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벌인 TV 토론이 일주일도 넘게 화제가 되고 있어요. 토론 자체가 뜨거웠던 것도 있지만, 토론 결과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났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것 같아요.
대선 토론 이후, 여론이 트럼프 쪽으로 기울었어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올라가자, 바로 반응이 온 곳은 세계 금융시장이었어요. 특히 채권시장이 요동쳤죠. 오늘은 어지럽게 흘러가는 미국 대선의 판세와, 앞으로 미국 정치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펴볼게요.
1. 높아진 트럼프 집권 가능성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4개월 앞둔 지금, 판세는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이번 TV 토론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한참 밀리는 모습을 보였어요. 지난 대선 토론에서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는 등의 행동으로 비판받았던 트럼프는 이번 토론에서는 비교적 토론 규칙을 잘 준수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반면 바이든은 말을 더듬거나 망설이는 등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바이든 건강 이상설’에 다시 불이 붙었어요.
민주당에서는 “대통령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어요. 바이든이 자발적으로 후보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상은 후보 교체가 어렵기 때문에, 바이든에게 사퇴 압박이 가해지고 있죠. 하지만 바이든은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하는 상황이에요.
때마침 나온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도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줬어요.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를 시도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면책특권을 주장해 왔어요. 지난 1일 연방대법원은 면책특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며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어요. 대법원 결정으로 재판이 대선 이후로 미뤄지게 되면서, 트럼프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생겼어요.
면책특권이란 직무상 불법행위를 저질렀어도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는 특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과 관련된 혐의가 ‘대통령 재임 중 수행한 공적 행위’라며, 자신은 면책특권이 있다고 주장해 왔어요.
2. 토론에서 어떤 얘기가 나온 거야?
이날 두 후보는 경제 이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이민자 정책, 낙태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토론을 이어갔어요. 두 후보의 입장이 가장 치열하게 대립했던 쟁점을 정리해 봤어요.
1) 세금
트럼프는 바이든에 비해 강력한 ‘감세 정책’을 약속했어요. 특히 기업에 매기는 세금인 법인세를 대폭 줄여주겠다는 계획이죠. 트럼프는 현재 21%인 법인세율을 18%까지 인하하고, 최종적으로 15%까지 내리겠다고 공약했어요. 바이든은 “현재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8.2%의 세금만 내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주장하는 감세 정책은 “미국을 파산시킬 것”이라고 밝혔어요.
2) 무역 장벽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도입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어요. 중국산 제품에는 60% 이상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했고요. 첫 번째 임기 때보다도 높은 강도의 관세 정책이에요. 바이든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물가 상승을 유발할 것이라고 비판했어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도입하면, 음식 등에 연평균 2500달러(약 345만 원) 이상을 추가로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죠.
3) 친환경 정책
트럼프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등 전기차나 이차전지 기업들에 주는 각종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어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완전히 뒤집겠다고 공언해 왔거든요. 바이든 정부는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하는 정책들을 추진해 왔어요. 하지만 트럼프는 친환경 정책이 에너지 비용을 늘려서 물가 상승의 주범이었다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화석 연료 사용을 다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4) 이민 장벽
두 후보는 이민에 대해서도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어요. 트럼프는 바이든이 국경을 개방해 미국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했어요. 반면 바이든은 트럼프의 재임 시절 엄격한 이민 정책으로 여러 부작용이 생겼다고 말했고요.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이전에 펼쳤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커요.
3. 토론 끝나자마자 출렁인 시장
대선 토론이 트럼프에게 유리한 모양새로 돌아가면서, 곧바로 반응이 온 곳은 미국의 국채 시장이었어요.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입성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미국 국채의 금리가 급등했거든요.
왜 갑자기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았냐고요? 국채 금리는 세금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에요. 트럼프는 강력한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어요. 문제는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돈이 줄더라도,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나가는 돈을 안 쓸 수는 없다는 거예요. 결국 거둬들이는 돈보다 지출하는 돈이 많은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런 상황을 ‘재정 적자’라고 불러요.
미국 정부는 최근 몇 년 사이 재정 적자 규모를 키워 왔어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부터 얼어붙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많이 썼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쓰는 돈은 줄이지 않는 상태에서 거둬들이는 세금만 줄기 때문에 재정 적자가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죠.
정부는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서 빚을 낼 수밖에 없어요. 미국 정부가 빚을 내는 방식은 국채를 발행하는 거예요. 이때 국채에 붙는 금리는, 정부가 돈을 빌리며 적용하는 ‘이자율’에 해당해요. 돈을 더 많이 빌리려고 하면, 그만큼 이자율은 높아지겠죠. 결국 ‘미국이 전보다 빚을 많이 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국채 금리가 튀어 오른 거예요.
사실 바이든이 당선된다고 해도, 재정 적자는 확대될 것으로 보여요. 대선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살펴보면, 두 후보 모두 돈을 풀겠다고 한 건 마찬가지거든요. 다만 바이든은 ‘돈을 풀겠다’는 입장이고,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더 많이 풀겠다’는 정도의 차이예요.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앞으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확대될 것이라는 얘기예요. 이런 맥락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더 튀어 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4.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가도 걱정
국채를 많이 찍어내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에요. 국채를 찍어내면 그만큼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양은 증가해요. 돈이 흔해진다는 거니까, 그만큼 돈의 가치는 낮아지죠.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는 건, 인플레이션이 심화한다는 의미예요.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상황에서는 기준금리를 쉽사리 낮출 수 없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던 물가 상승세가 올해 들어 서서히 둔화되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Fed)도 올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요. 만약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면, 올해에는 한두 차례 금리 인하를 하더라도 내년 이후에는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요.
대선 토론 한 번에 금융시장이 곧바로 이렇게까지 요동치다니, 이번 일을 통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는지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올해는 세계에서 약 76개의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인 만큼,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폴리코모니(폴리틱스+이코노미) 현상이 뚜렷할 것이라고 해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 정치 소식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때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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