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세계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선출된 것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한데요. 여러 곳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서 다뤘죠. 저는 오늘은 정치와 미디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번 미국 대선을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1. 샌프란시스코, 중도좌파의 도시가 되다
지난번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와 마약 및 범죄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그 뿌리에는 노숙자와 범죄에 온건한 급진적 좌파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발로 중도성향의 정치인들을 당선시키려는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그리고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의 정치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시장과 시의회 선거, 그리고 중요한 안건에 대한 주민투표가 열렸어요.
먼저 시장 선거. 기존 런던 브리드 시장이 패배하고 정치신인인 다니엘 루리 후보가 시장이 됐어요. 그는 시장선거 참여를 선언하고 불과 1년 만에 시장에 당선되는 이변을 만들어냈습니다. 런던 브리드 시장도 중도성향의 정치인이었지만 시민들은 그의 이전 시정이 실패했다고 평가한 것 같아요. 다니엘 루리 후보는 진보적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실 선출되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바로 청바지로 유명한 리바이스 가문의 상속자였기 때문이죠. 그의 어머니가 리바이스 가문 오너와 재혼을 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죠. 선거과정에도 그의 어머니는 100만 달러에 달하는 선거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정치에 덜 물든 신인이 낫다는 결론을 시민들이 내린 거죠.
1) 테크 기업가들 중도좌파를 지지하다
시의회 선거에는 선거가 이뤄진 총 6개의 선거구 중 2곳에서만 중도성향 후보가 당선됐고 나머지 4곳은 진보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것 같아요. 다만 선거를 하지 않은 다섯 곳에는 중도성향 후보가 이미 자리를 잡아서 시의회에는 중도성향과 진보성향 후보가 균형이 잡혔습니다. 또한, 시민단체들이 집중적으로 낙선 운동을 펼친 이른바 ‘사회주의자’ 후보자 두 사람이 시장선거와 시의회 선거에서 각각 낙선하면서 상징적인 의미가 커졌습니다.
주민투표에 대해서도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안이 통과됐죠.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주 주민투표에서도 경범죄의 원인으로 꼽히는 발의안 47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발의안 36이 70%의 높은 지지율로 통과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은 다양성, 개방성, 평등과 같은 가치보다는 치안과 경제, 가족과 같은 가치관을 선택했다고 보여요.
인구 80만의 작은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의 선거에 제가 계속 주목을 한 것은 이곳이 미국 진보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에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도 이곳이 정치적 고향이죠. 진보의 심장과도 같은 도시에 중도성향의 시민단체의 정치 운동이 성공을 거두고, 이곳 주민들이 가족, 치안, 안정을 택했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여기에는 물론 와이콤비네이터의 게리 탄 같은 이곳 실리콘밸리 테크 거물들의 많은 후원금이 큰 역할을 했어요. 이번 대선에서 일론 머스크와 같은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인들이 트럼프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는데요. 또 다른 테크기업인들은 민주당 내부에서 당이 중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개혁을 지원했던 거죠.
2. 20대 남성들이 트럼프 지지자가 됐다
비벡 라마스와미라는 인도 이민 1.5세대 미국인이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고, 그의 급진우파적 성향이 공화당의 지금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가 급진우파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지금 공화당 주류의 생각이라는 거죠. 비벡 라마스와미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트럼프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이후 트럼프 캠프의 핵심적인 연설자 중 한 명이 되었어요. 그는 트럼프가 젊은 남성들에게 어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남성들은 이번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가장 많이 움직인 유권자들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20년에 비해 2024년에 18세~29세 남성의 트럼프 지지는 15%나 늘어났어요. 같은 연령대 여성들의 지지가 7% 늘어난 것과 큰 차이입니다. 또한, 흑인 남성들 중에는 트럼프 지지가 12%, 히스패닉 중에서도 남성의 트럼프 지지는 9%나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젊은 남성층의 트럼프 지지는 매우 두드러지는 현상일 뿐, 미국의 대부분의 인종 및 연령 그룹과 모든 지역에서 트럼프의 지지가 늘어났어요. 지난 선거에 비해 민주당 지지가 늘어난 그룹은 65세 이상과 백인 대졸 여성뿐이었습니다.
