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0세가 되기 1년 전 470억을 날린 남자
프레드 러디는 페레그린 시스템스라는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였습니다. 1990년 이 회사에 참여해 회사가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덕분에 회사의 주가도 많이 올라서 그가 48살이 됐을 때는 기업가치가 3,500만 달러(470억 원)에 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2002년 회사가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미국증권감독위원회(SEC)의 조사까지 받게 됩니다. 한때 80달러까지 올랐던 회사의 주가는 7센트까지 떨어지고, 회사는 파산신청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470억 원에 달하던 그의 전재산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프로그래머로 10년 이상 열정을 다해 일한 회사가 회계부정이었습니다.
다행히 페레그린의 경영진 11명이 감옥에 갔지만 프레드는 무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소송을 위해 프레드 루디는 많은 돈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의 커리어도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누가 회계부정에 연루된 회사의 경영진을 다시 고용할까요? 프레드는 1인 회사를 차립니다. 50세 생일을 맞기 2주 전에 성급히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50세에 회사를 창업했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파산신청을 한 페레그린은 HP에 인수됩니다.
2. 혼자 만든 제품으로 창업하다
페레그린에서 일하면서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소프트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기업 내의 워크플로우를 간단하게 생성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떤 사람이라도 쉽게 쓸 수 있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서비스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지금은 클라우드, 혹은 서비스형태의 소프트웨어(Saas)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직원 한 명 없이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전적으로 혼자 한 것은 아니고요, 지인이나 단기 알바 등을 구해서 제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혼을 갈아 넣은 첫 제품의 공개. 처음 사용해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뜨뜻미지근했습니다. 기업 워크플로우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아이디어는 너무 큰 그림이었죠. 그래서 프레드는 IT서비스 매니지먼트라는 한 가지 페인포인트에 집중했습니다.
3. IT서비스 당장 내놔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회사에서 PC를 지급받는 것부터 회사 계정을 만들고, 회사 소프트웨어 설치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업무를 IT서비스라고 합니다. 어떻게 면 회사에서 가장 빛이 나지 않고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입니다.
처음 만들어진 서비스나우는 이런 IT헬프데스크의 역할을 했습니다. 문제를 접수해서 이를 담당 부서에 전달하고, 직원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돕는겁니다. “비밀번호를 잊어먹었어요” “PC가 고장 났어요” “인터넷이 안 돼요”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사소한 IT문제 때문에 하루를 날려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서비스나우는 이런 IT서비스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로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회사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바로 서비스나우입니다. 당장 IT서비스를 내놓으라는 뜻입니다.
4. 대기업 직원들의 IT스트레스 해소
기존에도 IT서비스 관리 서비스는 많았습니다. 서비스나우는 직원 중심의 인터페이스, 설치가 필요없는 클라우드 기반의 환경으로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서비스나우의 CEO였던 존 도나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이팔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데 20초면 되는데 왜 업무용 이메일을 재설정하는데 왜 20분이나 걸리나요? 일반 소비자들은 심리스 한 경험을 원하고, 이건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소문을 타고 서비스나우는 기업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프레드는 유난히 ‘대기업’들이 서비스나우를 선호한다는걸 알게 됩니다. 관리해야 하는 IT서비스가 많은 대기업일수록 여기서 개선되는 효율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2003년 설립, 2005년 서비스 출시, 2007년 사명을 변경한지 2년 만인 2009년 실리콘밸리의 거물 벤처투자자가 서비스나우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바로 애플, 구글, 엔비디아에 투자한 세콰이아 캐피탈 구독에서 나오는 매출이 연간 2,800만 달러, 기업고객 350곳, 직원 135명으로 회사는 커졌지만,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때가 됐습니다.
