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소음이다.” 미디어 업계에서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토터스 미디어의 창업자인 제임스 하딩이 남긴 말인데요. 오늘날 매스 미디어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도래하면서 플랫폼이 세상을 지배했고, 방송이나 인쇄 매체는 갈 길을 잃었습니다. 온라인 뉴스 범람으로 가판대에서 신문을 구매하는 사람이 사라졌고, 한 때 부수 순위 10위권 안에 들던 무가지 신문은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대신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그리고 포털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이제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스낵처럼 소비하는 시대가 펼쳐진 것인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많은 올드 미디어는 자극적 제목 경쟁을 벌입니다. 온라인 뉴스는 무료다 보니, 생존 방법이 광고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패턴은 악순환을 부릅니다. 알고리즘은 개인이 관심을 기울일만한 뉴스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갈수록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뉴스만 읽습니다. 편향된 사고가 폭증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이 심화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속에서 나타난 다크호스가 있었으니,
1. 세계가 주목한 6년차, 미디어 스타트업 ‘토터스’
불과 역사가 6년 밖에 안 된 토터스 미디어입니다. 토터스 (Tortoise)는 거북이라는 뜻으로, 느리지만 정확하고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보겠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주 토터스 미디어가 발표한 ‘글로벌 AI 인덱스’ 집계를 사례로 들어, 과기부가 주목한 영국 신생매체 “한국의 AI 경쟁력은 글로벌 6위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3위까지 끌어올리겠다”라고 했습니다. AI 업계는 토터스 미디어의 발표를 주목하고, 전 세계 외신은 이를 인용합니다. 불과 6년 밖에 안 된 신생 스타트업의 발표를 말입니다. 잠시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토터스는 지난주 83개국을 상대로 한 2024년 AI 인덱스를 발표했는데요. AI 순위에서 미국이 100점 만점에 100점으로 1위, 중국이 53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3위는 싱가포르, 4위는 영국, 5위는 프랑스, 6위는 한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와 같은 6위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3위까지는 올라갈 것이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설명입니다. 이를 위해 민관 합작 방식으로 2조원을 투자, 그래픽처리장치(GPU) 규모를 15배 이상 확보하겠다고 했습니다. 초당 200경번 연산 능력인 2엑사플롭스 능력으로 갖추겠다고 한 것인데요. 매그니피센트 7 가운데 아마존 AWS가 확보한 컴퓨팅 파워는 약 20엑사플롭스니 10분의 1이라도 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1) 슬로우 저널리즘을 외치다
우리 정부가 목표를 위한 벤치마크로 삼은 토터스 미디어는 도대체 어떤 미디어 스타트업일까요. 토터스 미디어는 2018년에 영국에 설립된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슬로 저널리즘'을 기치로 내걸고, 빠른 뉴스 전달 방식과 차별화된 접근을 추구하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공동창업자들은 모두 기성 언론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제임스 하딩은 BBC 뉴스의 책임자 출신이고 케이티 배넥 스미스는 전 월스트리트 저널 사장 출신입니다. 이들은 이런 문제의식과 목표를 세웠습니다.
2) 문제의식
정보 과잉: 독자들은 너무 많은 정보에 압도 중. 가짜 뉴스나 저질 뉴스뿐, 아니라 좋은 뉴스까지 범람.
권력 격차: 권력자와 국민간 격차는 확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리더십의 존재감 역시 부재.
3) 목표
슬로우 저널리즘: 속보 경쟁이 아닌, 배경과 원인을 깊게 알려주는 저널리즘.
개방형 저널리즘: 회원들이 뉴스룸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다양한 관점을 수용.
지속 가능성: 구독모델로, 책임 있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
특히 하딩은 파이낸셜타임스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타임스 편집장과 BBC 뉴스 디렉터를 역임하면서 오늘날 미디어의 문제점을 꿰뚫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2018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I 순위: 토터스 미디어가 발표한 AI인덱스. 한국은 2년 연속 6위를 차지했다. 과기정통부는 토터스 미디어 지표를 보고 3위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4)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방해한다
“TV는 새로운 책임의 시대를 약속했습니다. 세상을 우리의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전달했습니다. 극단적이고 짧은 발언, 부정적인 광고, 24시간 뉴스 사이클, 인물 중심의 정치는 TV 시대와 함께 가속화되었습니다. TV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로 대통령을 만든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가 TV쇼 어프렌티스 진행자로 활동하다, 대통령이 됐다는 뜻)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개인의 권한을 강화하고 민주적 절차를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왜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정치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할지 아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5) 모든 것을 열어라 ‘씽킨’
다소 이상적인 발언입니다만, 이런 사고는 토터스 미디어에 그대로 녹아져 있습니다. 뉴스의 속도보다는 심층적인 분석과 맥락을 중시하고 뉴스 뒤에 숨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 토터스 미디어는 '씽킨(ThinkIn)'이라는 오픈 편집 회의를 엽니다.
