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통산업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미국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료품점(Grocery)’중 하나인 ‘트레이더 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트조'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산 냉동김밥이 트조에서 불티나서 팔린다는 소식과, 트조의 4,000원짜리 에코백이 60만 원에 재판매 됐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1. 트조(트레이더조)에 없는 세 가지
트레이더조는 식료품을 파는 슈퍼마켓입니다. 슈퍼마켓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김밥이 잘 팔리는 건 ‘김밥’이 아니라 ‘트조’에서 판매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트조는 한국사람들이 보기에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곳입니다.
첫 번째, 온라인몰이 없습니다.
당연히 배송도 안 해줍니다. 트조 물건을 사려면 무조건 직접 매장을 방문해서 구매해야 합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장보기를 대신해 주는 서비스인 ‘인스타카트’와도 협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사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쿠팡과 마켓컬리, 쓱배송 등에 익숙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찹 답답한 곳이 트레이더조입니다.
두 번째, 트조에는 내셔널브랜드(NB)가 없습니다.
식품 제조업체의 브랜드를 내셔널브랜드라고 하고, 유통회사가 자신의 브랜드를 제품에 쓰는 것을 프라이빗브랜드(PB)라고 합니다. 트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식품회사의 브랜드가 없습니다. CJ햇반, 농심 신라면 같은 것이 없고 트조햇반, 트조 매운 라면 이런 제품만 판매됩니다. 판매되는 전체제품의 80%가 PB. NB자체가 없기 때문에 트조에서 파는 제품은 모두 트조에서 책임지고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세 번째, 트조는 광고를 안 하고,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멤버십 같은 것이 없습니다.
슈퍼 한구석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식품 제조업체에게 돈을 받고 좋은 자리에 제품을 진열해 주는 경우도 없습니다.
2. 제품수를 줄이고 낮춘 가격
이런 특이한 영업전략을 통해 트조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트조는 판매하는 제품 수를 크게 줄였습니다.
월마트, 코스트코 같은 초대형 마트의 매장 면적은 20만 제곱피트, 일반적인 슈퍼마켓은 4만 제곱피트인데 트조는 1만~1만 5000 제곱피트의 면적입니다. 제품의 숫자도 일반 슈퍼마켓의 3만 개에 비하면 4000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제품이 PB니까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트조는 각 카테고리에서도 중요한 핵심제품만 팔지 다양한 종류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샐러드드레싱을 판다면 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7가지 종류의 드레싱만 팝니다.
두 번째, 트조는 판매 제품 수를 줄이고 매장의 면적을 줄이면서, 여기서 아낀 돈으로 제품 가격을 낮추고 있습니다.
판매 제품 수가 줄어들면 관리비용이 줄고, 또 제품당 구매량이 많아지니까 협상력이 좋아집니다. 또한 NB 없이 PB만 판매하므로 NB업체가 가져가는 마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광고나 포인트적립을 안 해주는 것도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트조의 제품들은 체감하는 ‘퀄리티’에 비해서 가격이 낮습니다. 최근 트레이더조는 바나나 한 개의 가격을 19센트(260원)에서 23센트(310원)로 인상했습니다. 무려 20년간을 올리지 않은 가격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략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코스트코와 비슷합니다. 제품 수를 줄이고 관리 비용을 줄여서 고객에게 제품을 싸게 판매하는 것은 코스트코가 유명합니다. 하지만 코스트코와 달리 트조는 유료멤버십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3.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슈퍼마켓
그래서 트조의 특별함은 가격과 제품수가 아닌 '다른 것'에 있습니다.
제품의 수를 적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어려움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카테고리에서 하나의 PB브랜드만 있으면 선택은 더욱 쉽습니다. 모든 제품이 트조의 제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평이한 제품들만 판다면 쇼핑의 즐거움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트조는 PB제품 하나하나를 매우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제품명도 특이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이색 제품을 판매합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한 편입니다. 뭔가 구매하는 경험은 ‘프리미엄 식품’을 사는 것 같은데 가격은 일반 공산품과 비슷합니다. 매장을 갈 때마다 예상하지 못한 새로움을 느끼게 되고 이때마다 ‘지름신’이 발동하게 됩니다.
또, 제품이 인기가 없으면 빨리빨리 해당 제품을 단종시켜 버립니다. 패스트패션으로 유명한 자라의 의류들이 트렌드에 맞춰 빠르게 나오고, 사라지듯이 트조에서도 새로운 신제품들이 빠르게 나오고 빠르게 사라집니다. 물론, 스테디셀러 제품들은 바뀌지 않고 계속 판매됩니다.
그래서 제품을 그때 사지 못하면 다시는 구매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제철과일이 그 시즌이 지나면 안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트조에서는 계획하지 않은 과다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진짜' 친절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처럼 고객에게 특별한 프리미엄의 경험을 주기 위해 트조의 머천다이징 팀은 전 세계를 다닌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평가절하되는 ‘냉동식품’이 트조에는 많이 판매되는 곳입니다. 해외에서 소싱한 제품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급속냉동을 선호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5. 제품뿐만 아니라 트조에서 집중하는 것은 매장경험
트조의 직원들은 다른 유통업체들과 매우 다릅니다. 친절하면서도, 그런 친절함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과다한 친절이 아닌 진짜 동네 주민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가끔 미국의 대형마트에서 불쾌한 서비스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형마트는 매장은 아주아주 넓어서 그런지, 직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트조는 매장이 작아서 직원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6. 트조의 역사와 기업문화
트레이더 조는 1967년 조 쿠롬베라는 사람이 남부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처음 매장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조’라는 이름은 바로 창업자의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는 남부캘리포니아의 라이프 스타일에 하와이의 여유로움이 담긴 슈퍼마켓을 만들었고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트레이더 조와는 사뭇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는 1979년 독일의 유통 재벌인 알디의 창업자 테오 알브레히트에게 회사를 매각하게 됩니다. 지금의 트조는 창업자 조 쿠롬베가 만든 기업문화에 알디의 기업철학이 뒤섞인 기업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을 PB로 구성하고 가격 낮추기에 집중하는 것은 알디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디의 장점을 가져오면서도 트레이더 조의 매력을 유지한 것은 독립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던 미국 경영자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CEO를 지낸 존 쉴드의 취임기간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확장을 시작한 트레이더 조는 매장이 27개에서 174개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2001년 CEO가 된 벤 데인 CEO 재임기간에는 매장이 543개까지 늘어납니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 매장을 열고 전국적인 사업자가 됩니다. 지난해 20여 년 만에 CEO가 바뀌면서 브라이언 팔바움 CEO가 취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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