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을 가진 기업 Arm이 퀄컴에 IP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계약해지 통보라니 뭔가 섬뜩한 말인데요. 이 두 회사의 법적분쟁은 테크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뿐 아니라 이 뒷 배경을 이해하고 보면 재미있는 사건입니다. 오늘은 퀄컴의 역사에서 시작해 Arm과의 분쟁이 가진 의미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퀄컴의 역사로 보는 모바일의 시대
퀄컴은 1933년에 태어나 UC샌디에고 대학교에서 통신(Communication) 분야의 교수로 일했던 어윈 제이콥스에 의해서 설립되었습니다. 지금도 퀄컴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은 창업자가 UC샌디에고 교수였기 때문이죠. 그가 1965년에 쓴 책 ‘통신공학원리(Principles of Communication Engineering)’는 지금도 교과서로 쓰일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는 UC샌디에고의 교수로 일하면서 정부용역을 많이 했는데요. 이를 위해 만든 링카빗이라는 회사를 매각해서 큰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가 50세를 막 넘긴 1985년. 무선통신 기술을 획기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면서 다시 창업하게 됩니다. 그 회사의 이름이 퀄컴. Quality Communication의 약자랍니다.
무선통신기술. 저희가 사용하는 무선 전화를 뜻하는데요. 당시 무선통신은 1세대 아날로그에서 2세대 디지털로 전환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주파수를 시간대로 나눠서 여러 사용자들이 나눠서 쓰는 TDMA라는 방식이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었죠. 이 기술은 유럽에서는 GSM이라고 불리기도. 당시만 해도 무선통신 기술은 유럽이 훨씬 앞서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윈 제이콥스는 무선통신 사용자들이 주고받는 내용에 각기 다른 코드를 입력해 이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이것이 바로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비유하자면 TDMA 방식에서는 '방에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배정해서 그때만 얘기하게 하는 것'이고요. CDMA는 '시간배정 없이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도록 하지만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한국어만 알아듣고, 일본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어만 알아듣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주파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쓸 수 있는 CDMA가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한 기술이었습니다.
1) 퀄컴의 구세주는 한국이었다?
문제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했던 이 기술로 실제 무선통신이 가능한지를 사용자인 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회사들이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어도 쓰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던 것이죠. 1990년대만 해도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의 기술을 믿고 쓰려는 기업이 미국에는 거의 없었고, 유럽은 TDMA가 표준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CDMA가 들어가기 어려웠죠.
그러다 퀄컴은 서쪽에서 온 귀인을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한국입니다. 국내에 뛰어난 이동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동통신 기업(통신사, 휴대전화제조사)을 육성하려는 한국정부와 협력하게 되는 것. 퀄컴은 1992년 국책연구소인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공동연구개발 협약을 맺고 함께 CDMA를 공동 개발하게 됩니다. 한국정부의 지원금과 한국기업, 통신사와 협력을 통해 1994년 전 세계 최초의 CDMA 기술로 무선통신 통화가 한국에서 이뤄집니다. 1996년부터 한국에서는 100% CDMA로 모든 이동통신 서비스가 이뤄집니다.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론칭으로 CDMA는 중국, 일본에서도 쓰이게 되고 한때 한국에서 나오는 매출이 퀄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기까지 했습니다.
퀄컴이라는 회사의 무서운 점은 특허를 아주 잘 활용한다는 점. 1985년 퀄컴을 설립한 어윈 제이콥스는 바로 해 1986년 CDMA 기술의 원리를 특허로 출원하게 되고요. 이후 주요 기술을 특허로 무장해 CDMA 기술이 탑재된 휴대폰 1대를 판매할 때마다 판매 가격의 5%를 특허료를 받게 됩니다. 2G에서 3G, LTE, 5G로 기술이 다음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퀄컴은 많은 지적재산권을 확보해 놓습니다.
2) 특허기업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물론 퀄컴이 땅 짚고 헤엄만 친 것은 아닙니다. 퀄컴은 새로운 기술을 직접 시장에 선보여야 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자신들이 직접 많은 걸 개발해야 했는데요. 합작회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1990년 대 초반부터 휴대전화, 기지국 장비, 휴대전화가 기지국과 통신을 하는데 쓰이는 모뎀(반도체) 제조에 직접 나섭니다. 나중에 휴대전화는 일본 교세라에, 기지국은 에릭슨에 매각합니다. 하지만 모뎀칩은 계속 직접 만들게 되는데요. 특허와 반도체가 가장 마진이 높은 비즈니스였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TSMC와 같은 반도체 위탁제조(팹리스) 기업이 등장해 설계만 해도 반도체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이때를 기점으로 퀄컴은 특허회사에서 점차 ‘반도체’ 회사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고, 지금은 반도체 기업이라고 보는 쪽이 더 맞게 되었습니다.
