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뗑킴, 무신사스탠다드, 젠틀몬스터, 마르디 메크르디, 얼킨, 시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K라면, K드라마, K뷰티에 이어 K패션이 새로운 한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뉴욕, 런던, 밀라노와 함께 4대 패션위크로 불리는 파리 패션위크에 한국 패션 기업이 쇼를 올리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K패션을 경험하기 위해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데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K패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국내 패션 대기업은 마냥 웃을 수 없습니다. 고꾸라진 실적 때문인데요. 오늘은 K패션 열풍이 부는 현재 국내 대표 패션 기업과 K패션 업계의 동향을 알아봤습니다.
1. 침체기에 빠진 국내 패션 빅4
1) 우리나라 패션 기업 하면?
국내 주요 패션 대기업으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LF, 한섬, 신세계인터내셔날 ‘빅4’가 꼽힙니다(2023년 매출 기준 순). 각각 삼성, LG, 현대, 신세계 그룹을 대표하는데요. 자사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 해외 브랜드를 발굴해 이들과 국내 수입·판매 계약을 맺거나, 인지도 높은 해외 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기도 합니다. 통상 국내 판매 계약과 라이선스 계약 두 가지를 동시에 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라이선스 브랜드
미국의 예일대학교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 카메라 브랜드인 코닥의 상표가 들어간 모자, 다큐 채널로 알려진 디스커버리가 들어간 운동화.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들은 모두 국내 브랜드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패션 브랜드가 된 사례입니다. 라이선스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 브랜드의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한 후 해당 브랜드의 상표를 사용해 의류 생산 및 판매를 진행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해외 브랜드에 스토리나 콘텐츠를 덧붙이는 식으로 국내 가공을 거치죠. 브랜드에 대한 기존의 인지도가 이미 높은 만큼, 시장 진입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3) 대기업이 웃지 못하는 이유
최근 국내 주요 패션 대기업의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로 소비자가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탓인데요. 특히 패션은 필수품이 아니기에 경기 침체가 업계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보복 소비’도 더 이상 힘을 못 내는 상황이죠.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제외한 국내 패션 기업 빅4는 작년 영업이익이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올해 1분기에도 실적 개선을 이뤄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죠.
4) 삼성물산, 나 홀로 선방
빈폴, 에잇세컨즈, 구호 등 국내 브랜드와 아미, 메종키츠네 등 해외 브랜드를 합쳐 총 34개의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2022년 연 매출 2조 원을 최초로 돌파하면서 국내 패션 기업 중 가장 먼저 매출 2조 클럽에 입성했는데요. 작년 주요 패션 기업 모두 부진한 실적 성적표를 받아 든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역대 최고 매출(2조 51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호실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활발한 온라인 사업과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꼽히죠. 작년 1월 기준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온라인 쇼핑몰인 SSF샵 월 방문자 수는 빅4 패션 기업의 온라인 쇼핑몰 중 가장 많았고, SSF샵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9%에서 작년 22%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자사 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의 작년 매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과 더불어 자크뮈스, 가니 등 해외 수입 브랜드의 매출 성장세 역시 수익성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5)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한 기업이 의류의 기획과 생산, 유통을 모두 맡아서 하는 브랜드를 의미합니다. 유니클로, 지오다노, 스파오, 무신사스탠다드 등이 대표적인데요. 백화점처럼 비용 부담이 높은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대형 직영 매장을 직접 운영하기에 제품의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유행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제품에 반영해 다품종 대량 공급의 구조를 보이기도 하죠.
최근 합리적 가격에 양호한 품질을 갖춘 SPA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유니클로의 국내 운영사 에프알엘코리아의 2022 회계연도(2022년 9월~2023년 8월) 매출(9,219억 원)은 전년 대비 31% 증가했고, SPA 브랜드 중 오프라인 매장이 가장 많은 탑텐의 운영사 신성통상의 작년 매출(약 9,000억 원)은 전년 대비 15% 늘었습니다.
6) 문어발 사업 펼치는 LF
헤지스, 닥스, 리복, 챔피온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범LG가 기업입니다.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3.45% 줄어든 1조 9,007억 원을 기록했는데요. 특히 영업이익(622억 원)은 전년 대비 66.5%나 급감하며 위기감이 감돌았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작년 LF 전체 매출에서 77.4%를 차지하는 패션 사업 외에 식품 사업이 15.7%, 부동산 및 금융 사업이 6.4%를 차지했다는 건데요. 패션 외 다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실적 개선을 도모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식품, 부동산 및 금융 사업 부문의 성과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상승세(전년 대비 107.8%)를 기록하기도 했죠. 하지만 여전히 패션 사업의 비중이 큰 만큼, LF의 패션 사업 실적 회복은 중요한 과제로 여겨집니다. 기존 브랜드를 넘어 캐주얼 브랜드(던스트), 시몬로샤, 아키라나카, MM6 등 해외 신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7) 신세계 따라잡은 한섬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패션 기업인 한섬은 타임, 마인, 시스템 같은 자사 브랜드와 무스너클, 타미힐피거 등 해외 브랜드를 포함한 39개의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고급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는데요. 최근에는 다른 주요 기업과 마찬가지로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 매출(1조 5,286억 원)과 영업이익(1,005억) 모두 전년 대비 약 0.9%, 40.3% 줄어들었죠. 2018년 이후 최저치였던 데다가 올해 1분기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 40.2%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패션 기업 빅4 매출에서 그동안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뒤처진 4위였던 한섬은 작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요 소비층이 젊은 세대로 옮겨 감에 따라 MZ세대를 겨냥한 성수동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8) 위험 신호 감지한 신세계인터내셔날
작년 매출(1조 3,543억 원)이 전년 대비 12.8%나 줄어들면서 한섬에 3위 자리를 내 준 신세계인터내셔날. 영업이익(487억 원) 역시 전년 대비 57.7% 감소하는 등 실적이 크게 휘청했습니다. 크롬하츠, 폴스미스, 갭 등의 해외 브랜드와 스튜디오톰보이, 보브 같은 자사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실적 악화는 셀린느를 비롯한 해외 럭셔리 브랜드와의 판매 계약 종료로 매출이 급감한 탓입니다. 셀린느는 신세계인터내셔날과 2012년부터 수입·판매 계약을 유지하며 주요 매출원 역할을 했으나, 작년에 셀린느코리아를 설립하며 국내 직접 진출을 발표했습니다. 디젤, 아크네스튜디오 역시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독점 유통 계약이 종료되면서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쳤단 분석이 나오죠.