일반적으로 하루의 뉴스는 수많은 데스크(각 부서의 결정권자)가 참여하는 편집회의를 거쳐 결정이 되는데요. 이걸 외부에 전면 공개해 극단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뜻입니다. 토터스 미디어는 자금 조달 방식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인 킥스타터를 통해 약 50만 파운드를 모금해 출범했고, 이러한 혁신적인 방안으로 이듬해 영국 저널리즘 어워드에서 혁신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토터스 미디어는 분류하는 뉴스 영역도 종전 미디어와는 다소 다릅니다.
100세 시대: 건강, 교육, 정부 정책
우리 행성: 기후변화, 지정학
테크놀러지: AI, 과학, 신기술
문화: 사회, 정체성, 소속감
2. “가장 오랜 신문 M&A” 토터스의 배후는 누구
뉴스 전달은 주로 오디오와 뉴스레터, 그리고 웹페이지를 통해 이뤄집니다. 토터스는 스스로를 ‘오디오 퍼스트’로 규정합니다. 뉴스룸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팟캐스트로 제작해 전달하고 있는데, 월간 약 300만 청취가 이뤄집니다. 또 일일 통찰 제공자라는 뜻에서 Daily Sensemaker라는 뉴스레터를 운영합니다.
'씽킨(ThinkIn)'이라는 오픈 편집 회의를 매일같이 줌으로 열어 독자들을 참여시킵니다. 제작된 콘텐츠는 앱과 웹으로 전달하며, 토터스 계간(Quarterly)이라는 책자도 찍습니다. 큰돈은 못 벌겠지만 운용은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구독료가 연간 약 130파운드에 회원수가 약 12만 명이니, 연매출은 약 274억 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1) 1791년 미디어 사들이겠다
이런 토터스 미디어가 지난주 전 세계 미디어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소식을 한 가지 더 전했습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 하나로 꼽히는 옵저버 (1791년 창간)를 인수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옵저버는 영국의 대표적인 고급 미디어 중 하나인데, 1993년 가디언이 이를 인수한 상태입니다.
가장 젊은 미디어가, 가장 오래된 신문을 인수해, 스스로 자신의 혁신 방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미디어 업계에서는 토터스 미디어가 옵저버를 인수할 돈은 있는지, 그리고 뒤에 돈을 대주는 인물은 누구인지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하딩: BBC 뉴스의 전 디렉터이자 타임스의 편집장을 역임한 저널리스트. "깊이 있는 저널리즘, 느리게 사고하기를 목표"로 한 토터스 미디어를 창업했다.
2) 자본 조달과 공익 사이에서
미디어 연구소인 프레스개짓이 발행한 ‘누가 토터스 미디어를 소유했나’라는 기사에 따르면, 토터스 미디어의 최대 주주는 제임스 하딩으로 32.5%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주주는 우드브리지 인베스트먼트 16.1%였습니다.
우드브리지 인베스트먼트는 톰슨 로이터스의 회장인 데이비드 톰슨이 이끄는 톰슨 가문의 투자사입니다. 또 세 번째 주주는 헤지펀드 랜즈다운 파트너스 11.7%로 나타났습니다. 또 패션 기업인 H&M 역시 토터스 미디어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3) 반대 나선 옵저버 기자들
토티스 미디어가 혁신을 추구하고 독자와 권력자 사이의 간극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주주들이 부유층이라는 점에서 부유층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미디어 기업이 사회적 목표와 상업적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 단적인 사례입니다.
일단 옵저버 소속 기자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한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옵저버를 토터스 미디어에 매각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3. 10년 미디어 실험의 끝, 그래도 혁신을 꿈꾼다
토터스 미디어처럼 뉴스 미디어의 공익성과 생존을 위한 상업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주에는 미디어 스타트업계에서 정말 큰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웃스탠딩에 따르면, IT 솔루션 기업인 시소가 콘텐츠 서비스인 퍼블리의 ‘퍼블리 법인’과 개발자 커뮤니티 서비스인 ‘커리어리’를 인수했습니다.
