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일하실 때 ‘딴짓’을 많이 하시나요? 저는 3~4시간 쉬지 않고 일한 뒤에는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있거나, 유튜브를 켜고 쇼츠를 넘기곤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지쳤던’ 마음, 기분이 조금은 회복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구글은 업무 시간의 20%를 다른 일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나한테 그런 시간이 있으면 뭐 할까.' 문득 3M이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15% 문화’도 떠올랐습니다. 쓰려고 마음먹었다가 쓰지 못한 이그노벨상이 떠올랐고, 이그노벨상을 받았던 과학자가 실제 노벨상을 받았던 사례도 떠올랐습니다. 그래 ‘딴짓’을 쓰자.
딴생각하다 찾은 주제, 딴생각하면서 읽어주세요. 빠르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1. 황당하고 재밌는 이그노벨상
이그노벨상, 다들 아시라 생각합니다. 1991년 제정된 이 상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연구를 선정해 시상합니다. 매년 가을,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 1~2주 전에 발표되고 시상식도 개최됩니다.
‘이그(IG)’는 ‘있을법하지 않은’을 뜻하는 ‘Improbable Research’의 약자인데요, 말 그대로 “이런 일(연구)이 있었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연구에 상을 줍니다. 미국의 과학잡지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가 주최해요. 이 잡지의 이름을 그대로 직역하면 ‘기발한 연구 연감’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황당’ 하기 그지없습니다. 1991년 1회 이그노벨 교육상 수상자는 미국의 전 부통령 ‘댄 퀘일’이었어요. 이유는 그의 비과학적인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화성은 지구와 같은 궤도에 있다”라는 발언 했는데 이그노벨상 주최 측은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그노벨상을 수여해요. 이듬해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시험관 아기’ 사업을 한 ‘이베타 바사’가 받았습니다.
노벨상을 패러디한 만큼 처음에는 ‘풍자적인 성격’이 짙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변화가 느껴집니다. 초반에는 황당한 사건이나 비과학적 발언을 한 사람을 비판하는 성격이 강했다면 점점 ‘실제 연구’를 찾는다는 느낌이에요.
가령 ‘콧구멍으로 숨을 쉬려 할 때 일어나는 현상에 관한 연구 논문’이나 ‘아침에 먹는 시리얼의 압축과 수분 함량에 관한 연구’ 등 ‘진짜 저런 연구를 했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논문에게 수상을 하기 시작한 거죠(물론 여전히 풍자적인 성격도 유지하고 있어요.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가 터졌을 때 주최 측은 “오염 문제를 해결했다”라며 폭스바겐을 이그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노벨상을 받는 일도 벌어집니다. 러시아의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 박사는 2000년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을 통해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실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됩니다.
안드레 가임 박사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이그노벨상의 가치는 더 높아진 것 같아요. 여기서 바로 ‘딴짓’과 ‘엉뚱한 상상’이 등장합니다. 안드레 가임 박사는 매주 금요일마다 연구원들과 엉뚱한 실험을 하는 시간을 만듭니다. 기존에 하던 연구에서 잠시 벗어나 엉뚱한 생각을 하고, 이를 실험해 보는 겁니다.
게코 도마뱀이 미끌미끌한 벽에도 잘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토대로 접착제를 만들기도 하고 이그노벨상을 받은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 시간의 약 10%를 이렇게 엉뚱한 연구를 하는 데 썼는데, 결국 금요일 밤에 ‘일’을 내고야 맙니다. 바로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 그래핀을 발견한 겁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개가 얇은 층을 이루고 있는 물질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래핀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안드레 가임 박사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연필심(탄소)을 스카치테이프에 붙이고,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다 보면 탄소 한 개 층으로 이루어진 그래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엉뚱한 생각인데, 그게 현실이 됩니다.
안드레 가임 교수가 만든 공중 부양 개구리 영상입니다. 이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그는, 10년 뒤 실제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엉뚱한 연구를 하는 시간에 한 연구로요.
2. 빅테크 기업들의 딴짓 문화
이그노벨상이 가진 권위는 높아집니다. 실제 과거 이그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달받은 뒤 “받기 싫다”며 거절했던 과학자들이 이제는 “받겠다”라고 승낙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어요. 이그노벨상이 비판이나 풍자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그노벨상 연구는 단지 ‘재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논문을 몇편 살펴보면 ‘인용지수’도 꽤 높은 걸 알 수 있어요. 인용지수란 해당 논문이 다른 연구에 인용된 횟수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2013년도 이그노벨상을 받은 ‘맥주에 취한 사람은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논문의 현재 인용 횟수는 40회입니다. 어떤 논문이 이를 인용했나 살펴봤더니 인간의 심리, 태도, 알코올 효과 등 정말 다양한 연구에서 관련 연구를 인용했어요.
이그노벨상 수상작을 살펴보면 처음엔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예를 들어 올해 이그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은 ‘포유류도 항문을 통해 호흡할 수 있는 사실’을 발견한 일본 연구진이 받았습니다. 쥐, 돼지 등이 직장을 통해 전달되는 산소를 흡수하고 있었는데요, 황당한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직장으로 들어오는 산소를 우리가 흡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용할까요. 훗날, 정말 먼 훗날 우리가 코로 숨을 안 쉬고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해 가는 과정에서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지고, 이는 인간의 더 나은 삶을 끌어낼 겁니다.
