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치열한 싸움 중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높게 오른 물가는 아직도 쉽게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데요. 원래 한 번 오른 물가는 잘 내려가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어려운 말로 이를 물가의 '하방경직성'이라고 합니다. 혹은 인플레이션이 매우 끈적한(sticky)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죠. 이런 끈적한 물가를 끌어내리는 주요 정책 수단이 금리입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린 뒤 높게 유지해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는 중입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사람들은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고, 시중에 풀린 돈이 줄어들며 물가상승률도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표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표를 보다 보면 궁금한 지점이 생깁니다. 왜 하필 각국 중앙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일관되게 2%일까요? 또, 각국 중앙은행은 이런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금리를 조절하는 걸까요? 오늘은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와 적절한 금리 수준을 알아보려 합니다.
1. 물가상승률을 관리하는 중앙은행
1) 물가상승률 관리는 왜 중요할까?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선 물가를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가는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에는 2,500원 수준이던 자장면 가격이 어느새 7,000원을 훌쩍 넘어선 게 대표적이죠. 그런데 문제는 물가가 너무 크게 오르거나 내리는 것입니다. 경제가 과열되거나, 원자재 가격이 올라 물가가 급등(인플레이션)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사람들의 구매력이 낮아지면서 경제가 쪼그라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가가 크게 내리면(디플레이션) 사람들이 소비를 뒤로 미루면서 경기가 침체하는 문제가 생기죠. 따라서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조절하는 것이 현대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2) 중앙은행은 언제부터 물가에 집중했을까?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기능이 두드러진 것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입니다. 전쟁 기간 대부분의 국가는 군비 지출로 큰 물가 상승을 겪었는데요. 전후 경제 복구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물가 안정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서 중앙은행의 물가 관리 기능이 특히 강조되기 시작했죠.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폴 볼커가 10%가 넘어선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20%대까지 올린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2)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정한 건 언제부터일까?
많은 중앙은행이 물가 관리에 주력했지만, 본격적으로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정한 것은 1989년 뉴질랜드가 최초였습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초반 물가상승률이 17%를 넘어서는 등 경제적 혼란이 지속됐는데요. 이에 뉴질랜드는 1980년대 후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인플레이션 관리를 중앙은행의 주요 임무로 부여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치로 설정하는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 제도를 도입했죠. 이후 캐나다와 영국, 스웨덴, 호주 등 선진국들이 줄줄이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했고, 우리나라도 1998년 이를 도입했습니다.
3) 의외로 미국은 늦었다?
미국은 2012년 공식적으로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삼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전에도 비공식적으로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영해 왔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보다 장기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물가 목표를 제시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이죠. 미국이 목표로 삼는 물가상승률은 가계의 지출을 포괄적으로 반영하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 상승률입니다.
2. 왜 하필 2%일까?
1) 해보니까 그렇더라
사실 2%라는 수치가 엄밀하게 계산된 이론적 수치는 아닙니다. 물가가 대략 연 2% 정도 상승할 때 인플레이션도, 디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경험과 추정에 근거한 것이죠. 물가안정목표제를 처음 도입할 때 뉴질랜드의 재무장관은 연 0~1%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한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요. 통상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0.75% P 정도 높게 산출되는 경향이 있고, 0~1%라는 목표치가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어 2% 정도를 목표치로 잡았다고 하죠. 현재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이 고도화된 선진국은 대부분 목표치를 2%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2) 더 높게 잡으면 안 될까?
경제 성장이 빠르다면 목표치를 더 높게 잡아도 됩니다. 과거 2000년대 우리나라는 약 3%를 목표치로 잡았는데요. 보통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 물가상승률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3) 3%로 올리면 안 될까?
최근에는 이 목표치를 3%로 올리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2년 넘게 5%대의 기준금리를 고수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금리에도 물가상승률이 예상대로 내려가지 않자 아예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3%로 올려 잡자는 주장이 등장했는데요. 2%로 잡은 것에 별다른 이론적 근거가 없다면, 3%로 올리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죠. 잘 내려가지 않는 물가를 더 끌어내리려고 금리를 높게 유지할 경우 오히려 경기만 둔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3%까지 용인해도 된다고 하면 굳이 금리를 더 올리거나 지금처럼 높은 금리를 고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4)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일단 중앙은행의 신뢰에 금이 가기 때문인데요. 통화정책은 시장이 중앙은행을 신뢰하는지가 정책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입맛에 따라 목표치를 바꾼다면 더 이상 사람들이 중앙은행을 신뢰하지 않고, 결국 정책 효과가 반감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죠. 또, 목표치 수정은 사람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쳐 실제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목표치가 1% P 상승하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상향 조정하게 되고, 앞으로도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재 소비를 늘리면서 물가가 더 튀어 오를 수 있습니다.
3. 금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거지?
1) 적절한 금리를 찾아라
물가상승률을 목표 수준으로 조절하는 수단은 기준금리입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높이면 시중에 풀린 돈이 줄어들며 물가가 낮아지고,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물가가 올라가는데요. 기준금리 역시 물가상승률 목표치와 마찬가지로 너무 낮아서도, 높아서도 안 됩니다. 너무 높으면 경제가 급격히 둔화할 수 있고, 너무 낮으면 물가가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앙은행은 조심스럽게 금리를 올리고 내리면서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에 근접시키려 노력합니다.
2) 적절한 금리의 기준이 있을까?
적절한 금리 수준은 각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다 다릅니다. 하지만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닌데요. 대표적인 기준이 바로 '테일러 준칙'입니다. 테일러 준칙은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고안한 준칙으로,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금리 수준을 산출하는 방법입니다.
테일러 준칙에 따른 적정 기준금리 = 균형상태의 실질이자율+물가상승률+0.5×인플레이션갭*+0.5×GDP갭**
* 인플레이션 갭=실제 물가상승률-목표 물가상승률
** GDP갭=실질 GDP-잠재 GDP
3) 항상 따르는 건 아냐
사실 중앙은행은 테일러 준칙을 참고하긴 하지만, 정책 결정에 그대로 적용하진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테일러 준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는 7~8% 수준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테일러 준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금리를 정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테일러 준칙은 통화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있고, 각국 중앙은행은 자국의 사정에 맞게 테일러 준칙을 수정해서 적용하기도 합니다.
4) 중립금리가 올라간 걸까?
금리를 크게 높여도 물가가 잘 안 떨어지자, 중립금리 자체가 올라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립금리란 물가와 경제성장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금리 수준을 뜻하는데요. 2019년 미국은 중립금리를 2.5~2.6% 정도로 추정했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립금리 수준 자체가 높아진 것 아니냐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만약 실제로 중립금리가 올라간 것이라면, 금리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수준까지는 금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죠.
오늘은 왜 중앙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치가 2% 인지 다뤄봤습니다. 2%라는 숫자가 엄밀한 계산을 통해 도출된 수치는 아니지만, 중앙은행의 신뢰성과 시장 참여자의 기대 등을 고려했을 때 쉽게 바꿀 수 있는 수치도 아닌 셈인데요. 앞으로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이 어떻게 물가상승률을 2%로 조절해 가는지, 그 과정도 Byte와 함께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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