1) 퍼블리와 중도에 이별하다
투자자인 이재웅 다음 창업자이자 쏘카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투자한 회사들과 필연적으로 이별하게 된다”면서 “잘 돼서 투자자의 역할이 필요 없어져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는 이루려던 목표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이별하게 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퍼블리는 2015년 박소령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입니다. 콘텐츠 구독 미디어를 꿈꿨습니다. 지금껏 뉴스는 제공자가 성격과 주제를 정하고 전달하지만, 퍼블리는 고객에게 이를 위임했습니다. 이를 두고 고객을 찾는 여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2) “돈을 낼 고객이 없었다”
이에 대해 이재웅 창업자는 “퍼블리는 잡지나 책의 형식이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하는 습관과 문화를 바꿔보자고 시작된 회사”라면서 “ 소수의 편집자의 감에 의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책이 생산되고, 그중 대부분이 1쇄도 판매 못하고 사장 돼버리는 출판문화를 디스럽트 해보자는 것이 퍼블리의 풀고자 하는 문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크라우드 펀딩방식으로 빠르게 생산하고 디지털 형식에 맞춰 읽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재웅 창업자는 “멋진 콘텐츠가 많이 생산되었고, 많은 팬들이 만들어지긴 했다”면서도 “매스 마켓으로 가기에는 우리 사회에 콘텐츠를 잘 생산할 수 있는 사람도, 돈을 내고 콘텐츠를 소비할 고객도 충분히 많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다음 이재웅 창업자: 9월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와 이별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미디어 생태계를 새로 만들겠다고 과감하게 덤벼들었던 혁신 기업 퍼블리가 걸어왔던 여정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평가받을만하다"라고 총평했다.
3) 너무나 작은 뉴스 미디어 시장
사실 뉴스 콘텐츠 형식의 미디어 산업은 시장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의 가장 큰 인수 합병 사례들을 들어보겠습니다.
디 애슬레틱: 스포츠 전문 미디어로 뉴욕타임스에 2022년 5.5억 달러에 매각
악시오스 : 정치 비즈니스 매체로 콕스그룹에 2022년 5.25억 달러에 매각
인더스트리 다이브: 전문 뉴스 레터 회사로 인포마에 3.89억 달러에 2022년 매각
더 링거: 스포츠 &팝 컬처 미디어로 스포티파이에 2020년 2.5억 달러에 매각
블리처 리포트: 스포츠 뉴스로 터너 브로드캐스팅에 1.75억 달러에 2012년 매각
디 애슬레틱이 5.5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매우 큰 금액입니다만, MS의 액티비전 인수 가액은 687억 달러, 델의 EMC는 670억 달러, AMD의 자일링스는 500억 달러, 머스크의 트위터는 44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할 때 순수 콘텐츠로 승부 보는 비즈니스가 얼마나 규모가 작은지 단적으로 알려줍니다.
4) 쇼 비즈니스 VS 공익성
개인적으로 모든 업의 본질은 ‘쇼 비즈니스’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뉴스는 몇 분짜리 흥행을 위해 제작되고, 신문 기사는 하루 흥행을 위해 만들어지며, 책과 영화는 몇 개월의 흥행을 노립니다. 이뿐일까요. 수명 주기는 다르더라도 전기차나 스마트폰 항공기조차 흥행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산업은 저렴한 가격, 높은 품질, 가치 창조와 같은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뉴스 콘텐츠는 공익성을 함께 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토터스 미디어와 같은 모든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의 혁신을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는 하루살이라고도 불립니다. 뉴스 콘텐츠라는 하루 흥행을 위해 매일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익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은 뉴스 미디어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공익에 치우치면 흥미를 잃고 대중과 소통에 실패해 '꼰대'로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 흥행에만 치중하면 가십성 선정적인 뉴스만을 다뤄 '기레기'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혹여나 누군가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해 보라고 한다면, 꼰대를 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5) 진실이 거짓을 이기리라
“일반적인 상황에서, 거짓말쟁이는 현실에 의해 패배한다.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숙련된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의 망을 넓혀도, 컴퓨터의 도움을 받더라도, 사실의 방대한 양을 가릴 만큼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Under normal circumstances, the liar is defeated by reality, for which there is no substitute; no matter how large the tissue of falsehood that an experienced liar has to offer, it will never be large enough, even if he enlists the help of computers, to cover the immensity of factuality.”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때로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튀어나오기 쉽습니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미 없는 뉴스를 만들다 보면, 장기적으로 신뢰를 상실하고 소비자들에게서 멀어질 것입니다. 진실을 기반으로 흥행까지 해야 하는 뉴스 미디어 업에 몸을 담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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