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어도어는 2021년 11월 2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언론에는 161억 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되었다 나오지만, 실제로 설립 당시 자본금은 1억 원이고, 이후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 161억 원이 되었습니다. 주요 등기임원의 변경이 발생한 시점은 1년 전인 2023년 4월 25일이다. 기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하이브 측 인원들(이경준 하이브 CFO와 이창우 하이브 전략실장)은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고, 민희진 사단인 신동훈 부대표와 김예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사내이사로 등기합니다.
민희진은 애초 어도어의 대표이사였기에 등기변동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023년 1분기 어도어 지분 18%(573,160주)를 약 11억 원에 콜옵션으로 매수합니다.
경영권 구조를 정리해 보면,
① 주주총회 구성은 하이브 80%, 민희진 18%, 어도어 임직원 2%, ② 이사회는 민희진과 민희진 사단 3인으로 구성, ③ 대표이사는 민희진입니다.
상법상 인정되는 의사결정기구는 3개입니다.
① 주주총회, ② 이사회, ③ 대표이사
이번 갈등의 구조적 취약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하이브가 주주총회를 장악했지만 이사회를 모두 내주었고, 대표이사도 민희진이었기에 경영권 분쟁 시 즉각 대응이 어렵고 갈등을 증폭시키며 사건을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법 상 인정되는 3가지 의사결정기구의 끝판왕은 어디일까요? 역시 주주총회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주총회에서 이사회의 구성원인 등기이사를 선임시킬 수도(보통결의), 해임시킬 수도 있고(특별결의), 그렇게 이사회를 장악하면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임 및 해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무적 문제가 있습니다. 주주총회의 개최권은 이사회에 있는데, 이사회에 단 1명의 이사도 확보하지 못한 하이브이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이브는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내용증명으로 <민희진 대표이사 사임 및 주총 개최>를 요구하는 서면을 보냈지만, 법무법인 세종이 대리하는 어도어는 순순히 주총을 개최해 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소송 전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상법은 3% 이상의 주주들에게 회의의 목적사항과 소집이유를 적은 서면을 이사회에 제출하여 임시주총을 열어줄 것을 요청할 수 있고, 그럼에도 주총이 열리지 않으면 법원에 허가를 얻어 임시주총을 소집할 수 있습니다. 80%의 절대 주주인 하이브가, 이렇게나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자회사의 주총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사건을 복기해 보면 하이브가 만든 레이블별 자회사 관리에 구조적인 취약점이 보입니다.
1) 주총을 장악했지만 이사회와 대표이사는 모두 내어주는 구조는 갈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기이사에 하이브 측 인사를 사임시킬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대로 두고, 민희진 사단을 추가하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3) 대표이사는 공동대표이사나 각자대표이사 체제를 활용하였다면 갈등 국면에서 이렇게까지 혼란을 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4) 주주 간계약서를 썼다고 하는데, 대주주 요청 시 14일 이내 주총을 소집해야 한다는 조항도 반드시 포함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민희진 입장에서도 뼈아픈 건 마찬가지입니다.
1) 18%만 확보를 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적어도 34% 이상을 확보해야만 주총 특별결의를 방어할 수 있고, 이사 해임 건과 같이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한 사항에 있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이렇게 까지 굴욕적으로 당하고 있진 않았을 것입니다.
2) 노예계약 수준의 주주 간계약서를 별 고민 없이 믿고 썼다고 하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고 변명도 되지 않습니다. 본인이 미대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하더라도, 주위 전문가의 충분한 도움을 받아 중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데, 믿고 썼는데 알고 보니 노예계약이었다는 것은 법원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변명 수준의 발언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민희진은 경영권 찬탈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18% 지분권자에 주주 간계약서까지 묶여있는 자가 한 회사의 경영권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혹자는 상법 상 제3자 배정을 언급하지만, 상법 상 제3자 배정은 기존 주주들의 신주인수권을 제한하기에, 신기술 도입과 재무구조 개선 등의 경영상 목적이 인정될 경우만 허용됩니다. 300억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는 어도어에 적용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하이브는 '경영권 찬탈', '업무상 배임' 프레임을 씌워 민희진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시총 8조가 넘는 BTS를 보유한 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미디어 플레이를 하며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게 그리고 김앤장에서 이러한 전략을 허용했다는 점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밑에서 사건을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특히 이런 위기의 순간 모회사와 자회사를 연결해 주는 양측으로부터 신뢰받는 메신저가 부재한 것이 너무나 뼈아픕니다. 적어도 하이브의 박지원대표는 그런 메신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하이브가 민희진 개인의 존재감을 크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스템도 지분권도 자본력도 상대적으로 밀리는 민희진 개인의 전투력은 상당했습니다. 그녀는 하이브를 상대로 골프 치고 기사 딸린 차나 끄는 아저씨와 열일하는 노예 직장인의 구조를 만들어냈고, 이런 프레임에서 대중은 열일하는 노예 직장인에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대중의 감정과 관심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앞으로 주주 간계약서와 배임횡령의 형사고소로 옭아맬 하이브의 집요하고 치밀한 공격들을 과연 장기적으로 평온함을 유지하며 전략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모두가 다 잃었습니다. 성공적인 협상은 원하는 결과도 얻고 사람도 얻는 것이나, 결과도 잃고 사람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어른들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자의식 과잉의 추한 어른들의 살벌한 기싸움에 벌벌 떨고 있을 아이들(뉴진스, 아일릿, 에스파 등)이 가여울 뿐입니다.
덧붙여, 이 사건을 보면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심한 자기도취자들 중에서도 특히 더 위험하고 해가 되는 유형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상당한 수준의 힘을 손에 넣기 때문인데, 바로 ‘자기도취적 리더’입니다. 종종 이들이 사업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회사를 창업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창의적 재주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유형의 리더는 결국 내면의 불안정함과 혼돈이 그들의 회사나 집단에도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짜임새 있는 조직이나 회사를 만들지 못한다. 모든 게 반드시 본인을 거쳐가야 합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이 그들의 ‘자기 대상’이기 때문에 그 모두를 직접 통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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