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5,000달러 vs 1500달러. 경제학계가 추산한 지난해 대한민국과 북한의 1인당 GDP예요. 국경을 맞댄 나라의 경제력이 20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셈. 세계 경제학계에는 어떤 요소가 두 나라의 차이를 갈랐는가를 두고 여러 연구가 진행되곤 했어요. 기존까지는 인종·지리적 조건 등이 제시되곤 했는데, 한반도 남북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었어요.
한국어로 말하고, 김치를 먹으며, 아리랑을 부르는 같은 민족인데, 하나는 선진국으로 또 하나는 최빈국으로 전락했으니까요. 한밤중 인공위성으로 찍은 한반도에 남쪽만 환하게 빛나고 북쪽은 깜깜한 모습이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어요.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학자로 통해요. 그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포용적 제도가 한국을 부국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어요. 권위주의 군부 정권이 경제성장의 동력이었다는 기존 주장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민주화 이후 한국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라고 평가했어요.
그의 이런 주장은 세계적으로도 공인받게 됐어요.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 사이먼 존슨 MIT공대 교수,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를 선정하면서예요. 왕립과학원 측은 "국가 간 경제 발전의 격차로 이어진 정치·경제 제도의 차이를 연구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어요. 한반도에서 벌어진 경제 격차 연구가 노벨 경제학상으로 연결된 셈이에요. 오늘은 이 세 사람 주장의 요지를 알아볼게요.
1. 제도가 남북한 희비 갈랐네
애쓰모글루와 존슨 교수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놀라운 성과"라고 했어요. 애쓰모글루 교수는 "남북한이 분단되고 갈라지기 전에는 경제가 동등한 수준이었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10배 이상의 차이가 생겨났다"고 분석했어요.
세 사람이 특히 주요하게 생각하는 번영의 요소는 '민주주의'와 '포용적 제도'였어요. 남한은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이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보상을 받는 '포용적'(inclusive) 제도를 만들었지만, 북한은 모든 권력과 자원을 공산당에만 집중시키는 '착취적'(extracting) 제도를 만들었다는 설명이에요.
애쓰모글루 교수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갖고 권력이 동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포용적인 정치 제도"라고 부연했어요. 우리나라가 대통령을 5년 마다, 국회의원을 4년마다 다시 뽑는 제도와 이를 통해 경제적 보상 시스템을 만든 것이 성장 동력이었다는 거예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북한에서는 이러한 경제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는 설명이기도 해요.
2. 한반도와 닮은 美 노갈레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미국과 멕시코에 걸쳐있는 도시 '노갈레스'를 예로 들어요. 노갈레스 지역 일부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고, 남쪽 땅은 멕시코 소노라주에 걸쳐 있어요.
1853년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현재의 애리조나주를 사들이면서 한 지역이 두 국가로 갈라지게 됐어요. 우리나라 강원도가 이북에도 있는 것처럼요. 노갈레스는 국경이 나눠진 뒤에도 전통 행사를 같이 치르고, 주민들끼리 왕래하며 지냈지만 1994년부터 국경에 장벽이 생기면서 단절되기 시작했어요.
한반도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이 땅의 빈부격차도 엄청나요. 미국 쪽 노갈레스의 1인당 평균소득이 3만 달러가 넘고 평균수명도 길어요. 그러나 멕시코 쪽 노갈레스는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조금 넘을 만큼 가난해요. 범죄율도 엄청나게 높죠. 도로상태는 엉망이고 전기·상하수도·공중보건도 수준 이하예요. 고질적인 가난과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행정적인 제도도 튼튼하지 않아요.
최근 세계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K콘텐츠'도 포용적인 경제제도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내놨어요. 로빈슨 교수는 "한국의 창의성이 삼성이나 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며 "K팝, K드라마, K영화 얘기"라고 설명했어요.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이라는 것은 포용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의미예요. 우리가 꽉 막히고 억압적인 사회였다면, 위대한 문화 예술도 탄생할 수 없었겠죠. 북한이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분야에서도 성취가 없는 것처럼요.
3. 아직 과제는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안심하고 있을 때만은 아니에요. 여전히 많은 경제적 과제가 남아 있어서예요. 저출산·대기업 집중과 같은 문제들이에요. 로빈슨 교수의 견해도 비슷했어요. 그는 한국의 도전과제로 높은 대기업 집중도와 이에 따른 독점적 힘의 남용, 저출산, 고령화를 꼽았어요. 로빈슨 교수는 "경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행사해야 한다"고 조언해요.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한국은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해 낼 수 있다"면서 "민주주의가 문제를 알아내고 해결하는 데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존슨 교수는 AI(인공지능)가 오히려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봤어요. 자동화를 통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만큼 좋은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는 우려예요. 그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촉진할 방안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했어요.
북한·러시아 등 착취적인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들 경제학자들은 "어둡다"고 입을 모아요. 로빈슨 교수는 "그들은 누구든지 사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상품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면서 "러시아는 천연자원뿐이고, 이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어요.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세 사람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기도 해요. '착취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들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예요. 이번 노벨경제학상으로 인해 더 많은 토론과 논의가 도출될 전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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