2. K패션은 죽지 않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국내 패션 대기업이 단기간에 실적 개선을 이뤄내기 쉽지 않을 거란 평가가 나옵니다. 그러나 업계는 새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 다각화 등 반등을 노리는 전략을 세우는 중인데요.
1) 포트폴리오 다각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신규 브랜드를 발굴하고, 라이선스 브랜드를 강화하거나 아예 다른 사업 분야를 확장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한섬은 최근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키스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맺고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최한 바 있는데요. 삼성물산은 지난 11일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패션 브랜드 앙개를 국내외 시장에 동시에 출범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미국 브랜드 할리데이비슨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미국 패션 브랜드 더로우의 단독 매장을 신세계백화점에 오픈하기도 했죠.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 노력을 이어 온 LF는 올해 패션 사업을 주축으로 하되 식품, 이커머스 등 다양한 사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입장입니다.
2) 화장품도 만드는 옷 회사
패션 업계는 뷰티 시장으로의 확장에도 한창입니다. 스킨케어, 향수, 색조 등 뷰티 제품은 패션과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 진출에 부담이 없고,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요. 패션보다 계절적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도 긍정적 요소입니다. 실제 26개의 뷰티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올해 1분기 코스메틱 부문 매출(1,043억 원)은 전체 매출(3,094억 원)의 1/3 수준으로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13.5% 증가했습니다. 한섬과 LF도 각각 럭셔리 뷰티 브랜드 오에라, 비건 뷰티 브랜드 아떼 등을 선보이며 뷰티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섰죠.
3) 오프라인 매장에도 힘 꽉
오프라인 편집숍은 패션 기업의 신규 브랜드를 발굴하는 역할을 합니다. 편집숍은 여러 브랜드 제품을 한 공간에 모아 판매하는 곳인데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를 들여와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본 뒤 본격적으로 사업화에 착수하는 방식입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편집숍 ‘비이커’와 ’10 꼬르소 꼬모’, LF의 ‘라움’, 한섬의 ‘톰그레이하운드’ 등이 대표적이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은 메종키츠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랑방 등이 편집숍에서 처음 소개된 케이스인데요. 유통망 확대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 패션 업계는 자사 편집숍 강화에 공을 들이는 추세입니다. 브랜드 수를 늘려 매장을 확장하거나, 체험형 공간이 접목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죠.
3. 전 세계 물들이는 K패션
패션 업계는 해외 시장도 놓칠 수 없습니다. 최근 K패션이 새로운 한류로 떠오르면서 해외 진출을 역점 사업으로 삼는 건데요. 특히 국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목이 쏠립니다. K패션을 위해 한국을 찾는 사람도 늘어납니다.
1) K패션 찾는 외국인
올해 초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마뗑킴 팝업스토어에는 ‘오픈런’이 연출됐습니다. 일본 현지 백화점의 제안으로 이뤄진 팝업스토어였는데요. 작년 10월 도쿄에서 열린 팝업스토어에선 12일간 매출이 5억 원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무신사는 패션 업계 최초로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의 총수 간담회에 참석해 중동 시장 진출 가능성을 보였죠. 이미 국내 무신사스탠다드 명동점의 매출 약 45%는 외국인에게서 나온다고 알려질 정도기도 합니다.
2) K패션의 차별화 포인트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는 유럽의 명품 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에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경쟁력을 얻었습니다. 드라마, 영화, 음악 등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K패션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진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는데요. 여기에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를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며 인지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이커머스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구축해 소비자 반응과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도 하죠.
3) K패션 체질 바뀌는 중
한편, K패션의 떠오르는 새 주자로 F&F, 이랜드월드 등 중견기업이 주목받기도 합니다. F&F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이랜드는 중국 시장에서 특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는데요.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MLB 상표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뒤 국내에서 패션 사업을 성장시킨 F&F는 해외 판권 계약까지 체결하며 입지를 넓혀왔습니다. 작년 매출 1조 9,007억 원 중 해외 매출이 1조 5천억 원 이상이었죠. 이랜드월드의 중국 법인인 이랜드차이나는 중국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내년엔 국내 매출까지 넘어설 거란 가능성까지 나오죠.
4) 놓칠 수 없는 해외 시장
이에 국내 패션 대기업 역시 실적 회복을 위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추세입니다. 삼성물산은 올해 중점 전략으로 에잇세컨즈의 해외 진출을 꼽았는데요. LF는 작년 말과 올해 초 자사 브랜드 헤지스와 마에스트로를 베트남 시장에 추가로 출점하며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한섬은 패션 본고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에 시스템과 시스템옴므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계획이기도 하죠.
해외 브랜드만 들여오면 성공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국내 브랜드도 확고한 스토리와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다면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죠. 명품 브랜드를 가져오기 바빴던 국내 백화점 업계도 젊은 세대와 외국인이 주로 찾는 K패션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정체된 내수 시장과 함께 진입 장벽이 높다고 불리는 해외 시장까지 사로잡을 K패션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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