엉뚱한 상상이 효과적임을 기업들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엉뚱하고 황당한 연구, 호기심, 이러한 단어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구글의 ‘20% 타임룰’이었습니다. 직원들이 업무 시간의 20%를 다른 일에 할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맥락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기존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궁금하고 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를 추진해 볼 수 있으니까요.
구글 20% 타임룰은 실로 엄청난 결과를 냅니다. 지메일, 구글 뉴스, 구글 맵스 등이 모두 이 20% 타임룰에서 탄생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직원 참여, 직무 만족도가 크게 늘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을 때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도 확인합니다(물론 구글의 20% 타임룰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일을 20% 더하는 제도에 불과하다는 거죠).
비슷한 문화는 3M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구글과 같습니다. 직원들은 일하는 시간의 15%를 자신이 선택한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어요. 역시 3M을 대표하는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와 같은 제품이 이러한 ‘15%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메타의 경우 ‘해커톤’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개발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아마존에는 ‘이노베이션 데이’가 있어요. 스포티파이는 1년에 한 번 ‘핵윅(Hack Week)’를 개최합니다. 이 기간에는 자신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다른 프로젝트를 합니다. 스포티파이의 서비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개인화된 플레이리스트 제공 기능 ‘디스커버 위클리 플레이리스트’도 핵윅 프로젝트로 탄생했다고 해요.
3. 호기심, 상상력과 만난 뇌
‘엉뚱한 상상’ ‘호기심’이 좋은 결과로 이루어진 사례는 많습니다. ‘왜?’ 저는 또다시 ‘뇌’가 궁금했습니다. 호기심이 가득할 때 우리 뇌는 어떨까. 찾아보니 정말 많은 연구 성과가 존재했어요.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호기심’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볼게요. 2014년 학술지 ‘뉴런’에 실린 논문입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에게 ‘질문’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공룡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난이도를 조절해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앞선 질문보다는 ‘엉클 샘이 수염을 가지게 되었을 때 미국 대통령은 누구야?’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더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겠죠.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이용해 뇌를 촬영하고 기억력 테스트를 합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어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제를 마주하면 기억과 관련된 뇌의 해마 활동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에서도 활동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즉 호기심을 느낄 때 우리 뇌는 흥분한다는 거죠. 더 활발히 움직이면서 뇌 기능이 상승한 겁니다.
‘멍 때리는’ 상황, 다들 경험해 보셨을 텐데요.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고 있어도 우리 뇌는 움직입니다.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이라고 불러요. DMN은 휴식 상태에서 활성화되는데, 멍을 때리는 동안 사람들은 과거 경험을 회상하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요. 호기심이 이 DMN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지속해서 발표되고 있습니다. 상상력이 발현되는 곳이라는 얘기도 많이 해요.
호기심을 갖게 되면 DMN이 자극을 받는데 이러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DMN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기억과 경험이 연결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성된다는 겁니다. 즉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자유로운 상상을 하거나, 호기심 가득한 생각을 할 때 우리의 뇌가 신기하게도 활발히 활동(?)하게 되고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거예요.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가 있습니다. 전문 작가 98명, 물리학자 87명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를 기록하라고 한 조사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직장에서 일할 때 나타났지만, 가장 의미 있는 아이디어의 약 20%가 설거지할 때, 혹은 샤워 등을 할 때 떠오른 것으로 나타났어요.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가 있는데요, 아주 지루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삶을 즐길 경우 창의성은 오히려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너무 지루하고, 할 일이 많고, 바쁘면 우리 뇌가 아이디어를 내는 데 집중할 수 없습니다. 안드레 가임을 비롯해 구글 등이 업무 시간의 일부를 떼어 다른 일을 하도록 허락한 게 1990년대예요.
엉뚱한 상상, 호기심 등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아직은 정립되지 않았을 때로 보입니다. 물론 ‘뇌도 쉬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 정도는 알았겠지만요. 그들은 경험적으로, 그러한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것을 알아도, 즉 쉬는 시간도 필요하고 딴짓도 해야 창의성도 높아지고 생산성도 좋아진다는 것을 알아도, 실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제도가 악용될 수도 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아닐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따라서 C레벨급에서는 이러한 제도를 막상 도입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직원들 생각도 비슷합니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만 해!’라는 압박에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 뇌는 아주 모범생이라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또 땀 흘리며 운동을 하면 뇌의 상태는 최고조가 돼요. 뇌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 성과가 이를 증명합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직장인들이 이러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회사는 이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역시 기본입니다. 일할 땐 일하고, 쉴 때 쉬어야 합니다. 성과급을 주며 동기부여를 하고 직원들을 즐겁게 해줘야 합니다. 직원들은 이러한 회사의 노력과 함께 근무 시간에 집중해 일해야 하고요... 가장 기본 적인 것인데, 지키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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