퀄컴은 자연스럽게 모뎀칩과 휴대전화 전반에 쓰이는 연산처리장치(CPU)를 결합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인텔의 CPU를 쓰다가 1998년부터 Arm의 설계를 라이선스 비용을 내고 사용하게 됩니다. 퀄컴이 본격적으로 Arm 설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2007년 아이폰의 등장을 앞두고 퀄컴은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고성능의 ‘스냅드래곤’이라는 반도체를 내놓습니다. 기존에 쓰던 휴대전화용 반도체에 ‘스냅드래곤’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후 퀄컴 스냅드래곤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에서 하이엔드 스마트폰용 대표 반도체로 자리를 잡으면서 퀄컴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에 따른 수혜를 제대로 누립니다.
퀄컴이 스마트폰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퀄컴처럼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또 있었는데요. 바로 삼성전자였습니다. 삼성은 모뎀을 직접 만들 수 있었고, AP를 설계할 능력도 있었죠. 2007년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삼성의 AP인 S5L8900가 아이폰에 쓰이기도 했죠. 삼성전자는 2011년에는 AP에 엑시노스라는 이름으로 스냅드래곤 처럼 반도체를 네이밍 합니다. 삼성전자는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직접 만든 AP와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합니다.
3) 애플도 두 손 든 퀄컴의 원천기술
퀄컴의 막강한 지적재산권과 반도체 능력은 고객들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오죽했으면 애플이 2017년 퀄컴이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불공정행위라며 제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퀄컴의 모뎀칩이 아닌 인텔의 모뎀칩을 사용하기도 했죠. 하지만 각종 특허 때문에 퀄컴의 모뎀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애플은 소송을 취하하면서 다시 퀄컴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인텔 모뎀칩 사업부를 인수해서 자체 제작에 나섰지만 이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퀄컴에 목덜미가 잡혀있는 것은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인데요. 2022년 하이엔드 제품인 갤럭시S22에 엑시노스가 탑재됐다가 발열문제가 발생하면서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엑시노스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일정 제품군에 대해서는 스냅드래곤을 쓸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퀄컴에 지불하는 많은 반도체 비용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의 큰 부담입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은 현재 삼성 파운드리가 아닌 TSMC 파운드리에서 생산하고 있기도 하죠.
퀄컴이 가진 기술력과 지적재산권의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4) Arm "어디서 밑장 빼기를?"
퀄컴은 스냅드래곤에만 매달리지 않고 꾸준히 다각화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동차와 IoT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해서 매출을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애플의 반도체를 설계한 팀이 설립한 스타트업 ‘누비아’를 인수해서 CPU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이를 오라이언(Oryon) CPU라고 합니다.
과거 퀄컴은 스냅드래곤 기반의 넷북을 만들어서 이 시장에 진출한 적이 있는데요.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스냅드래곤 X 엘리트가 탑재한 코파일럿+ PC를 내놨고, 올해는 스마트폰의 CPU도 오라이언 기반으로 바꿨습니다. 앞으로는 서버컴용 CPU까지 내놓는다는 계획인데요. 이렇게 되면 퀄컴은 모바일뿐만 아니라 PC와 서버까지 아우르는 슈퍼 반도체 팹리스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5) 문제는 누비아와 오라이언입니다.
초기에는 삼성의 AP를 사용하던 애플은 Arm의 설계 라이선스를 가져와서 RISC ISA(명령어집합)를 기반으로 칩을 완전히 자체적으로 설계합니다. 이를 설계 라이선스 계약(Architecture License Agreements)라고 합니다. 반면 퀄컴, 미디어텍, 삼성전자등은 기술 라이선스 계약(Technical License Agreements)을 맺고 있습니다. 설계의 기초적인 것은 Arm에서 하고 이것을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애플의 반도체들이 다른 x86이나 Arm 기반 반도체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라이선스 계약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나옵니다. 직접 대부분의 설계를 해야 하므로 난이도는 높지만 성능은 더 뛰어난 것입니다. 애플 출신이 나와서 만든 누비아도 Arm의 설계 라이선스를 가지고 완전히 커스텀으로 설계하는 회사였는데요. 퀄컴도 이 회사를 인수해 제로부터 칩을 다시 설계합니다. 그래서 나온 칩들이 애플을 상회하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Arm에 독립적인 자체 설계 반도체를 만들어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Arm 은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했지만 설계라이선스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라이선스 조건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Arm은 이미 누비아와 퀄컴 양쪽이 설계라이선스를 다 가지고 있으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양 측의 의견이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서 Arm이 결국 IP ‘계약해지’라는 강수를 둔 것입니다.