5. 창업자 CEO에서 CPO로 물러나다
프레드 러디는 자신을 개발자라고 생각했지 CEO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회사가 성장하려면 어마어마한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여 야한 상황입니다. 그는 기꺼이 CEO에서 물러나고 CPO(최고책임자)를 맡기로 합니다. 대신 그가 CEO로 영입한 사람은 실리콘밸리의 IPO 해결사로 유명한 ‘프랭크 스룻만’. 회사는 점점 상장이라는 길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2011년 EMC의 자회사였던 VM웨어로부터 25억 달러의 인수제안을 받습니다. 프레드 루디는 물론 경영진과 이사회가 모두 찬성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오직 세콰이아의 더그 레온만이 반대했습니다. 그는 서비스나우가 100억 달러 가치의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면 더그 레온이 틀렸습니다. 서비스나우는 1,000억 달러 기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수제안은 거절했고 서비스나우는 2012년 6월 상장하게 됩니다.
6. 페이스북이 아니라 서비스나우를 샀다면?
서비스나우가 상장하기 한 달 전 한 기업의 역사적인 상장이 이뤄집니다. 바로 지금의 메타가 된 페이스북. 하버드대 출신의 젊은 천재 해커와 그를 알아본 VC들.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준 페이스북은 시장에서 160억 달러의 자금을 모았습니다. 서비스나우가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불과 2억 달러.
하지만 그 이후의 주가를 보면 메타가 1,400% 오르는 동안 서비스나우는 2,500% 상승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비스나우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샌디에고에 위치한 흔하디 흔한 소프트웨어 기업이었고, 페이스북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훨씬 낮은 가치로 시작한 서비스나우가 상승률이 좋은 것은 당연합니다. 현재 메타의 기업가치는 약 1.2조 달러, 서비스나우는 1,570억 달러로 9분의 1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서비스나우가 이렇게 꾸준히 주가가 올랐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단 ITSM에서 시작해 HR, ERP 등 기업의 모든 영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영역에서 가져오는 데이터를 모아 직원들이 주요 업무를 하나의 화면에서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기업 내의 워크플로우를 간단하게 생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프레드 러디의 원래 구상에 다가가게 된 것입니다.
이 덕에 현재 서비스나우의 연간 매출은 86억 8,000만 달러, 고객수는 8,100곳에 달합니다. 구독 갱신율은 98%에 달합니다. 미국 포천 500 기업의 85%가 서비스나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7. 생성형 AI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준다
서비스나우는 자신들을 생성형 AI의 최대 수혜기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엔터프라이즈 부문에서 AI는 기업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생성형 AI를 자신들의 오피스/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에 집어넣고 있고, SAP, 세일즈포스, 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브릭스 같은 이 분야의 대표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나우는 기업들이 내부에서 사용하는 기존 모든 서비스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이 가장 고객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 맥더멋 CEO는 서비스나우의 연례행사인 날리지202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성형 AI는 유행(Hype)을 넘어 진정한 기회다. 수십억 시간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생성형 AI가 혼돈을 줄여줄 것이다.”
기업 내 너무 많은 정보와 너무 많은 앱들이 직원을 지치게 하는 것처럼, AI가 단순화시키고 정제시킨 정보가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생성형 AI가 어떤 가치를 만들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지에 대한 서비스나우의 응답이었습니다.
8. 사람에게 두 번 배신을 당하다
사실 페레그린 시스템에서 CTO로 자리를 잡기 전 프레드 러디는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페레그린 시스템은 그의 두 번째 실패였는데요. 첫 번째 실패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모든 창업가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회사를 창업할 때 파트너가 있다면 먼저 파트너가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걸 깜빡했습니다.
저는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력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부분이자 값비싼 교훈이었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은 후 3~4년 동안 개인으로서 갚아야 할 빚이 엄청나게 쌓였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꼈습니다.
사람에게 두 번이나 배신을 당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CEO에서 물러나고 상장을 하면서 프레드 루디는 지분을 많이 팔았습니다. 현재 지분가치는 14억 달러(1조 9,000억 원)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는 2017년 CPO에서도 물러나 이사회 의장만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200조 원의 가치를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팀을 만들어서, 박수칠 때 떠났다는 점에서 프레드 루디라는 창업자가 지금의 서비스나우가 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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