1) 민주당은 반 종교적인가?
대선을 앞둔 지난달 23일과 24일, 저는 경합주인 애리조나주의 피닉스와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는데요. 이곳 주민들의 얘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았어요. 어째서인지 카말라 해리스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죠.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팬클럽처럼 열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종교’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이었어요. 카말라 해리스의 유세장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학생들이 등장해 ‘예수님은 왕이십니다’라고 말했을 때, 카말라 해리스가 ‘지금 유세장을 잘못 찾아왔어요(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으로 가세요)’라고 조롱했다는 것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퍼졌는데요. 사실 해당 유세 동영상으로는 대학생들이 한 말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아요. 이는 가짜뉴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주류언론들이 이를 덮으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직접 경합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많은 미국인들은 이 뉴스를 통해 말라 해리스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신앙은 트럼프의 주 지지층인 미 남부 백인들에게도 중요하지만, 해리스의 주요 지지층인 히스패닉과 흑인들에게도 중요해요.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도들에게도 종교는 삶과 분리되어있지 않아요. 이것이 가짜뉴스였다면 왜 민주당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는지 의아했습니다.
2) 미국의 보수화? 중도화?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가지 적절하지 못한 발언과 미 국회의사당에서 2020년 1월 6일 일어난 폭동과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더 지지했어요. 이는 트럼프와 공화당이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보수적인 가치에 더 공감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공화당이 종교, 가족, 안정과 같은 가치관을 지키는 것으로 보였고, 민주당이 강조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관이 오히려 사회의 혼란을 가져오고, 목소리가 큰 소수만을 대변한다고 믿은 것 같아요. '정체성 정치'라고 불리는 인종과 성별에 따른 그룹화에 대한 반감도 커졌고요. 반면, 불법이민자 및 범죄자에 대한 온정적인 접근과 불안한 외교정책도 미국인들이 민주당 정부에 표를 주지 않은 이유죠.
미국인들이 보수화된 것일까요? 저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펼칠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중도화'됐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 있어요. 이런 점에서 미국인들이 보수화됐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근원적인 가치로 회귀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행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 비서실장을 임명했고, 인도계이며 힌두교인 비벡 라마스와미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JD 밴스 부통령은 오하이오 출신의 백인이지만 그의 아내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그는 이미 다양성이 늘어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중도적인 정책을 펼칠지는 몰라요. 또, 트럼프 당선 이후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적인 메시지가 크게 늘어났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지금으로서는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3. 대선 미디어 전쟁의 승자는 팟캐스트와 유튜브
경합주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감. 미국의 소위 주류언론들은 ‘세글자 언론사’라고 불리면서 불신의 대상이었어요. 공중파 방송인 ABC, NBC, CBS는 물론 CNN, PBS 가 대표적. 심지어 뉴욕타임스(NYT)나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세 글자 언론사였다는 걸 깨달았죠.