2. 가장 큰 고객과 싸움을 시작한 Arm
Arm의 최대고객은 다름 아닌 퀄컴입니다.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되어 최대고객인 퀄컴 반도체 판매가 중지되면 타격은 Arm이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rm이 강경하게 나온 것은 퀄컴을 시작으로 다른 기업 고객들이 기술 라이선스에서 이탈해 설계 라이선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그런데 퀄컴의 스텝이 꼬이면 애플에 대항해야 하는 안드로이드 및 윈도우 진영의 스텝도 꼬이게 됩니다. 애플은 자체 설계한 반도체로 안드로이드와 PC의 시장점유율을 아이폰과 맥북으로 잠식하고 있는데요. 퀄컴의 반도체는 안드로이드와 코파일럿+ PC를 대표하는 반도체 중 하나입니다. 특히, 오라이언 이후 반도체 성능이 크게 좋아졌다는 기대감이 커졌는데 이를 막상 제품이 사용하지 못 할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안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있어서 애플과 단일대오로 경쟁하지 못하는 안드로이드와 윈도우 진영에 내분이 생긴 모습입니다.
Arm과 퀄컴의 갈등으로 웃음을 짓는 것은 애플이라는 이유죠. 또한, 퀄컴의 경쟁사로 상대적으로 저가의 AP를 만드는 대만 미디어텍도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1) RISC-V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반도체 지적재산권(IP)이 중요한 것은 Arm과 퀄컴 분쟁 사례처럼 법적인 보호를 통해 통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인텔의 CISC, Arm의 RISC 같은 ISA(명령어집합)은 호환성을 통해서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Arm 반도체를 탑재한 랩탑에서 인텔반도체에서 잘 돌아가던 게임들이 잘 실행이 안 되는 것이 이런 이유.
그래서 RISC-V라는 오픈소스 설계를 키워야 한다는 움직임도 큽니다. 인텔, Arm 같은 큰 기업들이 많은 IP를 갖고 있는 기존의 생태계가 아닌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 설계 생태계를 만들려는 움직임입니다.
저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RISC-V(리스크 파이브) 행사에 다녀왔는데요. 우리도 아는 많은 큰 기업들이 RISC-V에 발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빅테크인 알리바바의 경우 XuanTie(玄铁)이라고 하는 RISC-V 기반 반도체를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고, 이를 탑재해서 돌아가는 랩탑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알리바바 외에도 대만 기업인 안데스 테크놀로지, 미국 기업 마이크로칩, 독일 기업 코다십 등이 RISC-V 기반 반도체들을 선보였는데요. 각 생태계가 파편화되어 있어서 규모 있는 개발자 생태계가 아직 만들어져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 TV 등에 사용되는 타이젠OS로 RISC-V를 지원하고 있는데요. 가장 많은 부가가치가 생기는 PC와 서버컴, AI가속기 시장에서 RISC-V가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RISC-V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오픈소스 반도체 설계에서는 현재 IP를 갖고 있지 못한 중국이 앞서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실제로 반도체 IP애 대한 엄청난 의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Arm의 중국 합작회사인 Arm차이나는 경영권 분쟁을 통해 지금은 중국기업이 컨트롤하는 기업이 되기도 했습니다.
퀄컴은 한국과는 애증의 관계에 있어요. 한국 정부가 퀄컴의 기술을 도입하면서 퀄컴이 초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반대로 퀄컴 덕분에 한국 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일찍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된 것도 사실. 삼성전자에게 퀄컴은 애플과 경쟁을 함께 하는 중요한 안드로이드진영 우군이면서, 엑시노스와 경쟁을 하는 경쟁사 관계이기도 합니다.
어윈 제이콥스 퀄컴 창업자는 1985년 설립한 퀄컴을 불과 15년 만인 2000년에는 기업가치 1000억 달러까지 키웠습니다. 올해 6월에는 퀄컴 시총이 2371억 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죠(현재는 1762억 달러). 기술만 가진 스타트업이 특허를 발판으로 삼아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세계 최대의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 됐습니다. 특히, 여러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돌파한 것은 우리 기업들도 배울 부분이 많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If you’re at a point with few possibilities going forward, how do you handle those few possibilities? You need to build up a group to work with you and hopefully attract other companies because there is a range of things a company needs. You can’t do everything yourself.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점에 왔을 때, 그 가능성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회사에 필요한 것은 다양합니다. 함께 일할 그룹을 구성하고 다른 회사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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