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에끌레어 의장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ESG가 민주당식 좌파적 정책이라며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ESG를 둘러싼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역시 ESG를 두고 정치적 분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은 “한국에서 ESG를 반대하는 측은 철강이나 자동차, 조선 등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의 종사자들이 아니었다”며 “단순히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카피캣처럼 따라 말하는 사람들이었다”라고 한숨을 푹 내쉬기도 했습니다. ESG는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절 주창됐다는 지적입니다.
3. “명확한 ESG 기준 세워야”
ESG를 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충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소한 ESG에 대한 명확한 합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제니퍼 모틀레스 스비길스키 필립모리스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는 “비재무적 정보를 통해서도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재무 정보처럼 공시가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ESG 성격상 공시제도를 만들기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보기에 예쁜 그림은 많을 수 있지만 내용이 부실한 걸 추구하는 사회로 가면 안 된다”며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에끌레어 의장도 “지속가능성 보고기준을 만드는 것만으로 세계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미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원장은 ESG 공시 기준을 만들 때 반영해야 하는 요소와 관련해 “사업적 전환이 필요하고 정부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생명 다양성에도 기여해야 한다”면서도 “일반적인 공시가 아니라 목표한 바에 있어서 명령을 따를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공시여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할 때 유독 ESG 측면에서 뒤처져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제니퍼 CSO는 “아직은 많은 한국기업이 ESG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원장은 “한국은 ESG 측면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며 “다수 선진국에서는 지속가능성 전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데 한국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탄소중립법이 최근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ESG 관련 기준을 세우지 못해 산업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CEO나 대통령이 ESG에 관심을 갖고 명확한 목표를 세워줘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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