선거 캠페인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측은 팟캐스트에 많이 출연해 효과를 봤어요. 조 로건, 렉스 프리드먼 외에도 많은 팟캐스트에 출연했어요. 팟캐스트의 시청자 중에 젊은 남성들이 많다는 것과는 별도로, 팟캐스트에 출연한 트럼프는 미국의 주류언론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이상하고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죠. 이는 트럼프가 ‘중도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미국에 온 이후 저는 ‘팟캐스트’와 ‘유튜브’가 정말 강력한 미디어가 됐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이번 선거는 더욱 그랬습니다. 기존 미국 언론사에서는 트럼프와 해리스가 박빙이라는 내용이 많았지만, 유튜브와 X에서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남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성향을 강력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하기엔 선거결과의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사실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해리스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길 확률이 이미 한참 높았다는 것으로 계속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었죠. 민주당 지지층과 이에 동조하는 미국 언론사들이 대역전극이라는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미국 언론사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쓴 한국의 언론사들도 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1) 저널리즘의 근원적 위기
지금의 신문사와 방송사가 뉴스를 취재하고 만드는 방식은 수백 년간 언론 역사를 통해서 입증되고 살아남은 방식입니다.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하고, 취재원과 거리를 두고 이를 의심하고 고발하는 것이 언론사가 해왔던 일. 하지만 취재를 위해 사업을 위해 기자와 언론사는 취재 대상이 되는 권력자나 기업들과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너무 멀어져서도 안 되는 관계를 만들어왔어요. 그리고 독자들에게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언론사들은 한 줄의 헤드라인이나, 기사의 첫 줄에 모든 것을 요약합니다. 자세한 디테일은 생략하고, 언뜻 본질과는 무관해 보이는 팩트에 집중하죠.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유튜브와 팟캐스트의 시대가 되면서 이런 200년의 방식이 구식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언론사는 엘리트주의에 기반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가 하죠. 이를 '편집' 혹은 '게이트키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팟캐스트와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서 취재원이 직접 자신의 얘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정해진 지면, 정해진 방송시간이 존재하는 기존 언론에서는 편집이 '필요악'이었지만, 분량의 제한이 없는 온라인과 유튜브에서는 편집은 굳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제는 독자와 시청자들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죠.
언론사들은 인터넷의 등장 이후 비즈니스모델의 붕괴라는 어려움을 겪어왔어요. MP3와 음원 시장의 등장 이후 뮤지션들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반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오히려 언론사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시켜 줬습니다. 기술을 통해서 뉴스가 더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선거를 보면서 언론사의 영향력마저도 점차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워싱턴 포스트의 위기
현재 언론사들이 가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이 대선 2주 전 있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가장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썼던 워싱턴 포스트가 수십 년간 해오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철회한 것. 당연히 카말라 해리스 후보에 대한 지지의 사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단된 것이죠. 여기에는 CEO와 오너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영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프 베이조스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이 이를 막아선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면서, 언론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힙니다.
그러자 수많은 독자들이 해당 글에 비난 댓글을 남기면서 자그마치 25만 명이 구독을 해지하게 됩니다. 전체 구독자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이건 선거 전의 일인데 선거 후에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X(트위터)를 통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의 글을 남기면서 독자들은 더 분노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을 내지 않은 것이 트럼프가 당선될 것을 예상하고 눈치보기를 했다는 거죠.
트럼프 대통령 1기. 워싱턴 포스트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디지털 전환은 성공했고 구독자는 꾸준히 늘어났죠. 하지만 정권이 다시 바뀐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내리막길을 탔습니다. 미국을 넘어 글로벌 영어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의 세 곳이 있는데요. 같은 진보성향인 뉴욕타임즈가 너무 잘 나가면서 워싱턴포스트는 포지션이 애매한 상황이에요.
선거 2주 전 그동안 해오던 후보 지지 사설을 철회한 것은 누가 봐도 속 보이는 조치였죠. 하지만 그렇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기존에 해오던 것처럼 '안티 트럼프'에 안주했다면? 진보적인 엘리트 독자들의 지지는 얻을 수 있지만 뉴욕타임스에게 점차 독자와 영향력을 빼앗겨 왔을 겁니다. 그렇다면 진보성향의 독자들로부터 멀어져서 중도성향으로 옮긴다면 많은 독자들이 워싱턴포스트로 찾아올까요? 그들은 전통적인 매체보다는 팟캐스트나 크리에이터들을 더 선호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지켜보기에 이번 선거는 미국인들이 보수적으로 변했다기보다는 중도로 옮겨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에요. 진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마저 중도성향의 시장과 정치인들이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위기도 사실은 중도를 지키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들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편향적인 이야기만을 듣고 싶어 하는 '에코챔버'의 상황에서 중도를 지킨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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